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만 되면 아빠보다 더 인기 좋은 '이 남자' [강홍민의 굿잡]
예나 지금이나 5월 ‘어린이 날’이 되면 장난감 가게 앞은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날만큼은 부모들도 장난감 앞에 선 아이에게 다음을 기약하긴 어렵다.
지금처럼 미디어가 발달되기 전, 5월이 다가오면 학교 앞 문방구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린이 날 받고 싶은 선물을 얘기하곤 했다. 계산도 하기 전부터 ‘저건 내꺼야’라며 의미 없는 다툼이 몇 차례 지나고 디데이가 되면 부모님의 손을 이끌고 누구보다 빨리 문방구로 뛰어가곤 했다.
그 시절 아이들의 유일한 목표는 ‘장난감’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의 놀잇감이 다양해지고 장난감의 인기가 시들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대형마트의 완구류 코너는 부모들의 긴장감을 높인다. TV에서 보던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본 떠 만든 장난감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모습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 퀄리티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수천 번의 안전성 검사를 거쳐 시장에 나오는 이 장난감을 어린이날에 맞춰 내놓기 위해 완구 디자이너는 1년 전부터 준비한다. ‘키덜트(Kidult)’이자 ‘장난감 삼촌’으로 불리는 김혁 영실업 완구 디자이너를 만나 ‘직업의 세계’를 들어봤다.

아이들에게 굉장히 인기 있는 직업일 것 같아요.
“조카들한텐 ‘장난감 삼촌’으로 통하죠. 주변 친구 자녀들이나 친척 조카들한테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때 장난감을 챙겨주곤 하는데, 너무 좋아하죠.(웃음)”
완구 디자이너를 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올해 입사한 지 9년 됐어요. 대학 졸업하고 첫 회사로 입사한 곳이 영실업이었는데, 서른 중반인 지금까지 일하고 있으니 저도 꽤 됐네요.(웃음)”
입사하고 한 번도 한 눈을 팔지 않았네요. 그만큼 매력이 있나 보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을까요?(웃음) 완구 디자인은 타 제품 디자인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어요. 대부분의 제품 디자인은 마이너스 요소가 큽니다. 최초 디자인 시안이 제품을 만드는 단계를 거치면서 디자인 요소가 줄어들게 되는 반면, 완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디테일이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 점이 저희 같은 디자이너들에겐 장점으로 작용하죠.”
완구 디자이너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단순히 장난감을 만드는 것을 넘어 놀이성·안전성·학습효과·창의성 그리고 시장성까지 두루 고민해 제품을 기획·디자인 하는 역할이에요. 특히 요즘에는 IP(지식재산)를 기반으로 한 완구가 많이 나오거든요. 제가 맡고 있는 ‘또봇’ 시리즈처럼요. 그 경우엔 애니메이션이 함께 방영되고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자연스레 관여하게 됩니다.”
그동안 참여했던 IP 프로젝트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과거에 ‘몬카트’, ‘슈퍼텐’에 참여했고, 현재는 ‘또봇 : 대도시의 영웅들’에 참여하고 있어요.”
그럼 ‘또봇’ 제작에 어떤 식으로 참여하는 건가요.
“시나리오 단계부터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하고, 캐릭터의 세계관 설정에도 의견 전달을 하기도 해요. 왜냐하면 스토리에 따라 장난감의 변신 또는 활동범위가 달라질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무기를 쓰는지, 관절은 어디까지 구부러지고 변신은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아야 그대로 또는 그 이상을 구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스토리에 참여하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요.”

그럼 또봇을 자주, 많이 봐야겠네요.
“그럼요. 업무시간에도 챙겨 봅니다. 그리고 제작사에서 방영되기 전 파일을 공유해 줘 미리 볼 수 있는 특권이 있기도 해요.(웃음)”
새로운 버전의 장난감을 만드는 시기가 있나요.
“보통 한 시즌에 4~5개의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럼 각 디자이너마다 한 두 개정도 디자인을 맡아 업그레이드를 하죠. 또 매년 돌아오는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에 맞춰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기도 해요.”
올해 어린이날에 맞춰 출시하려면 보통 언제부터 준비에 들어가나요.
“1년 전부터 준비합니다. 이번 버전도 지난해 3월부터 기획해 만든 제품이에요.”
5월, 12월이 아주 바쁘겠군요. 그 성수기 시즌에 판매량도 꽤 되겠군요.
“보통 주말 일일기준으로 500~600개 이상 판매가 되는데, 어린이날이 껴 있는 5월의 경우 1000개가 넘기도 해요.”
장난감을 기획·제작하는 과정도 궁금합니다.
“먼저 소비자인 아이들의 니즈와 트렌드를 분석해 뭘 만들지 콘셉트를 기획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버전에서도 늘 새로운 버전을 고민해야 해요. 예를 들어, ‘또봇’ 시리즈의 경우 변신 자동차라는 전체 콘셉트 안에서 ‘코어로이드(본체에서 분리해 활동 가능하게 만든 기능)’라는 핵심 기능을 이번에 추가했어요. 이처럼 기존에 있는 모델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떤 부분을 업그레이드 할지 기획하는 거죠.
