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가 “뽀뽀해달라” “남자 만나야지”…일터에서 고통 받는 여성들

김효실 기자 2025. 5. 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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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직장 관계자 61.8%로 가장 많아
게티이미지뱅크
#1. “한 달에 한 번은 만나자.” 직장 상사가 자꾸 근무시간을 벗어난 때에 만나자고 요구한다. 나는 승진이 잘 안 되는 상황인데, 이 상사가 개인평가를 맡고 있기에 문제를 제기하기가 조심스럽다. 회의실로 따로 불러 “왜 약속 안 잡느냐”며 만남을 강요하고,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면 급하지 않은 일로 닦달하며 업무적으로 괴롭힌다.

#2. 부서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나를 달래준다는 명분으로 껴안았다. 다행히 다른 직원이 보게 돼 다른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뒤 상사가 밤에 전화를 해서 “뽀뽀해달라” 등의 말을 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회식 때 있었던 일도 수치심이 들었다. 사내 신고를 했는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지 의문이다. 감정통제가 되지 않고 불안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노동절(5월1일)을 맞아 공개한 여성 노동자들의 상담 사례 일부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지난해 1~12월 진행한 ‘평등의전화’ 여성 상담 사례 1732건을 분석해보니, 직장 내 성희롱이 25.3%(438건)으로, 임금체불 등 ‘근로조건’(712건, 41.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을 ‘사업주·상급자·노동자가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다른 노동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로조건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현실에선 ‘개인 간 문제’로 여겨져 여성들이 일터를 떠나는 등 또 다른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상담을 요청한 여성들은 인사권(재계약·업무 배정 등)을 가진 이들의 요구에 쉽게 저항하거나 거절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있고, (가해자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 소문을 유포하거나 업무상 불이익을 주는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졌다”며 “단순한 비매너를 넘어서는 권력관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한 현행 법상 모든 직장에서 연 1회 이상 전 직원 대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해야 하는데,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상담을 요청한 233명 가운데 85명(36.5%)은 직장에서 이런 예방교육이 실시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주로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지난 18년 동안 중소 사업장에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를 무료로 파견해주던 사업을 폐지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일부 중소 사업장 사업주들이 평등의전화 쪽에 성희롱 예방교육을 요청하며 무료 강사 지원이 가능한지 문의했을 때, 정부 지원이 사라져 강사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하면 ‘알겠습니다’라고만 답한 뒤 교육을 의뢰하지 않았다”며 “정부는 무료 강사 파견 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했다.

여성의 일, 여성의 일터를 망가뜨리는 폭력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을 넘어서 ‘일’과 여성폭력 긴밀한 관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노동절을 맞아 ‘일과 연관된 여성폭력 상담 사례 보고서’를 지난달 30일 발간했다.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폭력 피해가 있는 초기상담 867건을 분석한 결과 일과 연관된 피해 사례가 170건(19.6%)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성폭력(59.4%), 스토킹(27.1%), 가정폭력(15.3%), 데이트폭력(12.9%)순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를 보면 직장 관계자가 61.8%로 가장 많았고, 전 배우자·연인·데이트 상대(20.5%), 친족(7.6%), 지인(3.6%) 순이었다. 보고서는 “일과 연관된 여성폭력 피해는 주로 피해자의 정보를 잘 알고 있거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상담 사례를 보면,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일터를 직접 찾아가거나 일터에 연락하는 방식으로 피해자가 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피해자 남편인 한 가해자는 자영업자인 피해자가 ‘내 말을 안 듣는다’ ‘열심히 잘하는 꼴 보기 싫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의 사업장을 부수기도 했다. 연인인 가해자가 ‘사랑하는 사이에 숨기는 게 있어선 안 된다’면서 피해자의 직장 위치를 알아내고자 피해자의 출근길을 몰래 미행한 사례도 있었다.

한 성폭력 피해자는 경찰에 가해자를 신고한 뒤 경찰 진술, 법원 출석, 문서 수령 등 법적 절차에 따른 일정이 생길 때 직장에는 연차휴가를 냈다.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와 관련한 심리상담을 추가로 받고 싶지만 직장에 눈치 보여 휴가를 더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아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유급휴가 제도가 마련된 호주·필리핀·뉴질랜드·캐나다 등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해외에서는 일과 여성폭력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 및 지원 체계, 가해자 제재 조치를 마련하는 추세”고 짚었다.

또한 한국여성의전화는 “일터는 여성폭력이 실제로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여성폭력을 겪고 있는 피해자에게는 가해자로부터 차단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자 경제적·사회적 자원을 확보하며 자립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한국에서도 일과 여성폭력을 연결해 사고하고, 여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일의 세계를 마련해나가는 움직임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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