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스페인·포르투갈의 ‘전력망 경고’

고속열차가 멈추고 신호등이 꺼진 도심.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결제가 먹통이 된 세상. 지난달 28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하루 동안 전기가 끊기며 나타난 혼란상이다.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지만, 재생에너지로 절반 넘는 전기를 만드는 불안한 전력망 체계와 기후변화에 따른 급격한 기온 변화가 유력한 이유로 지목된다.
이 정전 사태를 단순히 지구 반대편의 일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10% 안팎이긴 하지만 스페인·포르투갈과 마찬가지로 ‘전력망 섬’이라고 불린다. 주변 나라와 연결된 전력망이 부족해 자체 전력망으로 수요를 전부 소화해 내야 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전력망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정전 사태로 이어지기 쉽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송전망 확충과 정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쉽지 않다. 주민 민원과 환경 단체 반발 때문에 전력망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는 고질적 문제뿐만 아니라, 갈등을 풀어내는 방식도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경기 하남시를 가보면 그 실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전은 그동안 하남 동서울변전소를 증설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동해안 원전과 석탄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야 한다는 이유다. 그러나 하남시가 ‘전자파와 소음 피해가 크다’는 주민 반발을 앞세워 작년 8월 증설에 제동을 걸었다. 양측이 공방을 거듭한 끝에 결국 행정심판까지 이어졌고, 작년 12월 경기도는 한전의 손을 들어줬다.
그로부터 넉 달이 지났지만, 건설 허가는 감감무소식. 한전 본부장과 직원들은 지난달 16일부터 하남시청 앞에서 변전소 건설 허가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이 지자체와의 갈등을 해결하겠다며 ‘1인 시위’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공기업 간부가 1인 시위에 나선 것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데, 시위에 나서기 전 넉 달 동안은 어떤 노력을 했나”라는 지적이다.
그나마 지난달 24일 한전 사장과 하남시장이 직접 만나 담판까지 벌였지만 뚜렷한 결론은 내지 못했다.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고 한다. 협의가 결렬로 끝나자 한전은 “재량권을 남용한 부당 행정”이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고, 하남시도 “시민들이 안전 우려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맞받으며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직접 해결점을 찾지 못하자 이젠 여론전에 기대를 거는 양상이다.
주민 불만을 방패 삼아 계속 허가를 늦추는 하남시, 송전선로 건설이 시급하다며 무작정 1인 시위에 나서는 한전. 두 곳 모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날아온 전력망의 경고장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1인 시위와 대국민 호소문을 대안으로 내놓는 사이, ‘송전망 완공’의 그날은 계속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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