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헌신과 통합...박태준 전 총리의 리더십

한준규 2025. 5. 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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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 과제는 경제회복·국민통합
산업화·민주화 세력 통합 꾀한 박태준
국가 위한 열정 헌신 포용 되새겨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박태준(가운데) 전 포스코 명예회장이 직원들과 함께 제철소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포스코 제공

지난달 한국갤럽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차기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국정과제로 경제 회복·활성화(48%)와 국민 통합·갈등 해소(13%)를 꼽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과 외환 위기 때도 없었던 저성장 고착화, 계엄·탄핵 국면에서 불거진 극심한 진영 대결을 고려하면 국민의 정치적 목마름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결과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말하지만,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 ‘국민 통합’과 ‘경제 활성화’의 과제. 그래도 이 과제 해결에 평생을 헌신했고 양쪽 모두 성과를 거둔 인물을 찾는다면, 포스코 초대 회장을 지낸 박태준 전 국무총리가 떠오른다.

그는 육사를 졸업한 군인 출신으로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박정희 정권에서 포항제철(현 포스코)을 설립해 회장으로 일했으며, 전두환 정권 때는 신군부 거수기였던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을 시작으로 여당인 민정당 대표 자리까지 올라갔다. 군인 출신 대통령의 측근으로 군사정권 지원을 받아 기업을 경영하고, 정계 거물로 승승장구했으니, 이력만 보면 요즘 논란이 되는 ‘극우 정치인’에 가깝다.

하지만 박태준은 달랐다. 박정희의 집권 연장을 위한 3선 개헌 지지 서명을 거부했고, 포항제철을 곳간으로 여긴 정치권의 정치자금 요구도 물리쳤다. 포항제철의 설비 구매 과정에 개입해 상납과 리베이트를 받아내려는 정치인들의 압력이 심해지자 박정희와 독대해 이른바 ‘종이마패’를 받아냈다. 박태준은 대통령에게 건의사항을 종이에 적어 전달했고, 박정희는 “소신대로 밀고 나가라”며 친필로 서명해준 것이다. 이 종이는 당시 포항제철이 온갖 외압을 물리칠 수 있는 증표가 됐다.

박태준이 포항제철을 지키려 한 이유는 제철소 건립에 대일 청구권 자금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식민 지배에 대한 보상으로 받은 조상의 핏값으로 제철소를 짓는 것”이라며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품질을 위해 작은 부실도 넘어가지 않았고, 가혹할 정도로 직원들을 몰아붙였지만, 스스로에게도 엄격했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포스코 주식을 단 한 주도 갖지 않았고, 퇴직금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세워진 포스코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춧돌이 됐다.

박태준은 정치인으로서 김대중, 김종필과 이른바 ‘DJT연합’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냈고, 산업화·민주화 세력의 화해, 영남·호남의 화합을 외쳤다. 철저한 보수주의자였지만 진보 인사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2000년 자택을 팔아 생긴 돈 가운데 10억 원을 당시 시민운동을 하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기도 했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와도 친분이 두터워 박태준의 묘비엔 조 작가의 추모 글이 새겨져 있다.

박태준은 ‘통합의 리더십’에 대한 질문을 받자 “빈곤의 사슬도 기억해야 하지만, 독재의 사슬도 기억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진보 인사인 김민웅 전 경희대 교수는 “이 땅의 그 어떤 보수도 이런 식의 역사적 성찰과 반성을 한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맞아 권력을 향한 정치인들의 욕망이 분출한다. 모두가 자격을 논하고, 상대를 깎아내린다. 저마다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박태준이 갖춘 국가에 대한 열정, 헌신, 청렴, 성찰, 포용을 보여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것이 우리 지도자들의 한계이고, 이런 정치 지형을 만든 게 국민들이니 정치인들만 탓할 순 없겠다. 정국은 요동치고, 판세는 어떻게 변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그래도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경제 문제를 해결할 '헌신적'인 리더, 사회 통합을 지향하는 '포용적'인 리더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한준규 경제산업부문장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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