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기후시대] “이제 하늘만 보고 농사 못 짓는데”…대응책마저 ‘한계’

이시내 기자 2025. 5.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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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기후시대] 1부 기후전쟁, 요동치는 산지 (2) 광합성이 안돼요…일조량 부족
성주 일조시간 평년대비 극감
잦은 비에 뿌리 약화…물참외로
30년 베테랑 멜론농가도 타격
특등급 출현비율·정산액 줄어
딸기·수박 비롯 시설원예작물서
낙과·기형과 등 동시다발 피해

“그런 해는 수십년 농사지으면서도 처음 봤지요. 근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에요. 계속 이라면 우예야 하는지….”

경북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에서 1만1240㎡(3400평) 규모로 참외를 재배하는 이대진씨(60)는 지난해 2월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2023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경북 성주의 일조시간은 평년 대비 105시간 감소한 515시간에 불과했다. 잦은 비와 흐린 날이 계속되면서 과습 상황에 놓인 참외는 뿌리가 약해졌을 뿐만 아니라 ‘물참외’가 됐다. 성주군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참외 출하량은 평년 대비 40% 감소했다.

이씨는 “참외 가격이 가장 좋을 때였는데, 증산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물량이 충분히 안 나왔다”며 “농사는 하늘 보고 짓는 건데 해가 안 나니 손을 쓸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남 나주시 세지면 멜론농가에게도 지난해 봄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60여농가가 300여동의 시설하우스에서 멜론을 재배하는데, 일조량 부족으로 피해를 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2023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지속되면서 일조량이 평년의 70% 수준에 머물렀다. 30년 가까이 멜론농사를 지어온 베테랑 농민조차 이런 피해는 처음이었다.

시설하우스 5동에서 멜론을 재배하는 이철문 세지멜론연합회 총무는 지난해를 회상하며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난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시설하우스 습도가 높아져 줄기시듦병 등 병해충이 기승을 부렸고, 수정 불량에 따른 기형과 발생도 빈번했다.

이 총무는 “멜론 생장에서 중요한 네트(그물무늬) 형성기에 일조량이 부족해 농사가 엉망이 됐다”며 “특등급 멜론 출현 비율이 전년 대비 70%나 감소했고, 정산금액도 그만큼 줄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뿐만 아니다. 충북의 방울토마토, 충남과 전남의 딸기, 경남의 수박 등 전국 대부분 지역의 시설원예작물이 일조량 부족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병해충은 물론 착과 불량, 낙과, 기형과 등 여러 유형의 피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제주의 감귤 등 과수와 양파·마늘 등 밭작물, 보리·밀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마늘은 2차 생장 현상인 벌마늘 피해가 속출했다.

다행히 일조량 부족이 ‘재해’로 인정되면서 농가들이 피해를 일부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각 지방자치단체와 농협에서도 영양제 등을 지원하며 농가를 도왔지만 피해 전체를 보상하지는 못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3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일조량 부족에 따른 피해규모는 전국 12개 시도 2만22농가, 9606㏊에 달하며 재해복구비 등 총 2261억원이 지원됐다. 재해 인정 품목수도 23개에 달했다.

농가의 더 큰 걱정은 이같은 극한기후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당장 올 초에도 성주지역에서는 정식이 늦어진 참외농가를 중심으로 물참외 비율이 크게 늘었다. 이씨는 “예전에는 하루이틀 날씨가 흐리다가도 해가 나곤 해 과습까지 되진 않았는데, 최근엔 며칠씩 계속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계속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가루이 같은 병해충도 이상기후로 예전과 발생 양상이나 시기가 달라 방제에 더 애를 먹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농협과 농가들은 병해충에 강한 품종의 시험 재배와 일조량 부족에 대비한 보광등사업 구상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재해를 예방하기에 역부족인 실정이다.

이 총무는 “병해충에 강한 멜론 품종을 발굴해 시범 재배하고 있지만, 품종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라며 “기후변화는 농가들이 체감하는 현실이 됐지만, 품종 개발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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