부채 대신 메가폰 든 이정현 “다르덴 형제 같은 영화 찍고파”

“가수로 활동하던 20대 때 인기가 많았지만 가장 불행했던 시간이었어요. 하루 11개씩 일정을 소화하며 내가 노래하는 기계처럼 느껴졌죠. 이제 40대가 되어 영화인으로 돌아와 관객들과 눈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15살 때 영화 ‘꽃잎’(1996)으로 데뷔했다가 오랜 시간 배우가 아닌 가수로 기억됐던 이정현이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프로그래머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연출 데뷔작인 단편 ‘꽃놀이 간다’와 스페셜 프로그래머로 인생작 5편을 추천해 관객들과 만난다.
2일 전주중부비전센터에서 만난 이정현은 “나를 배우로 살아가게 해준 장선우 감독님과 배우로 돌아오게 해준 박찬욱 감독님”을 영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두 사람으로 꼽았다. 프로그래머 추천작으로 ‘꽃잎’과 ‘복수는 나의 것’(2002)을 선정한 이유다. 그는 “‘꽃잎’이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라 개봉 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 만난 박찬욱 감독님이 ‘왜 연기를 안 하냐’고 꾸짖으시며 이 영화를 어렵게 구해 디브이디(DVD)로 떠서 선물로 주셨다. 그걸 계기로 박찬욱·박찬경 감독의 ‘파란만장’에 출연하며 다시 배우의 기회가 열렸다”고 말했다. 이번에 상영하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 역시 저예산 독립영화라 소속사에서 거절한 시나리오를 박찬욱 감독이 추천하면서 출연이 성사된 영화다.
다른 추천작은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그가 이번에 감독으로 선보인 ‘꽃놀이 간다’도 재개발 예정의 낡은 집 한채가 있다는 이유로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해 세상을 떠난 2022년 창신동 모자 사건을 시나리오로 옮겼다. “당시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아서 이걸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는 그는 “대학 때 연출을 전공했지만 감독 일을 감히 내가 어떻게 할까 엄두도 못 냈는데, 나이 들면서 아이도 낳고 세상 보는 관점도 풍부해진 것 같아 대학원에 진학해 다시 도전하게 됐다”고 했다.

다음달 촬영에 들어가는 두번째 단편 역시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란다. 그는 “할리우드 상업영화도 좋아하지만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 건 사실적인 이야기들이다. 다르덴 영화를 보면 영화음악 없이도 큰 울림을 주고 좋은 어른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가짐도 가지게 되지 않나. 앞으로 나도 이런 영화를 계속 찍고 싶다”고 했다.
‘꽃놀이 간다’가 시작할 때 그의 히트곡 ‘와’의 전주 멜로디가 짧게 흐르며 부채를 든 이미지와 함께 ‘와 필름’(WA FILM)이라는 로고가 뜬다. 그가 앞으로의 영화 활동을 위해 설립한 1인 제작사다. 그는 “관객들이 로고필름 나올 때 뜻밖에 다들 반가워하시더라”며 “가수를 하는 동안 영화계를 떠나 있어서 영화인들이 싫어할 줄 알았는데 다들 좋아해주셔서 ‘와 필름’으로 제작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태프들과 회식 자리 마무리엔 지금도 꼭 부채를 든다”며 “단편으로 실력을 쌓은 뒤 언젠가 장편 영화 연출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주/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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