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 향하는 이창용號, 저성장·금융불안 속 통화정책 방향은

최온정 기자 2025. 5. 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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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작년 10월 금리인하…3년 2개월만에 긴축 종료
인하 시점 놓고 실기론… 李총재 “1년 뒤 평가해달라”
트럼프 재집권·韓 조기대선에 경기 하방위험 확대
추경 강조하는 한은… “경기대응은 재정정책으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1일로 취임 3주년을 맞았다. 임기 4년 중 1년을 남긴 이 총재는 이제 ‘통화정책의 결실’을 요구받는 시점에 섰다. 취임 초기 고물가 대응을 위해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을 주도했던 그는 내수 부진 우려가 불거지자 작년부터 금리 인하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제와 국내 정치 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남은 1년의 항해는 더욱 거센 풍랑을 예고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내수 부양을 위해 연내 최소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트럼프발(發) 관세 폭풍으로 경기 하방 압력이 더 커지더라도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다수다. 임기 내내 환율과 가계부채 상승 우려에 시달렸던 이 총재가 성장보다는 금융안정에 방점을 더 찍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 소비자 물가 2%대로 하향… 가계부채 비율 5분기째 하락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 총재는 지난 2022년 4월 취임한 이후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며 강도 높은 긴축기조를 이어갔다. 그 결과 6%를 넘겼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작년 8월 물가 안정 목표치인 2.0%를 달성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지난 2021년 3분기(99.3%) 정점을 찍은 뒤 내리 하락해 작년 말 기준 90.1%로 내려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외교정책협회(FPA) 시상식에서 'FPA 메달'을 수여받은뒤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은행은 작년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낮추며 3년 2개월 만에 긴축기조를 종료했다. 미국의 대선과 맞물려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후에도 비상계엄과 제주항공 사태로 소비심리가 위축되자 작년 11월과 올해 2월 추가 인하를 단행, 기준금리를 2.75%로 낮췄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우선 한국개발연구원(KDI)을 필두로 인하 시점이 늦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KDI는 이미 작년 상반기부터 근원물가 상승률이 2%에 근접했다는 점에서 긴축기조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후 비판의 강도를 높여 ‘금리 인하 실기론’까지 언급했다. 한은의 금리 인하가 더뎌 내수가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골자였다.

반면 금리를 더 올렸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관계자는 “한은은 다른 나라에 비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렸지만 2023년 1월 이후로 금리 인상을 중단하면서 최종 금리 수준이 미국보다 낮았다”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으로 인한 결정이었지만,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낮은 금리 수준으로 추가 인하 여력이 작아지는 문제가 생겼다”고 비판했다. 그는 “금리를 더 올리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정서희

결과적으로 물가는 작년 말부터 2%대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고, 가계부채 증가세도 둔화 추세다. 환율 역시 비상계엄 여파로 한때 1480원을 돌파했지만 최근에는 하락세로 전환됐다. 이 같은 정책 성과를 바탕으로 이 총재는 지난해 글로벌 금융전문지 더뱅커가 수상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올해의 중앙은행장’으로 선정됐고, 올해는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 싱크탱크인 외교정책협회(FPA)가 수여하는 최고 권위 상인 ‘FRA 메달’을 받기도 했다.

이 총재는 작년 11월 10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간의 통화정책을 돌아보며 “물가를 안정시키는 과정은 한 사이클이 끝났다고 생각한다”면서 “어느 나라보다 빨리 물가 상승률 2% 목표를 달성했고, PF 부실이나 외환시장도 큰 문제 없이 관리했다”고 평가했다. 실기론에 대해서는 “1년 정도 지나 경기 상황, 금융 안정을 보고 평가해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 수출·투자·내수 부진 ‘삼중고’… 연내 2.25%까지는 내릴 것

그러나 최근 전개되는 국내외 상황은 이창용호(號)에 더 큰 도전을 안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글로벌 관세 전쟁이 재점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고, 국내에서는 조기대선 등 정치 불안이 심화되면서 경기 하방 압력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던 수출은 올해 1월 플러스(+) 행진을 마감했으며, 기업의 설비투자도 위축되는 흐름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한은의 전망치인 1.5%는 커녕 0%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문제는 한은이 과감한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토지거래허가제 해제 및 확대 재지정 과정에 집값이 다시 오르면서 가계부채 증가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4월 셋째주(21일 기준)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8% 오르면서 12주째 상승세를 지속했다. 한은은 토허제 효과가 반영되는 3월 중순부터 5월까지 가계부채 증가세가 가팔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한강 인근에서 바라본 서초구와 강남구 일대 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환율도 여전히 부담 요인이다.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 거래일보다 16.3원 내린 1421.0원을 기록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직후인 지난달 9일(1484.10원)보다는 환율이 큰 폭 하락했지만, 1400원을 하회했던 비상계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경기 하방 압력이 더 확대되더라도 한은이 3회 이상 금리를 인하하기 쉽지 않다고 예상한다. 한은이 0.25%p씩 금리를 내린다고 할 때 기준금리가 연 2.25%(현재 연 2.75%)보다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한 한은 관계자는 “이창용 총재는 환율과 가계부채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라면서 “내수 부진은 금리 인하로 대응하더라도, 수출을 포함한 종합적인 경기부양은 추가경정예산(추경)과 같은 재정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도 “현재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에 있기는 하지만, 언제 어떤 속도로 내릴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면서 “미국의 통상정책이나 관세 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고 환율이나 가계부채 등 금융불안 문제도 불거질 수 있어 한은은 경제 지표를 지켜보면서 유연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대선 국면에서 각종 재정 확대 공약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은은 금리 인하 속도를 더 신중하게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한 시장 관계자는 “하반기에는 성장에 방점을 둬야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한은은 대선 이후 재정정책 강도를 보면서 움직일 것 같다”면서 “재정이 확대될 때는 시중에 풀리는 유동성을 통화정책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시장 관계자도 “연내 2.25%까지는 금리를 내린 이후에는 추가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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