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행복하게, 도시에서 탐조하는 방법 [임보 일기]
봄이 오면 나는 부들과 갈대가 넘실대는 일월호수로 돌아옵니다.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숲이 있어서 둥지를 지을 수도 있고, 호수에 새끼를 키우는 데 필요한 물고기들이 충분하기 때문이에요. 이만한 곳이 또 없다며 친구들도 봄이 되면 이곳으로 찾아와요. 1939년에 만들어진 일월호수는 처음엔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한 물을 대기 위한 곳이었대요.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시와 길이 커지면서, 이제는 인간들이 산책하고 운동도 하는 곳이 되었어요.
봄이 오고 짝꿍을 찾을 때가 되면 춤추며 합을 맞추는 전통이 있는 우리 뿔논병아리들에게 호수는 멋진 무도회장이 돼요. 작년에는 열심히 구애의 춤을 춘 덕에 기가 막히게 호흡이 맞는 남편을 만났고, 자식들을 모두 건강하게 잘 키워냈어요.

이곳에는 물닭이랑 논병아리, 흰뺨검둥오리 같은 순한 친구들도 있지만, 왜가리처럼 우리가 낳은 새끼들을 잡아먹는 천적 새들도 있어요. 보통 왜가리는 나무에 둥지를 짓지만 재작년부터 이곳 습지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어요. 첫해에는 인간이 부들을 싹 베어 버리는 바람에 실패했는데 작년에는 세 쌍이나 번식에 성공했지요. 그렇지만 친구네 집 새끼가 잡아먹히는 일이 있었던 터라 지금도 모두들 긴장을 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둥지를 짓거나 새끼를 키울 때 호수 바깥쪽을 이용하는데, 그곳에는 인간들이 산책이랑 운동을 하고 있어서 조금 불편하긴 해요. 더구나 우리가 새끼를 키우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이 탐조(새 보기)를 하는 인간들에게는 하나하나가 다 관심사인가 봐요.
우리가 춤추기 시작하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귀신같이 나타나요. 세 개의 긴 다리와 큰 대포가 달린 카메라를 세워놓고 하루 종일 우리만 쳐다보며 찰칵찰칵 소리를 내요. 산책하거나 달리는 사람, 매달 쌍안경으로 탐조 모니터링을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에는 이제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우리가 춤을 추거나 둥지를 만들 때만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은 멀리서 일부러 오는지 꼼짝도 않고 우리만 쳐다봐요. 왜가리도 신경 쓰랴 인간도 신경 쓰랴, 새끼 키우는 데만 집중을 해도 모자랄 판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지난번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랑 산책을 하는 주민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어요. “거 좀 비킵시다. 사진 찍고 있는 걸 보면 비켜줘야지 그렇게 앞에 서 있으면 어떡합니까!”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주민에게 큰 소리로 비키라고 했어요. 자주 봐서 아는 주민인데 마음이 많이 상한 것 같았어요. 탐조를 하러 가면 현지 주민들의 삶을 존중하는 게 예의인데 그것도 모르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이건 약과더라고요. 울산에서는 올봄에 잠시 들른 녹색비둘기를 찍겠다고 새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해요. 안산 대부도에서는 흰꼬리수리 한 쌍이 작년부터 찾아와 송전탑에 알을 낳았는데, 올해는 사진을 찍겠다고 송전탑 앞에서 진을 치는 통에 결국 알을 포기했다고도 하고요. 들은 이야기 중 가장 끔찍했던 건 지난겨울에 검독수리가 사냥하는 모습을 찍으려고 월동하러 온 큰기러기를 도망가지 못하게 묶어둔 거였어요.
우리가 사는 곳이 이제는 도시 아닌 곳이 거의 없어서 사람들과도 적당히 거리를 허용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도시라는 공간에서 목숨 걸고 새끼를 키우는 우리를 한낱 호기심으로 가볍게 여기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이곳은 인간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니까요.

박임자 (탐조책방 대표)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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