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거두에서 국힘 대선 후보로···좌우 넘나든 김문수는 누구?

박성의 기자 2025. 5. 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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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유신으로 서울대 두 번 제적…보수로 변신 뒤 ‘의원 3선’ ‘도지사 2선’
‘찬탄’ 한동훈 후보 제치며 대권 주자로…‘극우·막말 이미지’는 부담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최루탄을 맞으며 노동자 시위를 이끌던 운동권 거두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강성 극우 인사로. 윤석열 정부 고용노동부 장관에서 국민의힘 대선 본선 후보로. 3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김문수 후보가 선출되면서 좌우를 넘나든 그의 이력이 재조명되고 있다.

195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김 후보는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하고 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김 후보는 사정기관의 감시를 받는 '운동권 주류 인사'가 됐다. 1971년 전국학생시위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두 차례 제적됐고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해 한·일도루코노조 위원장을 지내는 등 노동운동의 거두로 불렸다.

김 후보는 1990년 노태우 정부 당시 처음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노동운동 세력인 이우재·김낙중·장기표·이재오 등과 민중당을 창당했지만, 14대 총선에서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그가 보수 진영으로 전향한 결정적 계기는 1990년 초 구소련의 붕괴를 지켜보면서다. 김 후보는 1994년 당시 김영삼 민주자유당 총재의 권유로 민주자유당(국민의힘 전신)에 입당했고, 보수정당에서 3선의 국회의원(제15대·16대·17대)을 지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선 경기지사에 출마해 재선을 지냈다. 2012년엔 도지사 임기 중에 18대 대선으로 첫 대선 도전에 나섰다. 당시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그가 정치적 고배를 마신 건 도지사 시절 '119 호통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이후 재선의 임기를 마치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보수 텃밭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으나 김부겸 민주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고 만다. 2018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을 때도 패하고 탈당해 자유통일당·자유공화당 등 극우보수 진영에 합류했다.

이후 그는 줄곧 강성 보수의 길을 걸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고 유튜브 채널 '김문수TV'를 개설해 유튜버로도 활동했다. 2022년 9월 유튜브에서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파업을 두고 "불법파업에 손배 폭탄이 특효약"이라고 발언하고 '쌍용차 노조는 자살 특공대' '노조의 머리부터 세탁해야 한다' 등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치적 재기를 맞은 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김 후보를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앉히면서 "김문수 전 지사는 노동 현장을 잘 아는 분"이라며 "다른 걸 고려하지 않고 현장을 가장 잘 안다고 판단해서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경사노위 위원장 임명 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고 발언해 비판을 받았다. 이후 고용노동부 장관직까지 맡은 김 후보는 윤석열 정부 핵심 인사로 분류됐다.

윤 전 대통령이 탄핵되며 정치적 위기를 맞을 것이라 예고됐으나, 그는 되레 국민의힘 대권 주자가 되며 일생일대 기회를 잡았다. '반탄파'(탄핵 반대파)인 김 후보가 최종 선출된 것은 탄핵 반대 강성 지지층의 표심이 쏠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후보는 탄핵 정국 초기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반대를 일관되게 주장했다. 

김 후보는 총 45만5044표로 56.53%의 지지를 얻었다. 당원 선거인단 24만6519표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51.81%를 환산한 20만8525표를 합산한 결과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43.47%(34만 9916표)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당원 선거인단 15만5961표와 여론조사 결과 48.19%를 환산한 19만3955표를 합산했다.

다만 당심에 비해 부족한 대중의 지지세가 그의 숙제로 지목된다. 강성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기에 중도층 확장성을 확보하는 게 그의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단일화 협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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