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전으로 출발한 인류 역사의 수수께끼

조너선 케네디 지음
조현욱 옮김
아카넷
왜 지구의 한쪽 지역은 다른 쪽 지역보다 성공적이었을까? 왜 그들이 세계를 정복하고, 나머지는 무력했을까? 세계사에서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별로 없다.
1997년 미국의 생리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라는 책에서, 이를 단순히 “유라시아 대륙에 재배 가능한 식물과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이 많았던 탓”으로 돌렸다. 농업은 유라시아에 복잡한 사회의 출현을 가능케 했고, 같이 살게 된 가축들은 인간에게 질병뿐 아니라 저항력도 심어 주었다. 16세기 스페인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했을 때,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은 고도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총이 없었고, 말이 없었고(수천 년 전 자연상태에서 멸종했다), 스페인인들 몸에 묻어 있던 균에 면역이 없어 멸망하고 말았다.
다이아몬드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그만큼 비판도 받았다. 인류 역사를 지리적 조건의 차이로 너무 단순화하고 인간의 의지를 무시했다는 이유였다.
![1828년 윌리엄 히스의 풍자화. 영국 템즈강의 물 한 방울을 확대해 괴물 같은 내용물을 본 여성이 놀라서 찻잔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통해 런던 식수의 오염 실태를 표현했다. [사진 아카넷]](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03/joongangsunday/20250503001432395bfdl.jpg)
균은 역사에 늘 개입해 왔다. 3세기 로마에서 기독교가 갑자기 유행한 것은 당시 창궐한 전염병과 관련이 있다. 병자를 내다 버리던 당시 풍습과는 달리 기독교 공동체는 병자를 열심히 간호했으므로, 사망률은 2/3나 낮았다. 그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주는 이점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아이티 독립은 진압하러 온 프랑스군이 전염병에 궤멸했기에 가능했다. 이 재앙은 뒷날 루이지애나 매각의 원인 중 하나였다. 미국 남북전쟁이 장기화된 이유는 북군의 40%가 말라리아에 걸렸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침략을 다루면서 저자는 다이아몬드를 비판한다. 스페인이 누렸다는 총과 말의 이점은 과장되었다. 네안데르탈인과 마찬가지로 아즈텍과 잉카의 몰락에 결정적 역할을 한 건 균이기 때문에 저자는 ‘총, 균, 쇠’를 ‘균, 균, 균’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옳은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21세기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예를 들며 총과 쇠는 결코 충분한 정복 도구가 못 된다고 단언하는 논법은 놀라울 뿐이다.
균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 공중보건이다. 19세기 콜레라의 습격은 ‘위생 문제’를 알게 했다. 20세기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빈곤임을 깨닫게 되면서 책은 끝난다. 이때쯤 저자의 논조가 변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균의 이동 수단쯤으로 묘사되던 인간에게 전염병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의지를 주문하니 말이다.
매끄럽고 명료한 문체로 쓰인 책이다. 각 장은 독립적인 예닐곱 개의 에피소드로 분할되어 있다. 보고 싶은 부분부터 봐도 된다. 세계사 상식을 업데이트하는 용도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균이 역사의 동력’이라는 명쾌한 주장을 읽다 보면 흔히 거대서사가 사라졌다는 식의 말은 사실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거창한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 주장은 실은 한 가지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
김영준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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