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공교육 불신 부르는 한글 교육
‘매일 준비물-물통, 필통, 읽을 책.’

교육부는 ‘한글책임교육’을 내걸고 초1은 ‘연필 잡는 것부터’ 가르치고 있다. 입학 전 유치원·어린이집의 한글 직접 교육은 금지된다. 5∼7세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은 “글자 모양 따라 쓰기, 자·모음 외우고 반복해 쓰기 등 글자수업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한다.
문제는 1학년 교실에서 한글만 배우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아이의 수학 교과서 1단원을 펼치니 숫자 1을 ‘하나’와 연결하라거나 4는 5보다 ‘큽니다’, ‘작습니다’ 중 맞는 말에 동그라미를 치라는 문제가 보였다. 왼쪽부터 책 제목을 말해보라는 문제도 있었다. 국어 교과서는 ‘ㅏ’를 알려줄 때 풀어야 하는 문제들이다. 한글을 모른 채 입학한 아이는 막막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 사이에선 ‘입학 전 한글은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불문율처럼 퍼져 있다. 온라인엔 교육부 말만 듣고 갔다간 아이가 고생한다며 사교육을 권하는 ‘선배 학부모’ 증언이 줄을 잇고, 이런 분위기를 아는 학교는 아이들이 한글을 떼고 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한 학부모는 “‘아이가 한글을 잘 모르니 집에서 공부시켜 보내라’는 학교 전화를 받고 학습지 신청을 했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인의 아이 반에선 한글을 못 뗀 아이 2∼3명이 자유놀이 시간에 선생님과 따로 앉아 보충수업을 한다고 한다. 한글책임교육을 말하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상황들이다.
학부모 사이에선 입학 후 한글 교육부터 집중적으로 해 글을 어느 정도 읽을 때 수학 등 다른 교과를 시작하거나, 입학 직전 몇달 만이라도 유치원·어린이집에서 한글을 알려 달라는 요구가 높다. 교육부를 출입하며 이런 의견을 몇 차례 전달했으나 대부분 ‘학부모의 과도한 걱정’, ‘유난’으로 치부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아이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고 발달단계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가 간다. 다만 그 취지가 현장에서 효과를 발휘하려면, 글을 몰라도 학교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교육과정을 바꾸든가, 입학 전 준비 기간을 줘야 하지 않을까.
현재 교육부는 유보통합을 계기로 누리과정 개정도 논의 중이다. 새 기관에 적용될 누리과정은 좀 더 현실적인 안이 나오길 바란다. 지금은 유치원과 학교만 믿고 있어선 뒤처진다는 불안이 파다하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이런 틈에서 자란다.
김유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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