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 우려 커지는데… ‘해외 자본 사모펀드’ 규제 제자리
21대 국회 임기 종료 따라 폐기
작년말 외국인범위 확대 등 재조정
입법예고 앞두고 해당내용 또 배제
오는 12일 산업기술보호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 예고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인 가운데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의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 국가전략산업 기업들에 대한 인수합병(M&A) 규제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이 지배하는 국내 사모펀드를 통한 인수합병 등으로 인한 기술 유출 우려가 확산되면서 이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는 관련 내용이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달 2일 산업기술보호법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내놓은 것에 관련해 '사실상 외국인의 지배를 받는 국내 사모펀드' 등 국내 법인을 비롯해 외국인들이 설립한 단체 등은 여전히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00% 해외자본이거나 100% 특정 외국인의 자금에 의해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더라도, 이른바 무늬만 국내법인을 통한다면 아무런 제약없이 대한민국의 중요기술 기업들을 인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경영권 분쟁이 대표적이다. 고려아연의 경우 정부로부터 전구체 원천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인정받았지만, 정부는 해외 자금이 9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진 MBK에 대한 '외국인 투자 범위' 여부는 들여다 볼 명분이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초 산업통상자원부에 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국가첨단전략산업법·산업기술보호법령상 외국인 투자로 봐야 하는지 묻는 질의했지만, 당시 산업부는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창양 전 산업부 장관은 2022년 제40회 산업기술보호위원회 모두발언에서 "외국인이 지배하는 국내 사모펀드를 통한 인수 합병과 같이 우리 현행법에서 다루기 곤란한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법률 개정 의지를 표명했다.
이후 산업부는 법률 개정에 착수해 2023년 5월 열린 제43회 산업기술보호위원회에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의 내용을 첫 공개했다. 당시 산업부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외국인 범위 확대'의 구체적 방안으로 '국내 소재 외국계 사모펀드에 의한 국가핵심기술 보유기업 인수합병 심사 신설' 조항을 개정안에 포함했다.
하지만 4개월 뒤 국무회의에서는 기존 공개안보다 크게 후퇴한 내용의 정부 입법안이 의결됐다. 당초 산업부가 규제하려 했던 대상은 '검은 머리 외국인', 즉 '사실상 외국인 지배를 받는 국내 사모펀드'였지만 해당 규제를 담은 조항은 제외됐다, 대신 이중국적자를 외국인의 범위에 추가하는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산업부는 작년말 제58회 산업기술보호위원회에서 또 다시 '검은 머리 외국인' 규제 방안을 내세우며 외국인의 범위·지배권 취득 기준에 대해 "실질적 지배권 행사 여부와 타법 사례 등을 고려해 조정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업기술보호법 시행령 입법 예고안에 외국인 범위 확대와 관련한 조항은 또 다시 배제됐다.
작년 12월에는 정부가 '제5차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보호에 관한 종합 계획'을 발표하고, 외국인 인수·합병의 사각지대로 여겨지던 '외국인 지배 국내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강화를 추진했지만, 3개월 뒤 발표된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에는 외국인 지배 국내 사모펀드를 비롯해 핵심 내용들이 모두 빠지면서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도 우회적인 기술 유출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의 경우 연방규정집(CFR)과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에서 무늬만 자국법인이거나 외국인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는 법인과 단체 등 모든 형태의 인수합병을 점검하고 체크해 볼 수 있도록 돼 있다. CFR에서 외국인을 정의한 조항 800.224에 따르면 '외국인에 의해 통제되거나 통제될 수 있는 모든 단체'는 외국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지난 3월 성명을 내고 "사모펀드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범 정부차원에서 사모펀드의 무차별 기업 인수의 폐해를 막기 위한 규제에 나서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사모펀드들이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비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행 법령 수준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치열해지고 있는 기술경쟁 속에서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는 기술 유출을 막는 데는 일부 역부족"이라며 "무차별적인 해외자본, 특히 중국 등의 국가핵심기술 보유기업 인수와 기술유출 가능성을 낮추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장우진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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