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그곳에서] 제주 가파도, “유채꽃과 청보리 보러 떠나볼까” | 전원생활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5월호 기사입니다.
이맘때 제주 가파도에 가면 알록달록한 꽃과 푸른 청보리가 어우러진 풍경을 만난다. 한 편의 동화 같은 풍경만 보고 올 심산이었는데, 꽃처럼 명랑히 살아가는 해녀의 삶도 마주하고 돌아왔다.
5월은 봄과 여름 그 사이로, 뭐 하나 선명하지 않은 때이지만, 제주 가파도는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 봄의 끄트머리에 선 알록달록한 유채와 무꽃, 여름의 초입에 선 푸른 청보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서 정겨운 ‘가파도청보리축제’도 부록처럼 딸려 있다. 자연의 풍경을 눈에 담으려 가파도로 향한다.

항구에 나가본다. 쪽빛 바다 위로 줄지어 정박한 오징어 배들이 두둥 떠 있다. 그처럼 설레는 마음을 안고 블루레이호에 탑승한다. 선창 밖을 바라본다. 날이 맑은데도 너울이 일렁인다. 가파도(加波島). 파도가 섬을 덮었다는 의미다. 가파도 해역은 과거에 <하멜 표류기>를 쓴 ‘헨드릭 하멜’의 배가 난파한 곳으로, 예부터 거센 기류와 조류가 부딪치는 수역으로 유명하다.
가파도에서 최고 높은 지점은 고작 해발 20.5m이다. 그래서 멀리서 바라본 가파도는 납작한 모양새인데, 이와 관련해 ‘제주 할망이 발로 밟아서 그렇게 됐다’는 재밌는 전설도 전해온다. 높은 파도로부터 낮은 섬을 지켜주는 건 수중의 암초들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선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모슬포항에서 5km 거리에 있는 가파도는 편도로 10여 분이면 도착한다.
운이 좋다. 축제장에서 가파리 이장 김상준 씨를 우연히 만났다. 그가 트럭에 타라고 한다. 청보리밭이 있는 곳까지 태워다준단다. 가파도에는 크게 해안가를 두르는 해안 둘레길, 마을을 가로지르는 중앙길, 중앙길과 해안 둘레길 사이를 잇는 밭담길이 있다. 그가 운전하며 말했다.

“해안 둘레길은 바다 풍경만 있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청보리, 유채, 무꽃, 바다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길은 섬을 가로지르는 중앙길이에요. 그래서 중앙길을 먼저 걷고, 시간이 남으면 해안 둘레길을 따라 걸어 포구로 다시 돌아오세요.”
그의 말에 귀 기울이다 갑자기 마주한 청보리밭에 탄성이 나왔다. 서둘러 트럭에서 내리는데, 바람이 세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섬답다. 미처 외투를 챙기지 못해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 지나가던 주민이 말한다.
“가파도는 봄 이네 햇살이 아멩 또해도 추워(가파도는 봄 되어서 아무리 따뜻해도 추워).”
몸은 추워도 바람 덕에 바다처럼 일렁이는 청보리밭을 만난다. 휘날리며 춤을 추는 5400여 평(약 1만 7850㎡)의 푸른 청보리밭 풍경이 장관이다. 가파도에서 재배하는 청보리는 재래 품종인 ‘향맥’이다. 다른 지역 청보리보다 2배 빨리 자라고, 더 푸른 편이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초록빛 풍경에 재미를 더하는 건 꽃밭과 포구가 있는 상동마을의 알록달록한 지붕이다. 여러 가지 원색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 편의 동화 같다.
유채꽃밭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풍경인 줄 알았는데, 주민들의 노력이 깃든 결과였다. 10여 년 전만해도 가파도엔 유채꽃밭이 없었다. 여행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싶어 주민들이 여객선사의 지원을 받아 꽃밭을 만들었다.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따라 가만가만 걷는다. 중앙길은 걸어서 40분이면 모두 둘러본다. 꽃밭 사이사이, 이름 모를 누군가의 무덤이 보인다. 화려한 꽃에 집중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다. 이생진 시인은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고 했다. 아름다운 것을 실컷 보길 바라는 누군가의 마음이 깃든 것일까. 죽음도 낭만처럼 다가오는 곳이다. 중앙길에서 해안 둘레 길로 난 밭담길에서도 꽃과 청보리를 볼 수 있다.
오후 다섯 시가 지난다. 여행객들이 모슬포항으로 가는 마지막 배를 타고 빠져나간다. 섬엔 적막감이 감돌고, 대부분이 관광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의 일상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주민들은 전동카트를 타고 길을 오가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내일 나 좀 대신 가게 봐주멍게 허여?(내일 나 대신 가게를 봐주면 안 돼?)”하는 게, 가족처럼 정답게 사는 마을 같다. 가파도는 하루 묵어가는 이들에게 정겨운 풍경을 살포시 보여준다.

오늘은 물때가 좋은 날이다. 10분 거리에 있는 바다에 나가 소라를 채취할 예정이라 한다. 배가 출발한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자에게 해맑게 손을 흔들며 웃어준다. 출근길이 이토록 즐거울 수 있다니,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만의 명랑함이 느껴진다. 어촌계장 유용예 씨(46)는 축제 준비로 나가지 않았다. 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제주도엔 올해 기준으로 104개의 어촌계가 있고 2600여 명의 해녀가 있어요. 그중 가파도는 고유한 해녀 문화가 잘 보존된 곳이에요. 고무 옷을 입으면 부력이 생기는데, 물에 가라앉기 위해 연철(납) 벨트를 허리에 차요. 가파도 해녀들은 벨트 대신에 연철 조끼를 입어요. 유속이 빠른 가파도 수역에서 납 벨트를 하면 몸에 무리가 많이 가거든요. 현실적인 이유로 현대화된 장비를 도입한 곳도 여럿 생겼지만, 가파도 해녀들은 옛 방식 그대로 물질을 하고 있어요.”

서울말을 쓰는 그는 10여 년 전, 해녀가 되려고 가파도에 정착했다. 그는 가파도에서 ‘가파도 사진관&스토리지’도운영한다. 마을에서 유일한 사진관에서 주민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스토리지에선 가파도 해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기록해온 기록물(사진, 도구 등)을 전시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출항 시간이 됐다. 그가 항구까지 차로 데려다준다.
“육지에 밭이 있듯, 바다 아래에도 밭이 있는 걸 아세요? 가파도 바다 아래에는 고유의 이름이 있는 60여 개의 바다 밭이 있어요. 이 밭들의 특징과 잘 잡히는 해산물 등을 그림과 사진으로 매일 기록 중이에요. 언젠가 바다 밭 지도를 꼭 완성하고 싶어요.”
바다를 보며 말하는 그의 눈이 반짝인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 옆에선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다. 가파도는 그런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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