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한덕수 후보의 이상한 ‘호남사람론’
"저도 호남사람 입니다" ... 호남인 역사 문화 공동체성 안보여

문재인 정부를 빼고 5대 정부에 걸쳐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을 역임한 무소속 한덕수 대선 후보.
그는 왜 첫 지방 일정으로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을까.
광주 시민·사회단체들은 '내란 동조자'의 참배를 거세게 반발했다. 그는 참배가 가로막히자 돌연 "저도 호남 사람입니다"라고 외쳤다.
특정인을 특정지역 출신이라고 할 때 생물학적 요소가 우선한다. 적어도 아버지 고향이거나 본인이 태어나서 자란 지역이다. 가장 단순하게 '향우회'가 그 표본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동향인으로 묶는다.
다음으로 문화정서적 요소다. 생장지이면서 동시에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공유해야 한다. 호남사람이라면 '전라도', '호남 출신'이 공유하는 정서적, 문화적 공감대, 공동체성이 존재해야 한다. 미각으로 보면 영산강 유역 출신이라면 홍어를 안다. 섬진강 동네라면 같은 전남이지만 홍어를 전혀 먹지 않는다. 영산강쪽이 먹지 않는 향신료인 고수를 즐긴다.
한덕수 후보는 과연 호남사람일까.
그는 1949년 전주 태생이다. 생물학적으로 호남사람이다. 다만, 그가 전주에서 살았던 세월은 태어나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그리고 중학교 3년 뿐이다. 고교시절 이후부터 현재까지 단 하루도 주소지를 호남에 둔적이 없다.
최근 한 언론은 중견 언론인의 SNS를 인용, 한덕수 후보 고향을 보도한 바 있다. 기사를 보면 "1995년 유종근씨가 초대 민선 전북지사였을 때 전북 출신인 당시 한덕수 상공부 국장을 찾아가 도움을 부탁했으나, '나는 전북 출신이 아니니 앞으로 절대 나를 찾아오지 마라'고 냉대를 받았다고 한다"고 적었다.
이어 "1996년김영삼 정권 말기 특허청장에 임명됐을 때에는 언론이 그의 출신지를 '전북'으로 쓰자, 해당 언론사에 일일이 연락해 자신의 본적이 '서울'이라며 정정을 요구한 적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 후보는 그러나 김대중 정부 때에는 전혀 다른 입장을 보였다. "1998년 3월 통상산업부 차관에서 일약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발탁되었을 때 '전주가 고향이며, 초등학교 일부도 전주에서 다닌 전북 출신'이라는 요지의 팩스를 자신이 직접 각 언론사에 보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생물학적 규정 마저도 시류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한 후보는 문화정서적으로 호남사람일까.
호남은 소외, 홀대, 민주화, 역사정의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전라도라는 단어에는 낙후한 가난의 아픔과 민주화의 숭고한 저항이 교직돼 있다. 호남 근현대 100년의 역사를 보라. 1894년 동학, 1907~9년 한말 호남의병,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1970년대 민주화운동, 그리고 80년 5·18항쟁까지.
과연, 한덕수 후보의 DNA에 이 뜨거운 호남의 피가 흐르고 있는가. 지금 한 후보가 서 있는 자리는 진보 개혁의 땅인가, 아니면 반명(반 이재명) 깃발의 수구보수의 언저리인가. 묻고 싶다.
비상계엄 이후 처음 맞는 올해 5월, 5·18 영령 앞에서 뜬금없이 호남사람 운운한 저의는 뭔가. 호남에서 탄압받는 정치인으로 '보수의 인증'을 받고 싶었는가. 아니면 호남사람이니 호남표를 쪼개 달라는 것인가.
/이건상 기자 lg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