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보다 노란 서산의 봄 소식…5월 문턱 넘으니 떠나려 하네

봄을 상징하는 꽃은 개나리와 벚꽃이다. 최근 이 자리를 탐내는 꽃이 있다. 수선화다. 한국이나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주로 서식하는 수선화는 3월께 꽃을 피우기 시작해 4월 중순에서 5월 초까지 절정을 이룬다. 개나리보다 색이 노랗고, 벚꽃보다 잎이 큰 수선화. 흰색과 주황색 수선화도 있다.
어느 날 분 바람에 벚꽃이 속절없이 떨어지면 봄이 작별 인사를 하나보다 한다. 마음 한쪽이 헛헛해진다. 다시 만날 봄인데도 ‘이별’은 쉽지 않다. 이럴 때 그 자리를 채우는 게 수선화다. 수선화는 봄의 끝자락을 마음껏 즐기라고 권한다. 이런 이유에선지, 최근 몇 년 꽃 여행지로 수선화 군락지가 크게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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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서산 유기방가옥’을 찾았다. 수선화 정원으로 이름난 곳이다. 기실 수선화가 인기라지만 국내에서 여행할 만한 군락지는 드물다. 그만큼 ‘봄꽃’ 대명사로 수선화를 꼽는 이가 적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서산 유기방가옥’이 ‘신상 여행지’ 탐험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판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정하게 지은 고택 뒷산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수선화 수천송이가 에스엔에스를 타고 ‘근사한 여행 사진 명소’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2~3년 전 얘기다. 전국 내로라하는 여행지를 선정해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한국관광공사도 전국 4대 수선화 여행지로 이곳을 꼽았다.
촘촘히 땅에 박힌 수선화를 보는 것만도 황홀한데,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꽃잎 풍경이 여간 근사한 게 아니다. 상춘객 마음은 싱숭생숭 설렌다. 여기에 고택은 화룡점정. 이 조합이 완성된 건 언제일까. 30여년 전이다.



100년도 더 된 고택은 1919년 서령(서산의 옛 이름) 유씨 집안사람이 지었다. 현재는 후손인 유기방(77)씨가 지키고 있다. 조선후기 양반집 건축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택은 대청, 안채와 행랑채, 사랑채, 뒤뜰 등으로 구성돼 있다. 토담에 쌓여있는데, 수선화 군락지 탄생의 중요한 계기가 된 게 토담이다.
본래 고택 주변은 대나무 숲이었다. ‘땅 좋고 물 좋은’ 곳이라 매년 대나무는 쑥쑥 자랐다. 그 기세가 무서울 지경에 이르자, 토담마저 무너뜨렸다. 장마철이면 관리가 더 쉽지 않은 게 토담이었다. 유기방씨는 대나무 숲을 아예 없애버리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4년 만에 뿌리까지 완전히 제거한 유씨는 수선화를 심었다. 막상 대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자,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마당 한쪽에 핀 수선화를 발견하고 대나무 대체재로 맞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여년이 흐르자 고택 뒷산과 주변은 별천지로 변했다. 3만3057㎡(약 1만평) 대지에 핀 수선화가 장관을 이뤘다.


사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입장료 사연’이 있다. 입장료를 받기 시작한 때는 2012년. 풍광이 바뀌니 찾아오는 이가 생겨났다. 개인 주택인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벌컥 대문을 열었다. 수선화를 허락 없이 뽑아 가는 사람도 있었다. 쓰레기는 날마다 쌓였다. 수선화 단지를 유지하는 데도 매년 비용이 들었다. 유씨는 결단을 내렸다. 화장실 등 방문객 편의시설을 짓는 동시에 입장료도 받기로 했다. 입장료는 주중 8천원, 주말 9천원이다. 서산 시민은 6천원. 여미리와 수당리 주민은 무료다. 현재는 2~3천원 할인된 금액이 입장료다. 수선화 정원이 이상기온으로 예년만 못해서란다.



고택 뒤에 있는 수선화 정원은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답다. 매년 늘어난 수선화 정원은 이제 예전에 견줘 3배 규모다. 고택을 중심으로 왼쪽은 1구역(3월 만개 지역), 오른쪽은 2구역(3월 말~4월 초 만개 지역), 뒤쪽은 3구역(4월 말 만개 지역)으로 구분돼 있다. 햇볕 양에 따른 차이라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 제일 먼저 눈에 띤 건 커다란 옛날식 그네였다. 서로의 눈빛을 맞추는 연인이 그네를 타며 사랑을 키우고 있었다. 수선화 정원에는 걷기 길이 잘 조성돼 있다. 길에 들어서자 노란 물결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낮은 등성이를 돌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마음껏 제 자랑하는 수선화가 너른 군락지를 이룬 채 여행객을 맞았다. 저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연인도, 가족도, 친구도 여기선 그저 주인공 수선화를 빛낼 조연이다.
여린 수선화를 지키기로 작정한 듯한 집채만 한 커다란 비자나무도 발견했다. 수령이 300년 된 나무다. 위용이 웅장하다. 낮게 깔린 수선화 군락지 위론 키 큰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수선화 정원에 오를수록 고개가 숙여진다. 생각에 빠져든다. 자박자박 걸을 때마다 자신의 내면에 똬리를 튼 허튼 고집을 경계하게 된다. 하늘을 메워버린 소나무, 땅을 채워버린 수선화, 그 사이를 걷는 여행자들. 이 모든 게 합쳐진 한장이 진짜 봄 풍경이다. 며칠이 지나면 후드득 여름을 재촉하는 바람에 잎이 다 떨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수선화와 함께한 기억을 남을 터. ‘내년에 다시 오자’ 결심하게 된다.
‘서산 유기방가옥’은 2005년께 충남 민속문화재 제23호 지정됐다. 다른 계절엔 코스모스, 장미, 배롱나무꽃, 샤스타데이지 등이 여행객을 맞는다. 겨울엔 눈꽃이 활짝 핀다. 이밖에 수선화 여행지로는 ‘홍성 거북이마을’ ‘거제 양지암 조각공원’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 ‘예산 추사 김정희 고택’ ‘구례 지리산치즈랜드’ 등이 있다.
박미향의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서산/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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