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종전·통일 50주년 베트남, 고통 넘어 새 역사 쓰다

베트남이 4월 30일 베트남 전쟁(1955∼1975) 종전·통일 50주년을 맞았다. 50년 전 포성은 멎었고, '통일 베트남'은 전장의 잿더미 위에서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개혁·개방 정책으로 전환했고, 미국·한국과도 화해했다. 이후 외국기업 유치 등을 통해 신흥공업국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 나라의 '반세기 여정'은 고통을 넘어 희망을 일군 인간 정신의 증거이자, 살아 있는 서사다.
◆피로 쓴 승리의 여정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로 삼으려고 했다. 이에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이 이끄는 독립운동 세력은 결연히 저항했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며 물러났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베트남은 분단됐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남베트남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 전쟁에 본격 개입했다. 그러나 정글과 진흙탕에서 미군은 발목이 잡혔다. 미 본토에서는 반전 물결이 들불처럼 번졌다.
결국 미국은 1973년 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했고, 북베트남은 2년여 만에 남베트남 정권을 무너뜨리고 전쟁을 끝냈다. 1975년 4월 30일 운명의 그날 아침, 북베트남군의 T-54 탱크가 사이공(현 호찌민) 대통령궁 정문으로 돌진했다. 철문이 부서지는 굉음과 함께 탱크가 진입하자 20년 동안 이어진 남북 간 전쟁은 막을 내렸다.
통일은 됐으나 전쟁은 깊은 상처를 남겼다. 북베트남군·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 측은 80만명 이상, 미군은 5만8000여명, 남베트남군은 3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을 돕기 위해 파병된 한국군도 5099명의 사망·실종자를 냈다. 민간인 피해는 헤아릴 수 없는 규모다.
◆상흔 딛고 개혁·개방으로 고속 성장
프랑스 식민 지배, 그리고 전쟁의 긴 터널을 지나서야 비로소 독립국으로 통일을 이뤘지만 평화와 번영은 곧바로 찾아오지 않았다. 1978년 캄보디아, 1979년 중국과 잇따라 치른 전쟁에 따른 국방비 부담, 사회주의 계획경제 실패 등으로 나라는 다시 빈곤의 늪에 빠져 버렸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기 어려워 배를 타고 바다로 탈출한 난민(보트 피플)이 수십만명에 달했고, 그 중 상당수가 보트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보트 피플'은 그렇게 베트남 역사에 또 다른 상처로 기록됐다.
마침내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쇄신) 구호를 내건 개혁·개방 정책으로 전환했다. 외국 자본과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경제 구조를 탈바꿈시켰다. 1990년대 이후 연 5~9%의 고도성장을 이어가며 대표적인 신흥공업국 중 하나로 떠올랐다. 50년 전 1인당 국내총생산(GDP) 100달러 미만이었던 최빈국이 이제는 4600달러 수준의 중진국으로 발전했다.
◆적이 아닌 동반자로
종전 이후 베트남은 전쟁의 앙금을 뒤로 하고 미국·한국과 화해의 길을 걸었다. 경제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해선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에만 기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양하게 외교적 지평을 넓혀야 했다.
모든 외국, 특히 주요국과 우호 관계를 갖는다는 '대나무 외교' 기조하에 과거 적국이었던 미국과 '협력의 길'을 선택했다. 적대에서 협력으로의 전환은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전쟁 종식 20년 만인 1995년 베트남은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단행했다.
미국 역시 변화를 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냉전 이후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선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은 전략적 선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국 관계는 점점 두터워졌다.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현지 서민 식당에서 쌀국수를 먹으며 베트남 국민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같은 방식으로 친근하게 어울렸다. 이는 두 나라 화해의 상징적 장면들이다.
2023년 9월, 조 바이든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과거 총구를 겨눴던 양국이 경제, 안보, 기술 분야에서 손을 맞잡은 것이다. '대나무 외교'를 통해 이끌어낸 '화룡점정'의 외교적 성과였다.
베트남은 한국과도 긴밀한 경제 협력을 구축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얼어붙었던 양국 간 외교의 빗장을 열었다. 1992년 두 나라는 외교 관계를 재개했다. 중국에 이어 또 다른 기회를 찾던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향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휴대전화와 가전 생산의 거대한 허브를 베트남에 구축하며, 한때 베트남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책임지는 위상을 세웠다.
한국과 베트남은 수교 30주년인 2022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다. 이후 양국의 동행은 더 긴밀해졌다. 작년 기준 한국의 베트남 누적 투자 규모 약 874억 달러(약 126조원)에 달했다.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외국인 직접투자(FDI) 국가다.
◆싸웠고 이겼고 나아간다
베트남은 4월 30일 호찌민에서 군·공안·참전용사·지역주민 등 1만3000여 명이 참가한 초대형 퍼레이드를 열었다. 베트남 공군의 수호이(Su)-30MK2 전투기, 야크(Yak)-130 경전투기, Mi-8·Mi-17 헬기가 호찌민 상공을 누비는 가운데 수십만 명의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행진을 관람했다.
호찌민 외에도 수도 하노이에서는 불꽃놀이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려 통일과 고속 성장을 자축했다. 온 나라가 거대한 축제의 장이 됐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세계에 드러냈다.
다만 최근 미국과의 관계는 이런 축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화해 기조를 깨는 언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의 적이 오늘의 이웃이 되는 세상, 베트남은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으면서 미래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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