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대 할머니가 ‘밥 당번’…농촌 ‘먹거리 돌봄’ 개선 시급

장재혁 기자 2025. 5. 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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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군 경로당 가보니
쌀 지원 받아도 밥할 사람 없어
남성의 경우 외부에서 따로 해결
홀몸어르신 혼밥·결식 일상화
노인 영양불균형 갈수록 심화
인구 감소로 텅빈 마을회관도
초고령화 맞는 복지정책 필요
전남 고흥 과역면 내로마을의 한 빈집에 할머니들이 모여 있다. 대부분 80·90대인 할머니들은 이곳에서 별다른 지원 없이 직접 끼니를 해결한다.

전남 고흥군 과역면 내로마을 마을회관 여성 경로당에서는 매일 점심이면 밥상이 차려진다.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지원해준 쌀과 부식비 등으로 밥상이 차려지는데, 회관을 이용하는 할머니들 중 막내 격인 60∼70대 할머니 한두명이 밥 당번을 한다. 그나마 이곳에는 ‘젊은’ 막내가 있어 밥상 차리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내로마을 윗동네 할머니 10여명은 오전 9∼10시가 되면 언덕 위 한 빈집에 모인다. 발을 뻗기도 버거워보이는 작은 단칸방이지만 할머니들은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매일 함께 점심을 차려 먹는다. 밥 당번은 78세 선납심 할머니다. 다른 할머니들도 밥상 차리기에 손을 보태지만 모두 80·90대여서 막내인 선 할머니가 주로 밥 당번을 한다.

선 할머니는 “할머니들이 각자 챙겨온 밑반찬 몇개를 놓고 밥은 여기서 해서 함께 먹는다”고 말했다.

그나마 할머니들이 있는 곳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할아버지들만 모이는 남성 경로당은 아예 공동급식 자체를 하지 못한다. 밥을 차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정정원 내로마을 이장(75)은 “남성·여성 경로당을 분리해 생활하는데 남성 경로당엔 밥을 할 사람이 없어 차를 타고 면사무소 인근 경로당까지 가서 식사를 하고 오는 분들도 있다”며 “쌀 등을 지원받지만 밥할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경로당을 대상으로 양곡비·냉난방비 등이 지원되고 있지만 노년층이 많은 농촌지역에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령화로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먹거리 돌봄’ 체계의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등을 통한 고령층 먹거리 돌봄이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 이유나 건강 상의 문제 등으로 제대로 식사를 챙겨 먹지 못해 영양불균형 상태에 놓이는 노인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 질병관리청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영양섭취부족자 비율은 21.5%에 달한다.

실제로 마을회관에서 공동급식을 하는 노인들은 “마을회관이라도 있으니 같이 모여서 밥을 챙겨 먹지 혼자 있으면 입맛도 없고 밥하기도 귀찮아서 잘 안 먹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70·80대 어르신이 공동체 밥 당번을 하거나 이마저도 없으면 홀로 집에서 하루를 보내며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특히 홀몸 어르신들의 경우가 문제다.

내로마을의 할머니들은 “혼자 집에 있으면 김치 한두개에 밥을 먹는데 이마저도 맛이 없어 물에 말아 먹거나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며 “점심 때 모여 먹을 때가 입맛이 좋아 하루 가운데 가장 많이 먹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노인들의 영양불균형 문제가 갈수록 심화돼 급식 도우미 지원 확대 같은 초고령화 시대에 맞는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촌지역은 현장 조건을 고려한 맞춤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내로마을 윗동네 사례처럼 고령자가 많아 마을회관을 이용하지 못해 미등록 시설을 이용하는 경우 지자체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신 할머니는 “미등록 시설이라 지자체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해 부식비·전기세 등 비용은 조금씩 걷어서 쓴다”고 말했다.

반대로 인구 감소로 마을회관을 이용할 노인이 없어 마을회관이 텅 빈 경우도 있다.

두원면 예동마을회관이 그 예다. 이곳은 평소에도 텅 빈 채 불이 꺼져 있다. 10년 전까지도 10여명이 북적거리던 공간이었지만 이젠 농한기에 한두명 찾을까 말까 할 정도라 밥상이 차려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김태길 예동마을 이장(75)은 “최근 귀농인들이 유입되긴 했지만 오래 마을을 지키던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10명도 안 남아 마을회관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이용자가 별로 없다보니 지원받은 쌀이 남아 명절에 떡을 해서 나눠드리곤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혼자 사는 80대 이상 어르신들이 몇분 계신데 평소 식사를 챙기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김성임 고흥 팔영농협 여성복지계 팀장은 “마을별로 쌀과 냉난방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모든 어르신들이 이용하기엔 시설과 비용 면에서 부족하다”며 “특히 공동 식사지원을 포함한 돌봄 인력 등 초고령화 시대에 걸맞는 인력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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