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평화 위해 ‘매향리 미군 사격장 폐쇄 투쟁’ 책 썼죠”

지난 3월6일, 경기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민가에 포탄이 떨어졌다.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 공군 전투기 케이에프(KF)-16 2대가 좌표입력 오류로 폭탄 8발을 표적에서 8㎞ 떨어진 민가에 잘못 투하한 사고였다. 1951년부터 2005년까지 54년 동안 전투기 오폭의 불안에 떨어야 했던 마을에서 태어나 끝내 사격장 폐쇄를 끌어냈던 전만규(70) 전 매향리주민대책위원장은 이번 오폭을 두고 “어쩌면 필연적인 사고”라며 “매향리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했다. 매향리와 사격장 폐쇄 투쟁, 그리고 자신의 역사를 담은 회고록을 낸 전씨를 지난달 22일 매향리에서 만났다.
경기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는 매화 향기가 넘치는 마을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50년 넘게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동네였다. 1951년부터 미군 공군 전투기 폭격 훈련장이 들어서면서 쉴 새 없이 폭탄이 터졌기 때문이다. 대대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 집안에서 태어난 전씨는 어부가 되는 숙명을 벗어나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사격장 폐쇄 투쟁에 뛰어들었다. 민주화 이후라지만 여전히 반공주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그는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을 상대로 한 투쟁에서 끝내 승리했고 2005년 사격장은 완전히 폐쇄됐다.
아름다운 결말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은 고단했다. 평범한 시골 청년이었던 그는 투사가 됐고 그 과정에서 각종 시련을 겪었다. 전씨는 “처음부터 ‘무모한 싸움’이라는 말을 들었고 실제로 제 인생을 걸어야 했다”며 “내 가족의 고통과 피해를 내 대에서는 끊어야겠다고 시작했던 투쟁인데 싸움이 길어지면서 나와 가족 모두에게 끔찍한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그가 책 제목을 ‘헛똑똑이 투사와 투쟁, 그리고 악마와 오욕’이라고 지은 이유다.
그는 부록을 포함해 총 3권으로 낸 회고록에 매향리의 모든 것을 담고자 했다. 어린 시절 어른들께 들었던 이야기를 비롯한 마을 역사를 포함해 어부였던 자신이 어떻게 투쟁에 뛰어들었는지와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주로 1권에 담았다. 2권에는 사격장 폐쇄 결정이 난 과정과 이후 포탄과 불발탄 등으로 오염된 매향리를 어떻게 평화의 마을로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는지 등을 주로 담았다. 부록에는 매향리와 관련한 각종 에피소드 등을 엮어냈다. 비매품으로 냈지만 앞으로 많은 이들이 책을 읽게 된다면 정식 출판도 할 계획이다.
전씨는 회고록을 낸 이유를 두고 “진정한 평화를 위한 기록을 남기려 썼다”고 했다. 그는 “남북 극단주의자들이나 가자지구 상황 등을 볼 때 이렇게 군사적 훈련에 힘을 쓰기보다는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위정자들이 노력하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며 “매향리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고 다음 세대가 평화를 안착시키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총 3권 회고록 ‘헛똑똑이…’ 출간
투쟁 뛰어들어 시련 겪은 사연과
매향리 평화마을 변신 과정 등 담아
“4월 개관 매향리 평화기념관에
미군이 남긴 포탄도 전시했으면
투쟁 과정에 ‘한겨레’ 큰 기여”
삶의 터전인 매향리의 아픔과 변화를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도 컸다. 매향리는 사격장 폐쇄 뒤 각종 환경정화 과정을 거쳐 지난달 21일 매향리 평화기념관이 정식 개관하는 등 평화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전씨는 “투쟁으로 폭격장을 폐쇄하고 미군이 남긴 무지막지한 중금속 오염을 정화했다”며 “이제 화약 연기 대신 매화 향기가 날리는 그런 마을이 되어가는 우리 매향리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책에는 한겨레와 전씨의 인연도 담겼다. 매향리 사격장 폐쇄 투쟁은 1988년 7월28일 당시 한겨레신문 사회면 머리기사에 실리며 처음으로 전국적인 의제로 떠올랐다. 책에는 한겨레 보도가 나간 뒤 곧장 육군 소령과 대위 등이 전씨를 찾아오고 11월 안기부 실장까지 방문해 “외부 불순세력과 손을 잡고 불법적인 행동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압박한 일화 등이 담겼다. 전씨는 “한겨레를 빼고는 매향리 투쟁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회고록을 펴냈지만, 전씨에게 매향리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매향리 평화기념관이 개관했지만, 미군이 실제로 남긴 포탄 등은 대부분 전시되지 않아 포탄으로 만든 각종 작품은 마을 주민이 만든 평화역사관에 따로 전시돼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지금의 평화기념관은 매향리 투쟁의 알맹이가 빠진 반쪽짜리”라며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자료들인 만큼 기념관에서 직접 나서서 보존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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