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의 ‘사전’과 영어사전의 ‘사전’, 서로 다른 말이라고? [말록 홈즈]
“엄마, 바다는 왜 파래요?”
“하늘이 비쳐서 그렇지.”
“그럼 하늘은 왜 파래요?”
“바다가 비쳐서 그렇지.”
“그런데 우리 동네엔 바다가 없는데, 하늘이 왜 파래요?”
호기심(好奇心: 좋아할 호, 기이할 기, 마음 심)이란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를 뜻하는 영어 ‘curiosity’는 ‘열심히 탐구하는/간섭하기 좋아하는’을 뜻하는 라틴어 ‘curiosus’에서 왔는데, 그 출발점에는 ‘돌보다/관심을 갖다’란 의미의 단어 ‘cura’가 있습니다. ‘치료’를 가리키는 영어 ‘cure’와 한뿌리인 말입니다.
소년은 꼬맹이 시절부터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가난한 집 시골소년에겐, 궁금증을 시원스레 풀어줄 선생님도, 백과사전도 없었습니다. 고작해야 KBS1밖에 안 나오는 TV와 낡은 그림 동화책이 다였습니다.
엄마 등에 업혀, 바다 없는 마을의 하늘이 왜 파랗냐고 묻던 아들은 엄마의 표정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짧은 정적은 다섯 살 꼬마도 머쓱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중년에 접어든 낡은 소년의 머리에 우연히 그 머쓱했던 순간이 되살아 났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참 엉뚱하고 집요했던 호기심이었습니다.
“엄마, 그때 별걸 다 물어봐서 미안해요.”
“아니야. 어딘지 특별해 보이는 아들을 보며 흐뭇했는데,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몰라서 속상했어.”
“엄마, 저도 왜 파란지 아직 모르는걸요.”
1983년, 국민학교 2학년이던 소년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사했습니다. 많은 것들이 달랐습니다. 시골 학교에선 1학년 때부터 매일 점심 도시락을 싸갔는데, 도시에서는 대부분 4교시 후 수업이 끝났습니다. 자연스럽게 급우들의 집에 놀러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새로 지은 주공아파트나 연립주택에 사는 아이들이 많았고, 종종 마당 너른 2층 양옥에 사는 자제분들도 계셨습니다.
친구들의 어머니들은 점심으로 대개 너구리를 끓여주셨습니다. 100원짜리 삼양라면이나 농심 해피소고기를 라면의 전부로 알던 녀석에게, 가격이 200원이나 나가던 너구리는 새로운 누들피아였습니다.
너구리를 먹고 나면 ‘푸른 구슬(blue marble)’처럼 빛나는 지구 곳곳에 부동산 투기를 자행하는 전설의 보드게임 ‘부루마블’ 판을 벌였습니다. 소년중앙이나 어깨동무 같은 소년잡지들도 함께 보았습니다. 그 속엔 외계인, UFO, 로보트, 공룡, 뱀파이어같이 신기한 이야기들이 가득했습니다. 집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행운이라 신났습니다.
계몽사나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어린이 학습대백과사전에도 홀렸습니다. 집에 있던 사전은 처음 보는 출판사 외판원 아저씨가 아버지의 의리와 온정에 호소해 입양됐던 네 권짜리 양장본 세트로, 그림도 아주 적고 문장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 마저도 아버지 물건이라 읽어볼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 집에 있던 백과사전은 올컬러 사진과 그림이 가득해 볼거리도 많았고, 이야기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갖고 싶은 책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내 처지는 ‘보헤미안 랩소디’였습니다.
“But I’m just a poor boy, nobody loves me”
국민학교 5학년 봄,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입원으로, 소년의 밤은 을씨년스러웠습니다. 환자용 침대뿐이던 6인용 입원실은 블랙홀처럼 녀석의 소중한 것들을 빨아들였습니다. 엄마도, TV도.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나 봅니다. 일주일 넘도록 무료함에 답답해진 소년은 뭐든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딱딱한 단어와 이야기들로는 즐겁지 않았습니다. 무심코 책장 안을 들여다봅니다. 미닫이 유리문 너머로 뭔가 보입니다. 만져선 안 되는 재미없던 백과사전이 손짓하는 것만 같습니다.
“날 꺼내 줘. 그리고 읽어 봐, 세상엔 이렇게 신기하고 재밌는 게 많아.”
“안 돼. 그랬다간 아빠한테 죽도록 혼날 거야.”
“훗, 넌 결국 겁쟁이였구나!”
“이런 간나사전!”
까치발을 들고 책장문을 열어, 머리통보다 더 큰 사전을 한 권 꺼냅니다. 두근두근, 조심조심. 앗, 갑자기 한쪽 발을 헛디디며 표지만 잡고 있던 책이 추락합니다.
“지이익!”
젠장, 표지가 제대로 찢어졌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충격과 공포의 순간에, 심장이 옥죄어 옵니다. 조만간 엄청나게 얻어터지고, 지옥에서 새 친구들을 만나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후우, 그래도 지금보다 심심하진 않겠네.”
호기심은 조만간 소년을 살해할지도 모릅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더니. Curiosity kills the cat. And the boy.
백과사전(百科事典)은 ‘1백 백’, ‘종류 과’, ‘일 사’, ‘책 전’으로 이뤄진 단어입니다. 여기서 백은 숫자 ‘100’이 아니라, ‘모든’을 뜻합니다. 백화점(百貨店: 1백 백, 물건 화, 가게 점)과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일본이 근대화 시기에 ‘encyclopedia’를 번역한 ‘백과전서(百科全書: 1백 백, 종류 과, 모든 전, 책 서)에서 유래한 말로 추정합니다. ‘Encyclopedia’는 1530년대에 현대 라틴어 encyclopaedia에서 왔습니다. 그리스어 enkyklios paideia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Enkyklios는 “둥근 모양의/일반적인”를 뜻합니다. ‘En’은 ‘안(in)’, ‘kyklos’는 ‘동그라미’에서 왔고, ‘paideia’는 “교육/어린이 양육”을 의미합니다.
백과사전과 뒷말이 같은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의 한자는 다릅니다. 이들 어학사전의 한자 ‘사전(辭典)’은 ‘말씀 사(辭)’자와 ‘책 전’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사전(辭典)의 영단어 ‘딕셔너러(dictionary)’는 중세 라틴어로 ‘말의 책’을 뜻하는 ‘dictionarius liber’의 줄임말로 추정됩니다. ‘말하다’를 뜻하는 후기 라틴어 ‘dicere’에서 왔습니다. 네, ‘발음(發音: 일어날 발, 소리 음)’을 뜻하는 영단어 ‘딕션(diction)’도 이 ‘dicere’에서 출발했습니다. 말에 대한 호기심 참 많죠? 그래서 ‘말록’입니다.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3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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