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행복합니다”…희망을 노래하는 스승
시력 잃고 교단 떠난 아내에게
희망 주기 위해 박물관 문열어
평생 모은 자료 7000여점 전시
세대 잇는 교실로 웃음꽃 활짝
풍금소리·학창시절 추억 만끽


교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온 노부부가 있다. 이들은 평생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났으나 교육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박물관을 만들고 3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다. 스승의 날(15일)을 앞두고 경기 김포에 있는 ‘덕포진 교육 박물관’을 찾았다.
붉은 벽돌로 지은 3층짜리 건물. 입구엔 옛 학교 앞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학교 종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창문 틈 사이로는 ‘학교 종이 땡땡땡’ ‘봄나들이’ ‘산토끼’ 같은 정겨운 동요 소리가 들렸다. 4월 하순 주말에 찾은 덕포진 교육 박물관에선 음악 수업이 한창이었다.
“앞이 안 보이는 나도 이렇게 힘이 넘치는데, 왜 이렇게 다들 힘이 없어?”
수업이 펼쳐진 곳은 1950∼1960년대 옛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3학년 2반’ 교실. 교단에 서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학생들을 혼내는 이는 이인숙 관장(78)이다. 이 관장은 1992년 교직에서 물러난 전직 초등학교 교사다. 교직 생활 22년 만에 학교를 떠난 것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시력을 잃게 되면서다. 당시엔 사랑하는 아이들과 이별하고 다시는 교단에 설 수 없다는 생각에, 집 안에만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절망에 빠진 아내를 일으킨 것은 남편 김동선 관장(84)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김 관장은 “내가 학생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겠다”고 아내를 달랬다. 김 관장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서울 아파트를 팔고, 퇴직금까지 털어 1996년 박물관을 세웠다.
김 관장이 박물관에서 가장 신경 써서 마련한 곳은 바로 1층의 3학년 2반 교실이다. 옛 교실을 재현하고자 폐교에 가서 책걸상과 난로, 조개탄 등을 구해다 놓고, 노래와 시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풍금을 들여놓았다. 이 관장은 사고를 당했을 당시 맡았던 3학년 2반 교실에서 관람객을 학생으로 앉혀놓고 풍금을 치고 노래를 부른다.

김 관장은 “몽당연필조차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교직 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물건들을 수집해왔다”면서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 손때와 정이 흠뻑 묻은 물건을 비롯해 7000여점의 교육 자료를 만나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교육 사료관’ ‘기획 전시관’ ‘농경문화·전통문화 전시관’ 등으로 구성됐다. 놀이문화를 주제로 꾸려진 기획 전시관에선 유독 관람객의 대화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딱지 치기, 지우개 따먹기, 종이인형 옷 입히기 같은 옛 추억의 놀이를 설명하느라 어른들의 얼굴이 아이처럼 해맑다.
교육 사료관에는 일제 해방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교과서, 등사기로 찍어낸 갱지 시험지, ‘불조심’ ‘쥐를 잡자’ 같은 문구가 새겨진 리본 등 당대의 자료가 가득하다. 농경문화·전통문화 전시관에는 이제는 흔히 볼 수 없는 가래·풀무·다듬잇돌 등 갖가지 유물을 볼 수 있다.

전시도 그렇지만 이들 부부의 삶에서 감동을 받는다는 관람객도 많다. 이 관장은 교단에 서기 위해 수십곡의 노래, 100여개의 시를 외운다. 지금도 남을 가르치려면 내가 많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스승 삼아 좋은 얘기가 나오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한 뒤 반복해 듣는다. 이 관장 말마따나 명랑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웃음은 그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는 방법이다. 이 관장은 “만나는 분들에게 희망을 드리고 싶어 더 많이 웃고 명랑하게 살고 있다”면서 “어둠 속에 있는 나도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세상이 다 보이는 사람들은 웃으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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