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안아, 안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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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은 내게 참 고단한 시기였다.
크고 작은 풍파를 남부럽지 않게 겪어왔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나의 오만과 방심을 깨우치려는 듯, 삶은 나를 엎어뜨리고 메치며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가깝게는 연인의 투병과 통증이 고단함의 가장 큰 이유였고, 멀게는 화창해야 할 봄날에 쏟아졌던 소나기눈과 쌀쌀한 기후가 내 몸과 마음을 고치 속 애벌레처럼 움츠리게 했다.
'안아, 어서 안아.' 내 협소한 테두리를 깨뜨리는 힘은 그렇게 내 몸의 둘레를 벗어나 상대와 맞닿았을 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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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땐 새 힘 불어넣어주며
회복의 시간으로 이끌고 가
힘들 때 서로 안아줄 수 있길

지난 4월은 내게 참 고단한 시기였다. 크고 작은 풍파를 남부럽지 않게 겪어왔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나의 오만과 방심을 깨우치려는 듯, 삶은 나를 엎어뜨리고 메치며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가깝게는 연인의 투병과 통증이 고단함의 가장 큰 이유였고, 멀게는 화창해야 할 봄날에 쏟아졌던 소나기눈과 쌀쌀한 기후가 내 몸과 마음을 고치 속 애벌레처럼 움츠리게 했다.
하지만 날씨는 청명한 봄기운을 되찾았고 나 역시 스스로 만든 방어막에서 벌벌 떨고만 있을 순 없었다. 고치는 성충으로 변화하기 위한 임시 안식처일 뿐 탈피하고 성장하려면 때에 맞춰 껍질을 부서뜨려야 한다. 곰곰이 뜯어 보니 내 정신력과 체력은 그저 비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에 매달려 근거리의 엽록체만 갉는 어린 유체와 비슷했다. 큰바람이라도 불면 온몸의 마디마디를 와짝 긴장하고, 천적의 낌새가 느껴지면 보호색으로 위장해 숨기에 급급하니 말이다. 한데 실제로 나는 약하고 미숙한 어린애는 아니다. 나이는 마흔이 넘었으며 소설가로서 책을 펴내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니 마음은 초심과 동심을 지닌다 해도 고난에 대처하고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은 내 삶의 경력에 걸맞게 자라나야 한다. 내게 익숙한 틀과 울타리를 넘어 다른 이의 심정을 헤아리는 힘. 근래 내 생활에 비춰 말한다면, 아파서 끙끙 앓는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잔소리를 늘어놓기보다 신열에 들뜬 이마에 손을 얹어주며 곧 나아질 거라 말하는 의연하고 성숙한 태도가 절실하다.
연인은 다발성 통증의 원인을 명확히 밝혀낼 수 없어 여러 대학병원의 각기 다른 진료과를 고달프게 오가고 있다. 아픔 그 자체와 더불어 언제까지 이런 고초를 겪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기약 없는 불안이 우리를 더 주저앉혔다.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위기 대처 능력이 기초반 수준인 나는 아픈 사람과 번번이 말다툼을 벌였다.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하지 마라. 나름의 조언을 한답시고 코너에 몰린 사람을 닦달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스트레스에 취약한 내 성향 탓에 연인과 갈등하는 불편함도 오래 못 견디고 내 잘못을 뉘우치며 화해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안아, 이리 와, 안아."
다툼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열렬히 포옹했다. 두 팔을 벌려 서로를 와락 껴안으면 허다한 차이와 실랑이는 사르르 녹아버리고, 그 어느 때보다 너그러운 아량이 서로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포옹이 주는 포용력은 언제든 유용해서 우리는 갈등에 봉착할 때마다 이 레퍼토리로 돌아갔다. '안아, 어서 안아.' 내 협소한 테두리를 깨뜨리는 힘은 그렇게 내 몸의 둘레를 벗어나 상대와 맞닿았을 때 찾아왔다. 온순해진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마음의 격차를 단숨에 줄여주는 벅찬 밀착의 기쁨이 일상에 그득했다. 양팔을 들며 안아 달라 조르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는 어른, 비척비척 걷는 늙은 개를 지그시 안고 산책하는 사람, 겨우내 추위를 버텨낸 가로수의 몸통을 부둥켜안고 싱그러운 연둣빛을 올려다보는 순간까지. 가슴을 열고 몸을 맞대는 포옹은 한 사람의 품에 깃든 도량을 깊게 하고, 삶을 떠받치는 감격의 지층을 다져주고 있었다.
유독 보드랍고 포근한 품을 좋아하는 나는 그간 소설에서 포옹의 순간을 자세히 묘사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쓴 문장들의 실례를 여실히 체험하고 있다. 부디 앞으로도 서로를 안아줄 수 있기를. 건강할 땐 씩씩한 기운으로, 아플 때도 쇠진한 몸에 새 힘을 불어넣으며. 희망이란 말과 짝이 잘 맞고 회복의 순간을 가만히 곁에 불러오는 포옹. 모질었던 나날을 모나게만 기록하지 않기 위해 다시금 나를 살린 그 사랑의 주문을 읊어 본다. '이리 와, 우리 서로를 안아주자.'
[김멜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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