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폭력 조직 혹은 임시경찰...제주 짓밟은 서북청년회

Ⅰ. 들어가며: '폭력과 국가' 그리고 '민병대'
4.3 시기 서북청년회는 어떤 특성을 가진 조직이었고 지역민들은 이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이 글은 '폭력과 국가' 그리고 '민병대'에 관한 이론 검토와 함께 4.3 시기 지역민의 서북청년회에 대한 기억을 다룬다.
'폭력과 국가'에 관한 논의 검토는 서북청년회를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막스 베버는 "국가를 정당한 물리적 폭력 행사의 독점을 실효적으로 요구하는 인간 공동체"라고 보았다. 베버의 논의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의 개념은 '이상적' 혹은 '형성된' 국가에 적용 되었을 경우에 한 해 유의미하다.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폭력의 문제가 어떻게 발생하여 작동되는 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존슨 너새니얼 펄트 역시 '폭력과 국가'에 관해 논했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경쟁자에 대한 통제력을 얻고자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는 데 그중 하나가 폭력 사용을 민간 조달자에게 '하청'하는 것이다. 펄트는 대표적 폭력 하청 사례로 서북청년회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또한 사회학자 찰스 틸리의 주장을 인용하며 국가 형성이 정치 엘리트가 국가가 절대적으로 통제하는 폭력으로서 정당한 폭력과 부당한 폭력의 '경계'를 되도록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과정임을 주장했다.
'폭력과 국가'에 관한 고찰의 측면에서 서북청년회의 폭력은 국가 형성기 사적 폭력의 대표적 사례로서 이들을 일종의 '민병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병대'는 개념은 무엇이며 어떠한 특성을 가졌을까. 일반적으로 '민병대'는 다음과 같은 성격의 조직을 지칭한다. 첫째, 조직의 성격이 친정부적이거나 정부에 의해 후원을 받는 것으로 확인될 것, 둘째, 안보를 위한 정규 물리력의 구성이나 부분이 아닐 것, 셋째, 무장할 것, 넷째, 어느 정도의 조직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민병대'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첫째, 느슨한 구조의 형성, 둘째, 비전문가로 구성, 셋째, 국가와의 연계가 불분명. 넷째, 사적 이득 추구 경향이다.
폭력 사용 집단으로서 이들의 부적절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민병대'를 국가가 활용하는 이유로는 첫째, 부정한 행위 문제시 책임의 부인 가능성, 둘째, 쉽고 빠른 병력의 증강이 가능하다는 점, 셋째, 제한 없는 폭력의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꼽힌다.
'민병대' 개념과 특성에 기반하여 살펴보면, 서북청년회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서북청년회는 느슨한 구조 속에서 기존의 명령 체계에 종속되거나 편입되지 않았다. 또한 서북청년회가 국가와 연계가 불투명한 측면이 있다. 당시 서북청년회를 통한 경찰관 모집 기준이 능력이나 자질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사상적으로 믿을만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전문성 또한 인정되기 어렵다. 서북청년회는 경찰과 부정적으로 공모하는 가운데서 개인적 이득을 취하는 활동을 했다.
한편, '민병대' 활동과 특성에서 지역 주민과의 '강제결혼'의 양상도 나타난다. 이와 같은 모습도 '민병대'에서 나타나는 성적 폭력의 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Ⅱ. 변모하는 서북청년회의 지위: '임시경찰'에서 정식 경찰로
유해진 도지사의 부임과 더불어 경호원 격으로 제주에 등장한 서북청년회는 1947년 11월 2일 제주극장에 모여 결성되었다. 점차 제주에 이동·정착하게 된 서북청년회는 곧이어 제주 사회 주요 인사에 대해서 각종 테러를 저질렀다. 이처럼 역외 기반 사적 폭력 조직이었던 서북청년회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4.3이 전개되면서 제주 경찰이나 군대에도 편입될 수 있었다. 시기와 상황을 달리하며 그들의 모습은 언제든 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느 시기 어느 정도 규모의 서북청년들이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거쳐 국가가 가진 공적 물리력의 조직인 군대와 경찰로 편입되어 간 것일까.
'임시경찰(temporary policemen)'이라는 표현은 서북청년회 사람들이 어떻게 경찰로 되어갔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민간 조직인 서북청년회가 정식 경찰로 변모하기 전의 중간 단계에 지위에 바로 '임시 경찰'이라는 역할이 있던 것이다. 서북청년회 출신 경찰의 증언과 미군정 기록에 의하면, 1948년 11월~12월 사이 경찰 수백 명이 짧은 시간 내 훈련을 받고 제주로 발령받았다.
이처럼 특정 시기에 일정한 규모로 서북청년회가 경찰로 지위를 변화하였고, 이와 동시에 본격적으로 이들의 제주 투입이 진행되었다. 서북청년회는 4.3이 진행되는 시기 '임시경찰'로 활용되었다가 얼마지 않아 짧은 훈련을 받고 정식 경찰의 모습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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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보.
이 글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 제78호(2025)'에 '4⋅3 시기 변모하는 서북청년회의 지위와 지역민의 기억'라는 제목으로 실은 논문을 [제주의소리]에 싣기 위해 정리 요약한 것입니다.
현수성
제주대 사회교육과에서 공부하고, 사회교육대학원에서 자연·문화유산교육을 전공하였다. 다시 사회교육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 했으며, 법교육의 관점에서 과거사를 다룬 '시민법정'에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4.3융합전공을 이수 중이다. 해녀박물관과 4·3평화기념관, 북촌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안내 및 해설을 해오고 있다. 4.3의 역사와 해녀의 문화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논문으로는 제주도 내 마을 간 바당싸움에 관한 연구와 4.3시기 서북청년회에 관한 연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