이후 3D 프로그램을 통해 기획한 부분들이 구현가능한지 시뮬레이션과 모델링을 진행하고, 디자인 시안이 확정되면 세부 모델링에 들어가게 됩니다. 목업(Mock-up)을 통해 기능성·안전성을 통해 검토한 후 금형제작-사출-조립-테스트 과정을 거쳐 최종 양산에 들어가게 되죠.”
굉장히 많은 과정을 거치는 군요.
“쉽게 말하면, 커다란 바위를 조각해 하나의 완구를 완성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획안이 통과되면 대표님 이하 직원들을 상대로 혹독한 품평회를 거치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수천 번의 제품 안전성 테스트를 거치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안전성 테스트를 거친다는 건가요.
“저희 같은 완구류 제품이 만들어지면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기 전 ‘KC인증’을 받기 위해 테스트를 받는데, 저희는 KC인증을 받기 전에 자체적으로 QC(Quality control)테스트를 실행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장난감을 꺾거나 던지고 놀기 때문에 관절 부분이 튼튼해야 하거든요. 관절(조인트)에 대한 내구성 확인을 위해 한 부위당 최소 3,000번 이상 회전 테스트를 거쳐요. 테스트를 보고 있으면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예요.(웃음)”
*KC인증(안전인증) 제도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제5조 및 어린이제품 안전특별법 제17조에 근거하여 전기용품, 생활용품, 어린이제품을 대상으로, 해당 제품과 생산설비 등의 안전성에 대해 인증하는 제도.
반대로, 최근 중국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완구류에서 안전 기준성 수치를 초과한 제품들이 나온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이건 이유가 뭔가요.
“아무래도 원가를 낮추기 위해 값싼 재료로 만들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나 아이들은 장난감을 입에 넣기도 하고, 안고 자기도 하는데 유독 물질이 배출되는 재료를 사용해 만든 장난감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얘길 들어보니, 완구류 특히 장난감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하기 쉽지 않겠군요.
“아마 그래서 제가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어요. 저도 어릴 적부터 장난감을 좋아해 많이 모았거든요. 특히 레고요.(웃음)”
혹시 지금도 모으나요.
“건담 피규어를 모으고 있긴 해요. 전문 수집가들에 비해선 걸음마 단계지만 아마 한 1천만원대 정도 투자했을걸요.”
완구 디자이너가 꼭 갖춰야할 조건도 있나요.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 아닐까 싶어요. 저희는 단순히 예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호기심을 자극하는지를 잘 알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기획력도 중요해요. 아무리 멋진 디자인도 놀이성과 기능성, 안전성, 원가 구조를 고려하지 않으면 실제 제품으로 이어지기 어려워요. 디자인 툴이나 모델링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습득할 수 있는 반면,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전체적인 기획을 조율할 수 있는 사고방식은 경험과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봐요. 결국 좋은 완구 디자이너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니까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첫 번째는 월급날이고요.(웃음) 가장 좋을 땐 제가 디자인한 제품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죠. 제품 리뷰에 ‘이번에 진짜 멋있게 나왔다’, ‘변신이 참신하다’ 같은 댓글이 달리면 젤 뿌듯한 것 같아요.”
시장반응을 체크하기 위해 일부러 마트도 가 보나요.
“그럼요. 자주 갑니다. 완구코너에 가보면 또봇 앞에서 고민하는 아이들을 종종 보거든요. 그럴 때 슬쩍 옆에 가서 ‘오! 이거 되게 멋있는데’ 한마디 하고 옵니다.(웃음)”
아이들에게 이 장난감 내가 만들었다 말하진 않았나 보군요.
“아직 그 말까진···. (웃음)”
완구 디자이너의 장단점을 꼽자면 뭐가 있을까요.
“가장 큰 장점은 업무환경인 것 같아요. 사무실 곳곳에 장난감이 있어 놀이터 같은 분위기에서 일한다는 점이죠. 그리고 저희 일이 꽤나 보람 있는 직업이에요. 제가 만든 장난감을 아이들이 좋아해주는 것만큼 행복해지는 일은 아마 없을걸요. 반대로 ‘이게 뭐야?’라는 댓글이 좀 아프기도 하지만요.(웃음)”
직장인들이 피해갈 수 없는 직업병도 있을 것 같아요.
“장난감을 장난감 그대로 보지 않는다는 점 아닐까 싶어요. 피규어를 구입할 때도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 ‘이건 금형비가 얼마나 들었을까’, ‘이 조형은 금형에서 어떻게 뺐을까’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채워요. 즐기려고 시작한 취미에서 일 생각을 하게 되니 이게 직업병 아닐까요.(웃음)”
요즘 미디어 콘텐츠 등으로 완구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데, 향후 완구 디자이너의 비전은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현재 완구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미디어 콘텐츠 중심의 놀이 환경 변화와 저출산으로 인해 장난감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상황이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아이들만의 장난감이 아니라 반려동물, 키덜트, 실버세대까지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 있으니까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시장이 확장될 것이라 믿어요.”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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