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공화국,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게 될수록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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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벼농사와 페이스북의 공통점
한국인이 유난히 눈치를 많이 보고 체면을 중시한다는 인식은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 끊임없이 신경을 쓰다 보면 동네 뒷산에 갈 때도 히말라야 오를 만한 등산복을 챙겨 입고, 주차장도 좁은데 굳이 배기량 큰 차를 구입하기 마련이다. 이런 눈치와 체면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눈치를 많이 보는 것인지 엄밀하게 측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빡빡한 사회라고 한다. 지켜야 한다고 여겨지는 규범들이 많은 데다 ‘튀는’ 행동들이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은 자연히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모내기를 하는 모습. 벼농사는 협업이 필요해 이웃끼리 정보를 많이 교환하게 되는데 이것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 [중앙포토]](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07/joongangsunday/20250507135046117jhwl.jpg)
잠깐, 이쯤에서 ‘그게 무슨 경제학 논문이냐’ 하는 생각이 떠오를 법도 하다. 일단 이 논문의 핵심 명제는 전형적인 경제학 논문과 같이 “A를 하면 B라는 일이 벌어진다”라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 어떤 사회현상의 발생 원인을 밝히는 연구란 얘기다. 어느 연구자가 물가가 많이 오르는 것을 보았다. 왜 그런지 살펴봤더니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많이 늘렸다. 아, 실물경제의 거래량에 비해 화폐가 너무 많으면 물가가 오르는구나. 이렇게 인플레이션의 발생 원인에 대한 연구결과가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다 보면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들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좀 더 근본적으로, 경제학은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하면서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은 결국 거기에서 행복감을 얻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배고픔이나 추위 같은 불행을 피하기 위해 소비를 하고, 소비를 위해서는 생산을 해서 소득을 얻어야 한다. 결국 행복 추구는 모든 경제활동의 근원이다. 그러니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연구는 어찌 보면 경제학의 영역 안에서도 가장 핵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커버그가 하버드 기숙사 방에서 탄생시킨 페이스북의 창업과정을 그린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한 장면. 페이스북을 이용하면서 상호 비교에 노출된 대학생들은 정신건강이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소니 픽처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5/07/joongangsunday/20250507135046506cqqg.jpg)
그런데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현재 20~30대 젊은이들 수천 명에게 “이 중 무작위로 선택된 절반은 앞으로 5년간 아무런 소셜미디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래서 사회과학자들은 일상생활이나 역사 속에서 ‘마치 실험을 한 것과 같은 상황’을 발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이번 논문은 페이스북이 막 서비스를 시작하던 당시의 미국 대학에서 이런 준(準)실험적인 상황을 아주 잘 찾아냈다.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는 대학생 시절 회사를 세우면서 먼저 주변 친구들에게 페이스북을 써보게 한 다음 다른 대학으로 서비스 범위를 조금씩 넓혀갔다. 2004년 2월 하버드에서 출발한 페이스북은 이렇게 점진적인 서비스 확대를 거쳐 2006년 9월에야 일반 대중에게 공개가 되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조사를 꾸준히 정기적으로 해 오고 있다. 이 두 자료를 합치면, 예를 들어 스탠퍼드대에 페이스북이 서비스되기 시작했을 때 이 학교 학생들의 정신건강 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비슷한 여건에 있지만 아직 페이스북이 열리지 않은 다른 대학 학생들의 건강상태와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700여 개의 대학에 걸쳐 3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의 자료를 들여다본 결과, 페이스북을 사용하게 되면 정신건강이 유의하게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우울감이 9%, 불안장애가 12% 증가했다는 식이다.
#벼농사 지으면 눈치 더 본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다른 논문에서는 20세기 중반 중국의 농촌에서 준실험적인 상황을 찾아냈다. 우리는 농촌 공동체라고 하면 보통 뭔가 따스하고 인간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지만, 같은 이웃들과 한 자리에서 오래 산다는 것을 눈치 보기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그리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이웃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알고 지낸다”는 표현이 있는데, 정겹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숨 막힌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나. 그리고 이런 ‘옆집 눈치 보기’ 문화를 벼농사와 연관 짓는 이야기도 예전부터 있었는데, 벼농사는 모내기처럼 협동작업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웃들과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게 되고, 자연히 서로 비교도 많이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벼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다른 농부에 비해 더 우울해지지는 않을까? 이 문제 역시 실험을 통해 제대로 밝히려면 농민들을 “너희는 벼농사, 너희는 밀농사”처럼 무작위로 농장에 배치해야 한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을까마는, 중국이 처음 공산화되었을 때 집단농장을 만들면서 정확히 이런 식으로 농민들을 무작위 배치했다는 데 착안한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아주 이상적인 준실험적 상황이 만들어진 셈인데, 이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벼농사를 짓는 농장에 배치된 사람들이 밀농장에 비해 이웃들과 자신을 더 많이 비교하고 결과적으로 우울감을 더 많이 느꼈다고 한다.
조너선 하이트는 2024년 저서 『불안 세대』에서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면서 소셜미디어 이용자 연령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행복하려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덜 보는 게 상책인 것 같다. 옆집 숟가락 개수도 그만 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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