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자막 달고 우리말 뮤지컬 꼭 올리고 싶어"

유주현 2025. 5. 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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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뉴욕 이어 런던 진출…뮤지컬 제작 ‘돈키호테’ 신춘수 대표
지난달 24일 한국 뮤지컬계에 새 장이 열렸다. 런던 웨스트엔드의 유서 깊은 극장 콜리세움에서 신춘수 프로듀서가 제작한 미국 소설 원작의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전석 기립박수를 받으며 5개월간의 여정을 시작한 것. 11일부터 개막한 프리뷰 공연은 전회 매진이었다. 이미 1년 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 토니상을 받고 매출 6800만 달러(약 980억원)를 넘어서며 장기 흥행 궤도에 진입한 검증된 작품이라서다.

호주·일본·독일과도 라이선스 계약단계
지난달 24일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의 콜리세움 극장에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개막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신춘수 리드 프로듀서. [사진 오디컴퍼니]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 깃발을 꽂은 최초의 한국인이 된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를 전화로 만났다. 그는 지금 런던에서 전 세계 공연 관계자들과 접촉하느라 정신없다. 7월 예정된 ‘개츠비’ 서울 프로덕션을 비롯해 호주·일본·독일 등 라이선스 공연이 계약 단계고, 세계적 창작진과 새로운 작품을 개발하며 다음 스텝을 밟고 있다. 2년 전 ‘개츠비’ 브로드웨이 입성을 앞두고 만났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던 꿈을 이룬 셈이다. 그런데 그는 “계획대로, 목표대로 가고 있다”며 차분했다. 하긴,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달라진 게 아니다.

신춘수는 뮤지컬 초창기이던 2000년대 초반 신인이던 조승우·조정석·홍광호·정성화 등을 발굴,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같은 굴지의 히트작을 만들어낸 대표적 프로듀서다. 2009년 ‘드림걸즈’부터 브로드웨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해 ‘홀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내 소리가 들리면 소리쳐)’(2014), ‘닥터 지바고’(2015)까지 세 작품을 내리 실패하며 강남 빌딩 두 채 값을 날리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처럼 풍차(꿈)를 향해 돌진했다.

Q : 웨스트엔드에도 입성하셨네요.
A : “제가 처음 뮤지컬에 접근했던 게 웨스트엔드였거든요. 어렸을 때 막연했던 꿈이 완성된 느낌이라 긴장과 설렘도 교차했지만 한편으론 경건한 마음도 들고 책임감에 마음이 묵직해지더군요. 영국 미디어에서도 저를 되게 흥미로워하는데, 아시아 프로듀서가 미국 소설로 만든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하고 웨스트엔드까지 온 게 엄청난 서사라는 거예요. 그만큼 뮤지컬이 어려운 걸 아니까, 축하도 응원도 많이 해주네요.”

Q : 큰 극장인데도 전회 매진 중입니다.
A : “브로드웨이 성공으로 관심을 받았으니까요. 배우들도 오디션할 때부터 기대치가 크고, 극장들도 자기네서 해달라고 구애가 많았어요. 콜리세움이 보통 오페라·발레 공연을 하는 극장인데, 여기서 5개월이나 공연하는 게 특별한 일이고, 배우들에게도 굉장히 좋은 이력으로 남는다고 하네요.”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완성도 높은 음악과 춤, 화려한 무대세트와 의상으로 본고장 관객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사진 오디컴퍼니]
사실 ‘개츠비’는 2021년 원작 소설의 저작권이 만료됐기에 동시에 두 개의 뮤지컬 프로덕션이 경쟁 구도였다. 그런데 경쟁 프로덕션은 트라이아웃 공연 이후 해체됐다고. 신 대표의 한판승인 셈이다. 토니상을 받은 의상을 비롯해 시청각적 완성도에 찬사가 쏟아지지만 아메리칸 드림의 허무한 환상과 몰락이라는 원작의 비극성이 극도로 화려한 무대 미학에 가려졌다는 비판도 있다. 가디언은 별 1개를 주기도 했다.

Q : 평단의 혹평도 있죠.
A : “개츠비를 선택할 때부터 고민한 건 원작을 무대 언어로 각색할 때 텍스트의 모든 걸 옮길 수 없다는 거였어요. 소설의 깊은 주제의식이 아쉽다는 비판은 처음부터 각오했죠. 뮤지컬은 무대 미학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나름 관련 논문까지 공부하며 각 인물의 서사를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고, 우리가 목표한 대로 관객에게는 잘 도달했다 생각해요.”

Q : 기억에 남는 관객 반응이 있다면요.
A : “브로드웨이에선 ‘아름다운 프로덕션’이란 표현을 들었어요. 미국 역사를 무대에 다 옮길 순 없어도 우리가 잡은 컨셉트대로 잘 전달됐기에 사랑받는 것 같아요. 여기서는 ‘무슨 무슨 경’이라 불리는 금융인, 정치인들이 와서 ‘미쳤다, 당신들 천재’라고 찬사를 보내더군요. 여기까지 보러 와서 응원해 주는 한국 관객도 꽤 있어요. 어제 처음으로 쉬었는데, 하이드파크를 산책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걸 세상에 어떻게 돌려줘야 하나, 큰일 났다.(웃음)”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완성도 높은 음악과 춤, 화려한 무대세트와 의상으로 본고장 관객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사진 오디컴퍼니]
‘개츠비’ 창작진이 세계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2년 전 “최고 창작진을 구성한 게 아니라 개츠비를 통해 최고가 되겠다”는 신 대표의 포부가 인상적이었다. 당시 그는 “약간의 결핍이 최고를 만든다는 게 내 지론”이라며 “연출가 마크 브루니,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 안무가 도미니크 켈리는 최고가 될 수 있는 재능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소개했었다.

