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유산] (3) 경주 황룡사지

나를 짓누르고 있는 갖가지 허울을 훌훌 벗어던지고, 세파에 지친 자신을 잠시나마 가만히 어루만져 주고 싶은 사람, 어느 날 문득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치열하게 맞서고 싶은 사람, 그 무엇보다도 고독과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 있다. 경주 황룡사 절터다. 이곳에서 먼 산과 하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홀로 걸어보라. 마음의 안식과 함께 새로운 힘과 활력, 영감을 얻게 될 것이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모습 너머와 그 아래, 속을 보고 싶어 한다. 로마 시대 대부분 도시에는 검투 경기를 위한 콜로세움이 있었다. 제국이 멸망한 뒤 사람들은 콜로세움을 뜯어 당시로서는 귀한 건축 자재인 돌을 얻었다. 돌은 무거워 멀리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콜로세움 주변에 집을 짓고 살았다. 주거지 앞에는 자연스럽게 콜로세움 모양인 달걀 형태의 광장이 생겨났다. 콜로세움은 허물어지고 없지만, 후세 사람들은 그 돌로 지은 집들과 광장을 바라보며 경기장의 규모와 위용, 그곳에서 펼쳐진 처절한 혈투와 사람들의 잔인한 광기를 상상한다.
경주를 걸어 다니다 보면 팰럼시스트(Palimpsest)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이 단어는 양피지 위에 글자가 여러 겹으로 겹쳐 보이는 것, 즉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것을 뜻한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양피지에 글을 썼다. 사람들은 귀한 양피지를 재활용하기 위해 이미 쓰여 있는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썼다. 그런데 먼저 쓴 글자를 제대로 지우지 못해 새로 쓴 글자와 중첩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건축에서 오래된 역사적 흔적이 현재의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다. 경주는 로마와 같은 유적지다. 우리는 경주 어디를 가더라도 현재와 중첩된 형태로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을 유심히 살펴보며 여기는 무슨 자리였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를 상상하게 된다.

◆황룡사, 황룡사지, 동양 최대의 절터, 호국불교의 상징
경주 월성의 동쪽, 용궁의 남쪽에 있는 황룡사(경상북도 경주시 임해로 64-19)는 동양 최대의 사찰로 '칠처가람지허(七處伽藍之墟)'의 하나였고 규모나 사격(寺格)이 신라에서 가장 크고 높은 절이었다. 높이 182㎝에 이르는 대형 치미는 건물의 웅장한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황룡사는 4대 왕 93년간에 걸쳐 국가적으로 조성된 대사찰이다. 황룡사는 1238년(고종 25) 몽골군 침입 때 모두 불탔고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다. 황룡사지(국가등록유산) 역시 동양 최대의 절터다.

늪지를 메워 그 위에 지은 황룡사는 중문·목탑·금당·강당이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1탑식 배치였다. 장육존상과 목탑 등이 조성된 후에는 금당 좌우에 작은 금당이 배치되는 1탑 3금당식으로 바뀌고, 탑의 좌우에 종루와 경루(經樓)가 대칭을 이루게 배치되었다. 사방은 복도와 같은 회랑으로 둘러싸여, 독특한 가람배치를 보인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종루에는 거대한 종이 있었는데, 몽골이 침입했을 때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이하게도 금당의 좌우에 거의 같은 규모의 건물을 나란히 세웠음이 밝혀졌는데, 이 건물 역시 금당과 같은 성격으로 보인다. 또한, 강당의 좌우에도 독립된 건물을 배치하였음이 밝혀졌고, 동서남북으로 마련된 회랑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독립된 상태였음이 확인되었다.

1969년 강당지를 발굴 조사하여 금당, 강당, 탑지의 초석을 발굴했다. 1976년부터 시작한 발굴 조사에서 금동불입상, 풍탁, 금동귀걸이, 각종 유리 등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9층 목탑의 기단을 비롯한 건물 하부구조는 확인되었으나, 상부가 정확히 고증되지 않아 전체적인 복원은 못 하고 64개 주춧돌로 된 기단부만 복원하였다. 황룡사지 옆에는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의 과정을 담은 3D 영상 시청각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신라 역사전시실 등으로 구성된 황룡사지 황룡사 역사문화관이 있으며 1층에는 황룡사 9층 목탑을 10분의 1 크기로 재현한 모형탑이 전시되어 있다.
◆폐허의 미학, 졸속한 복원은 역사적 상상력 억압

절터 여기저기를 걸어보고 분황사까지 들린 후, 마지막으로 발걸음을 돌려 다시 9층 목탑 터로 향한다. 외세의 시달림을 막고 신라가 중심이 되는 삼국 통일을 소망하여 건립한 탑이다. 64개의 초석이 있고 가운데는 심초석이 있다. 심초석 위에는 그것을 덮고 있는 커다란 암석이 돌출되어 있다. 이 돌에 기대 넓은 들과 명활산, 선도산, 남산, 소금강산 등을 바라보고, 반월성, 동궁과 월지, 첨성대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당신이 꿈꾸고 소망하는 갖가지 탑을 쌓았다 허물기를 반복해 보라. 이게 황룡사지가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폐허는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이 생의 덧없음과 영원함, 인간 정신의 불멸성, 굴곡진 인간사의 허망과 진실을 돌이켜보며 오늘의 삶에 필요한 지혜를 얻고 내일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폐허는 폐허로 보존될 때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가진다. 어설픈 복원은 역사적 가치를 훼손한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에 있는 9층 목탑 모형으로 충분하다. 졸속한 복원은 역사적 상상력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운다고 했다.
윤일현 시인·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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