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저버린 어떤 판사의 위험한 소신 [세상에 이런 법이]

‘보상’과 ‘배상’은 유사해 보이지만 법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보상은 합법적인 행위로 인해 상대가 입은 손해에 대한 보전이다. 반면 배상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한 보전이다.
국가 역시 보상과 배상의 주체가 된다.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해주기 위한 법령인 ‘국가배상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배상의 책임과 배상 절차를 규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의 법관이 재판 업무 중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는 어떠할까? 국가배상법은 책임의 주체에 대해 공무원이라고만 정하였을 뿐 법관을 예외로 두고 있지 않다. 법관도 직무 중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국가는 그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으며, 해당 법관의 책임도 면책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1948년 7월17일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되고, 1949년 9월26일 법원조직법이 제정·공포된 이래 현재까지 재판 과정에서 법관의 실수로 재판 당사자가 피해를 보더라도 국가가 손해를 배상한 사례는 사실상 없다.
그럼 법관의 불법·위법 행위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판사들의 업무상 과실이나 오판, 법령의 잘못된 적용 등에 대한 위법한 행위는 분명히 존재했다.
왜 법관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 청구는 인정된 선례가 없는 것일까? 민법이든 국가배상법이든 재판에서 일반적인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기 위한 주된 요건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행위가 있을 것, 둘째는 가해행위가 위법할 것, 셋째는 가해행위에 의하여 손해가 발생할 것 등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관의 재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의 인정 요건에 대해선 그 기준을 달리 판단한다. 대법원은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당해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다거나’ 법이 법관의 직무 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라고 판시했다(대법원 2003. 7. 11. 선고 99다24218판결).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했다’라고 자백할 리 만무한데, 청구인이 이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게다가 법관의 직무수행이 그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해야 한다는데, 현저한 위반에 대한 판단 기준이 객관적으로 정해질 수 있을까.
‘구속기간 일수 대신 시간으로 계산한’ 법관의 책임
이러한 이유로 법관의 재판 행위는 사실상 면책 대상이 되었고, 법관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은 유명무실해졌다. 헌법 제103조에 따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판사에게 개인과 사회의 운명에 대한 자유로운 결정권을 부여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헌법에 규정된 법관의 양심은 개인의 소신과는 다르다. 법관의 양심은,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거나 법관 본인의 정치적·종교적 신념에 따라 재판을 진행할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법관 개인으로서는 그러한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소신을 지킨 것이지 양심을 지킨 것이 아니다. 법관의 양심은 사회적 양심이고 그 판단 기준은 재판의 과정과 결과가 사회적 정의에 부합하느냐로 판단되어야 한다. 법관의 양심은 소신보다 더 큰 개념일 수도, 상황에 따라서는 소신에 반하는 내용일 수도 있다.

헌법이 부여한 법관의 독립성은 궁극적으로 공정한 재판을 통한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법관의 안녕과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소신(구속기간을 일수가 아닌 시간으로 계산한 것도 소신이라면 소신일 테다)에 매몰되어 정의와 양심을 저버리는 법관은, 반드시 위법한 재판의 과정과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권혜진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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