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비싼데 반찬 푸짐한 한 끼”... ‘0원의 절밥’에 몰리는 대학생들

김병권 기자 2025. 5. 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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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오전 11시 40분쯤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 공양간에서 연화사 주지 묘장 스님(왼쪽에서 두 번째)과 신도들이 '청년밥심' 프로그램에 참여한 대학생들에게 사찰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고운호 기자

지난달 22일 오후 12시 20분쯤 찾은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 공양간. 인근 경희대, 한국외국어대 과잠(학과생들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잠바)을 입고 이곳을 찾아 식사하려는 대학생 10여 명의 줄이 공양간 입구까지 이어졌다. 연화사 주지이자 재단 대표이사인 묘장 스님과 신도들은 연신 이들에게 “맛있게 먹고 부족하면 또 와요” “겉절이는 얼마나 줄까?”라며 친근하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음식을 받은 학생들은 자리에 앉아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를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날의 메뉴는 밥, 김치 콩나물국, 비건 완자, 기름떡볶이, 참나물 무침, 수박 등 총 18개. 학생들은 “반찬이 엄청 많다” “수박도 있어”라며 감탄했다. 신도들은 배식 이후엔 자리를 돌며 “저번에도 오지 않았었느냐?” “오늘 야채튀김 맛있었냐?”며 끝까지 학생들을 알뜰하게 챙겼다.

이날 총 44명의 대학생이 참가한 이 프로그램은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대학교 인근 사찰과 연계해 작년 6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청년밥심’이다. 구글폼으로 신청한 학생들에게 매주 혹은 격주로 무료 점심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지난해 6월 연화사에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인기가 많아지자 작년 10월에는 홍익대 인근 홍대선원과 숭실대 근처 상도선원, 지난달에는 고려대 옆 개운사로 확대됐다. 가장 먼저 프로그램을 시작한 연화사는 학기 중 매주 화요일 점심에 평균 60명 내외의 학생이 참가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모든 사찰에서 이뤄진 청년밥심 프로그램 참가자 수는 1000명이 넘는다.

지난달 22일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 '청년밥심' 행사에서 대학생들에게 제공된 사찰 음식. 이날 준비된 메뉴는 밥과 국, 비건완자, 야채튀김, 수박 등 무려 18개에 달했다./ 고운호 기자

이날 학생들은 “대학가 점심 물가가 너무 비싼데 무료로 푸짐한 한 끼를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자취생이라 비싼 채소, 과일을 잘 못 먹는데 채식 위주 집밥으로 준비해줘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구와 2명과 함께 10번 넘게 연화사에 왔다는 경희대 한의학과 본과 2학년 김희수(22)씨는 “밖에선 백반도 1만원이 넘고, 자취생이라 평소에 채소나 과일을 먹기 힘든데 절에서는 채식 위주 식단을 해주고 무료이기까지 하니 너무 좋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의 점심 식사 평균 가격은 1만원 이상으로 올랐다. 푸드테크기업 식신에 따르면, 지난 2022년 3분기부터 서울 직장인들의 점심 식사비는 1만원을 꾸준히 상회하고 있다. 최근 기후변화로 채소, 과일 등 신선식품의 가격이 오른 것도 청년밥심에 학생들이 몰리는 요인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신선채소와 신선과일은 지난 2020년에 비해 각각 25.06%, 52.38% 올랐다. 이는 소비자물가지수가 같은 기간 14.18% 늘어난 것에 비해 최대 4배 가까이 더 증가한 것이다.

절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청년밥심에 참여한다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연화사와 개운사를 모두 합쳐 5번 정도 청년밥심에 왔다는 고려대 자유전공학부 1학년 배근우(19)씨는 “절에 가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마음이 편해져서 자주 오게 된다”며 “사찰 음식은 외부 음식과 달리 속이 편하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친구 전서영(24)씨와 함께 온 경희대 무역학과 4학년 김해랑(24)씨도 “절 분위기 자체가 차분해서 좋은데, 거기에 스님과 신도 분들이 매번 환대해주셔서 기분도 좋다”고 했다.

청년밥심은 묘장 스님이 지난해 평소 알고 지내던 경희대 교수로부터 “주변에 바쁘고 시간이 없어 식사를 대충 때우는 학생이 많다”는 말을 듣고 생각해낸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올해는 한화시스템이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고, 재단은 앞으로 참여 사찰과 인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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