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그 시기 그 기업이?··· 한덕수의 신문로 2가 자택 임차인에 얽힌 의혹

대선후보로 출마한 한덕수 전 총리는 윤석열 정부의 처음이자 마지막 총리다. 총리 지명 당시부터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재산 형성 배경이 대표적이다. 이 의혹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공직에 있으면서 외국 기업과 이해충돌 정황이 있는 돈거래를 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직 퇴임 이후 소위 ‘전관예우’를 통해 고액의 소득을 올렸다는 것이다.
2022년 5월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당시 한덕수 전 총리의 재산 형성 배경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지만 의혹은 깔끔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한 전 총리는 재산 관련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에 성실하게 응하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 청문회에서 내놓은 해명 중 일부가 사실과 달랐던 정황이 최근 〈시사IN〉 취재 결과 확인됐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3월27일 공개한 ‘2025년 공직자 정기 재산변동사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기준 한덕수 전 총리의 재산은 87억원이다. 24억5900만원 규모의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의 단독주택과 58억9619만원의 예금이 전체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22년 총리 지명 당시 부동산과 예금 재산 모두에 대해 그 형성 배경에 관한 의혹이 제기됐었다.
신문로2가 자택은 한덕수 전 총리가 1989년 4월 장인으로부터 3억8000만원에 사들였다. 이후 10년 동안 한 전 총리는 이 집을 미국 통신업체 AT&T와 정유사 모빌(현 엑슨모빌)의 자회사 모빌오일 코리아에 월세를 주고 총 6억2000여만원의 선금을 받았다. 2022년 인사청문회 당시 직무와 연관된 이해충돌 지적이 나왔다. 당시 공직에 있던 한덕수 전 총리가 두 기업으로부터 고액의 임대소득을 받고 영향력을 행사해 특혜를 줬다는 것이다.
1995년 9월 한덕수 전 총리가 통상산업부에 재직할 당시 모빌오일코리아는 한 전 총리 자택에 1억6000만원 상당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근저당권은 일반적으로 금전거래가 있을 때 당사자 간 설정한다. 이후 6개월이 지난 1996년 3월 통상산업부 산하 석유개발공사는 베트남 11-2광구 천연가스전 개발 사업에 모빌사를 참여(지분 45%)시키기로 했다. 한덕수 전 총리가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이었던 1993년에는 AT&T가 한국통신(KT)의 전자교환기 구매 입찰에 참여해 총 236억여 원의 물량을 낙찰받았다. 두 기업이 한덕수 전 총리에게 고액의 임대소득을 냈던 시기에 일어난 일들이다.
한덕수 전 총리는 2022년 5월 인사청문 준비단을 통해 반박 입장을 내놨다. 모빌오일코리아 특혜 의혹에 대해선 “석유개발공사는 통상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이지만 자원정책실 산하다. 가스 매장량이 얼마건 당시 맡은 통상 업무와 겹치지 않을 뿐 아니라, 지휘체계 자체가 다르다.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해명했다.
AT&T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한국 통신시장 개방 관련 한미협상이 진행될 때(1989년 2월~1993년 3월) 주무 부처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 근무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으로 근무한 기간(1993년 4월~1994년 5월)에도 경제부처 간 정책 조정 업무를 맡았을 뿐 개별 업체와 관련된 업무는 하지 않았으며, 청와대 근무를 마치고 상공자원부와 통상산업부에서 근무할 때도 AT&T 관련 직무를 수행한 사실이 없다고 덧붙였다.
상공부 재직 당시 상공부 주관 국책사업에 AT&T 자회사 선정
그러나 한덕수 전 총리가 청와대 근무를 마치고 상공자원부 기획관리실장으로 근무한 시기, 정부가 ‘상공자원부 주관’으로 대형컴퓨터 개발 국책사업을 추진한 사실이 확인됐다. 1994년 1월29일 정부는 외국기업 6개사로부터 제안서를 받아 업계와 학계, 연구기관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1차로 AT&T와 탠덤, 유니시스 등 3개사를 협력사로 선정했다. 이후 1995년 3월23일 상공자원부 후신인 통상산업부가 AT&T GIS를 대형컴퓨터 개발 사업의 기술협력업체로 최종 선정했다. 당시 AT&T GIS는 AT&T의 컴퓨터 부문 자회사였다.
이 사업이 진행되던 시기 한덕수 전 총리는 통상산업부(상공자원부) 소속이었다. 1994년 5월~12월에는 통상산업부 기획관리실장으로 근무했다. 기획관리실장은 장관 곁에서 예산을 관리하고 부서 내 업무를 조정하는 자리다. 1994년 12월~1996년 12월에는 통상산업부 통상무역실장을 맡았다. 수출입 전략과 대외무역 협상을 총괄하는 자리다. 이 역시 AT&T가 당시 한덕수의 신문로 2가 자택의 고액 임차인이던 시기와 겹친다.
이에 대해 한덕수 전 총리 측은 “상공부와 통상산업부 근무 당시 해당 기업 관련 직무를 수행한 사실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2022년 인사청문회 당시와 같은 취지의 해명이다. AT&T GIS 선정 당시 소관부서인 전자기기과의 과장으로 업무를 주관했던 백만기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이사장도 〈시사IN〉과 통화에서 “당시 (한 전 총리가 맡은)기획관리실장은 예산과 국회 관계 일을 담당하는 자리였다. 산업정책과 관련된 일선 업무는 하지 않았다”라고 반박했다.
한덕수 전 총리는 신문로2가 자택을 1989년 4월 장인으로부터 매입할 당시, AT&T로부터 고액의 임대소득을 선금으로 받아 매입 비용을 마련했다. 이듬해 1월 자택의 공시지가는 8억 원 상당으로 올랐다. 2022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당시 한덕수 전 총리는 국회에 제출한 서면질의서를 통해 “그전까지 살던 아파트의 매도금 2억2000만 원과 선 월세로 받은 돈을 합해 1989년 4월 구매비용을 충당했다. 당시는 외국인의 주택 취득이 어려웠던 시기로서 주택 임차 수요가 많았고 외국계 기업들은 선불로 임대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거래했다”고 밝혔다.
총리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복수의 야당 의원들이 자세한 부동산 거래 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한덕수 전 총리는 서면질의서를 통해 “30여년 전 계약으로 현재 임대차 계약서 등 관련 자료가 없고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시간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똑같은 답변만 보내왔다.
87억원 재산 증식의 경로
한덕수 전 후보는 2012년 4월 주미대사 자리에서 물러나던 시점에 40억6700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2022년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다시 공직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이 재산이 82억5937만원으로 두 배가량 늘어났다. 2025년 신고한 재산은 총 87억여 원이다.
재산 증식의 주된 경로는 공직에서 퇴직한 이후 재취업하면서 받은 고액 급여였다. 한덕수 전 총리는 2012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한국무역협회장으로 19억여 원의 급여와 약 4억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2017년 12월부터 2022년 3월까지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지내면서는 20억 원 가까운 급여를 받았다. 그는 이보다 앞서 2002년 7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에서 물러난 뒤 곧바로 김앤장의 고문으로 들어가 8개월 동안 1억5000여만 원의 급여를 받았다.
전관예우 논란이 일자 한덕수 전 총리는 당시 청문회에서 “국민 눈높이에서 봤을 때 높은 수준의 봉급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이해충돌이나 전관예우가 아니라면, 여러 직책에서 경험과 능력을 쌓은 사람들이 민간에 가서 국가를 위해 도울 일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한 일이 공공적 요소와 배치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김수혁 기자 stardust@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