Q : 지금은 어떤가요.
A : “자기네는 결핍 없다더군요.(웃음) 결핍이란 표현은 저에게 목표와 꿈이란 뜻인데, 개츠비 성공으로 모두가 결핍을 채운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 모두가 엄청 바빠지고, 많은 제안을 받고 있죠.”

Q : 7월 서울 공연이 시작되면 3개국 동시 공연이네요.
A : “오늘 아침에도 세 곳과 프로덕션 회의를 했어요. 미국 투어도 해야 하고, 내년 예정인 호주, 2027년 예정인 일본, 유럽 라이선스까지 챙겨야 하죠. 개츠비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니에요. 이제 저와 작품을 하려는 세계적 창작진이 많아졌거든요. 세계적인 연출가와 새 작품을 올리려고 내년 이맘때쯤 런던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확정되면 제일 먼저 알려드릴게요.(웃음)”

Q : ‘개츠비’에 위기는 없었나요.
A : “제 건강이 가장 위기였어요. 이번에 2월경 한국에 돌아갔는데, 너무 무리했는지 기절하는 바람에 코도 골절되고 많이 다쳤죠. 막상 영국 와서 작업을 시작하니까 에너지가 다 충전이 됐어요. 한국에선 회사 대표로서 신경 쓸 게 많은데, 외국에선 제일 좋아하는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역시 저는 작품 하면서 행복해야 하고, 저를 대신할 경영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을 향한 ‘결핍’이 나의 원동력

Q : 건강도 상하고 돈도 잃으면서도 본고장 진출을 포기하지 않았는데요.
A : “정말 좋은 작품을 아직 못 만들었다는 결핍이 나의 원동력이었어요. 그 꿈 때문에 에너지를 낼 수 있었고, 지금은 개츠비가 성공 궤도를 탔으니 어서 또 다른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갈증이 생기네요. 천상 프로듀서인가 봐요.”
신춘수는 초창기 스스로 비주류라고 여겼던 것이 실패 원인이었고, 그런 생각에서 벗어난 것이 성공 비결이란 말도 했다. “초기에는 목표만 앞서서 결과를 빨리 내려 했기에 실패했어요. 스스로 비주류라고 생각해서 조급했던 건데, ‘개츠비’ 때는 차분하게 나에게 확신을 갖고 전략적으로 움직였죠. 여기서 내가 중심은 아닐지언정 같은 리그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인 프로듀서로서 명예롭게 일하고 있어요. 프로듀서는 최고 보스로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거든요. 영국인들도 제가 우리말을 가르쳐주면 좋아하고, 저와 일하는 걸 특별한 경험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한테 인사 한번 하려고 한국어를 배우는데, 자연스럽게 그런 문화가 생기는 게 재밌기도 해요.”

Q : K프로듀서가 성공했으니 우리 창작진에게도 기회가 열릴까요.
A : “창작진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게 프로듀서거든요. 이제 한국인들 기회가 많아질 거예요. 저부터 찾고 있으니까요. 그게 프로듀서 진출의 가장 큰 의미예요. 내가 성공한다는 건 투자자들 자본이 움직이고, 그렇게 뮤지컬이 만들어지죠. 프로듀서로서 후배들 길을 열어줬다고 생각하고, 한국 작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기회가 생길 겁니다.”

Q : 한국 뮤지컬 시장이 정점이라지만 어렵다죠. 지금 필요한 게 뭘까요.
A : “여기서 작업하면서 한국은 오히려 기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느껴요. 이제 생태계를 합리적이고 건전하게 만들 시점인 거죠. 우린 아직도 너무 배우 위주고, 창작진은 부족한테 작품만 쏟아지고 있잖아요. 진짜 발전을 위해서는 좋은 작가·연출가·작곡가 양성에 대해 고민해야 할거에요. 뮤지컬인 전체가 모여서 좋은 제작 시스템을 위해 하나하나 협의 하에 정리를 해야죠.”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입성은 시작일 뿐, ‘돈키호테의 꿈’은 여전하다. ‘개츠비’ 이상의 작품을 3개 이상 만드는 게 단기 도전 과제다. “좋은 작품 3개를 내놓으면 오디는 글로벌 컴퍼니로 자리매김해서 저 없어도 영원히 잘 굴러가는 특별한 회사가 될 거예요. ‘위키드’처럼 세대가 지나도 다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뮤지컬을 꼭 만들고 싶고, ‘일 테노레’ 같은 우리말 뮤지컬도 꼭 외국에서 자막과 함께 올리고 싶어요. 우리 배우들 퍼포먼스가 너무 좋은데, 꼭 보여줘야죠. 할 일이 많아서 행복합니다. 어제 모처럼 쉬었더니 온몸이 아프던데요.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체질인가 봐요.(웃음)”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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