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국민의힘 대선 후보 김문수는 누구?… 학구열, 학생시위 키워드

정의종 2025. 5. 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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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 밝히고 배움 열의, 서울대 경영 진학
학생시위로 제적되고 사회 구조적모순 인식
민청학련 사건 연루 다시 제적돼 ‘전국 수배’
고문받고 복역…노동계 전설적 지도자 회자


“저는 한 평짜리 교도소 독방에서 큰 세상을 꿈꿨습니다.”

3일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는 과거 경기도지사 시절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좌에서 우로, 공장에서 국회로, 노동운동가에서 노동부장관으로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관통한다.

김문수는 한국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경북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서 4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영천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친척의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온 가족이 판잣집 단칸방으로 이사 가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김문수는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영천읍 내에서 호롱불을 밝혀 놓고 공부할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의 하나만은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초교 졸업 후 대구로 유학, 당시 수재들만 들어갔다던 경북중·고에 입학한다. 경북고 재학 시절에 이르러서야 번듯한(?) 대구 남산동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김문수는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초가 두 칸에 판잣집 한 칸을 사용했는데 어느 방에서나 천장 틈새로 파란 하늘이 보였고, 벌레가 기어 다닐 만큼 볼품없는 집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그는 1970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에 합격했으나 71년 10·15 부정부패척결 전국학생시위로 제적된다. 이때부터 김문수는 가난을 구조적 문제로 바라보면서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고 과감한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후 고향인 영천으로 내려와 4H운동, 야학 등 농민운동에 주력하던 그는 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또다시 제적되고 전국에 수배된다.

김문수는 78년 도루코노조위원장, 85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 지도위원이던 86년 인천 직선제 개헌 투쟁으로 구속, 고문을 받고 2년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김문수·한동훈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3일 오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 참석해 있다. 2025.5.3 /경기사진공동취재단


온갖 고초를 겪어가면서 그는 서울대에 입학한 지 25년 만에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김문수는 노동 운동권의 전설적인 지도자로 회자된다. 후유증으로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문을 당하면서도 동료들의 이름을 지켜냈다. 80년대 많은 운동권 대학생이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 김문수는 정계에 입문하며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90년 이재오 등과 민중당 창당에 참여, 노동위원장으로 선임된 데 이어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중당 전국구 후보 3번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민중당은 당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그는 94년 재야 민주화운동 인사들과 함께 보수정당인 민주자유당에 입당 후 96년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한다. 이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박지원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전국적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5·3 인천사태 배후 조종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난 김문수가 1988년 10월 15일 서울 종로성당에서 민가협 주최로 열린 ‘10·3 석방인사 환영대회’에서 양심수 전원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김문수 캠프 제공

재야 인사들과 민중당 창당 출마했다 실패
부천 소사 내리 3선하며 전국 스타 발돋움
‘가난한 국회의원’ 평소 청빈한 생활 유명
경기도지사로 수도권통합요금제·GTX 추진

이어진 10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은 김문수라는 이름 석 자를 국민들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시간이었다.

그는 현실 속에서도 정의를 지향했다. 깐깐한 성격, 빈틈없는 논리, 청빈한 생활은 한나라당 내 보기 드문 캐릭터였고, ‘가난한 국회의원’으로 상대당 어느 누구의 공격에서도 자유로웠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폭로하며 야당 저격수로서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이 같은 저력으로 김문수는 제16·17대 총선에서도 부천 소사에서 ‘탄핵 역풍’까지 뚫고 내리 3선에 성공한다.

관용차 뒷자리보다는 택시 운전대를 잡으며 현장 구석구석을 살폈던 그는 대장동보다 훨씬 큰 규모의 신도시 개발을 진행하면서 단 한 건의 비리에도 연루되지 않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 활동할 때는 ‘역대 가장 공정한 공천’이라는 평이 따랐다.

그리고 2006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사임한다. 당 대표 경선 2차례, 매번 최하위권이었지만 그해 6월1일 밤 김문수는 당당히 도정의 주인공이 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경선 후보가 2일 서울 강남구 수서역에서 청년서포터즈와 GTX-A를 탑승하기 위해 탑승구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취임 첫해부터 그는 ‘앞서가는 경기도’, ‘편리한 경기도’, ‘잘 사는 경기도’, ‘매력있는 경기도’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경기도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전력한다.

이어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는 지역적 특성을 살리면서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불합리한 수도권 규제 폐지를 추진하는 한편 광역교통망 구축, 외자 및 기업 유치,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등의 정책을 펴 경기도 내 신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경기도 최초의 대중교통 환승할인이 적용된 수도권통합요금제 단행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기획 등 경기도의 교통복지를 몇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때 당을 떠나 활동하던 김문수는 이번 정부 들어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장(장관급)과 고용노동부장관을 차례로 역임하며 보수진영 차기 주자로 몸집을 키웠다.

대선 후보로 그는 GTX 등 광역교통망 전국 확대를 비롯해 첨단산업의 지방 유치, 교육·의료·문화 인프라 개선을 저출생과 고령화 해결의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또한 낙담하는 청년세대에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주기 위해 연금 개혁과 고용 문제를 국가 최대 어젠다로 놓겠다고 약속했다.

/정의종·김우성 기자 je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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