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이름 위에서 벌어진 전쟁 [콘텐츠의 순간들]

길었던 시간이 끝나간다.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레이블 전 대표 사이의 분쟁은 지난해 4월에 시작됐다. 올해 3월 법원이 뉴진스에 대한 어도어의 기획사 지위 보전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본안소송을 남겨두고 있다. 논점은 뉴진스와 어도어의 전속계약 효력으로 압축됐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양측의 미래는 판결에 구속된다. 그동안 무수하게 논평된 이 분쟁의 의미를 다시 물을 시간이 왔다. 곱씹어 말할 논점이 비어 있다면, 뉴진스와 하이브 소속 아이돌, 그리고 그들의 팬덤이 이 전쟁에 어떻게 동원되었느냐다. 케이팝 산업의 오랜 딜레마인 아이돌의 주체성과 새로운 양상으로 이어지는 주제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뉴진스와 어도어의 전속계약 분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시작은 민희진 전 대표와 하이브의 경영권 분쟁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이브가 연 이사회를 통해 민희진 전 대표가 해임되자 뉴진스라는 IP의 소유권을 두고 또 다른 전장이 펼쳐진 상황이다. ‘민희진 전 대표가 없는 어도어는 인정할 수 없다’는 뉴진스 멤버들의 의사가 작용했지만, 그들의 판단은 민희진 전 대표의 거취에 종속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케이팝의 일반적 명제가 역설적으로 실현된 사례다. 모두가 아이돌은 객체가 아닌 주체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뉴진스 그리고 아일릿과 르세라핌은 분쟁의 주체가 아닌데도 주체로 규정되었다. 이렇게 된 방아쇠는 민희진 전 대표가 지난해 4월 신드롬을 일으킨 기자회견에서 그들을 호명한 사건이다. 그는 전래동화 ‘콩쥐 팥쥐’ 속으로 세 그룹을 불러들였다. 뉴진스는 민희진의 슬하에 있는 피해자이며 다른 두 그룹은 방시혁과 하이브가 뉴진스에 가한 핍박의 수혜를 누리는 ‘공범’으로 간주됐다. 군중은 논란의 복잡성을 직관적으로 소비하길 원한다. 갈등을 나타내는 ‘얼굴’이 필요하다. 세 그룹은 주체로 전치되어 애증의 표적이 되었다.
뉴진스는 민희진 전 대표가 해임된 이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분쟁의 주역을 이어받으며 최전선에 섰다. 민희진 전 대표는 뉴진스 멤버들과의 혈연 같은 유대를 강조하며 자신을 그들과 떼어놓을 수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반면 하이브는 뉴진스란 그룹이 회사의 지원으로 탄생한 자산이며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고 막아선다. 이때 뉴진스 멤버들은 ‘그들이 누구의 것인지’를 둘러싼 상징적 공방의 장에 소환된다.
멤버들이 직접 밝히는 입장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핵심은 그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인격화된 분쟁의 쟁점으로 배치되었다는 사실이다. 주체는 행위의 자유와 그에 대응하는 만큼의 책임을 지닌다. 뉴진스의 자결권은 제약돼 있었다.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었던 하이브와 민희진 전 대표의 갈등까지 걸머지게 됐다. 아이돌이 주체로 떨쳐 일어난 장면이라고만 의미 부여할 수 없는 이유다.
눈물 흘리는 하니, 악플 읽는 원희
나아가서, 아이돌은 민희진과 하이브 각각의 진영을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다. 이해관계에 명분을 부여하고, ‘우리 편’을 결집하며, ‘상대편’의 화살이 날아오는 곳에서 나부끼는 깃발이다. 그 과정에서 주체의 전치가 일어남과 동시에, 그들이 분쟁의 희생양으로 입은 상처가 전시되며 수행됐다. 뉴진스가 방시혁 의장에게 무시당하고 하이브에게 차별받았다고 하는 대우들이 열거되었다. 반대로 하이브 측은 민희진 전 대표가 아일릿과 르세라핌을 언급하며 분쟁에 끌어들인다고 거듭 비판했다. 둘 다 ‘나쁜 어른’에 의해 죄 없는 내 아이돌이 희생당한다는 프레임의 주장이다. 뉴진스 하니가 국정감사장에서 흘린 눈물에 카메라 셔터가 터져 나가고, 아일릿 원희가 악플을 읽고 슬퍼하는 영상이 온라인에서 퍼져 나갔다.
이 분쟁이 아이돌 멤버에게 안긴 상처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주목하고 싶은 건 그런 순간들이 여론에 지지를 요청하고, 무엇보다 팬덤을 동원하는 감정적 매개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감정의 도구화’라 부를 수 있는 현상이다. 뉴진스와 아일릿·르세라핌은 민희진, 방시혁과 한배를 타고 있어서 분쟁의 승패를 공유하는 입장이 돼버렸다. 아이돌 사이의 이해관계 역시 적대적 관계로 얽힌 시소게임이 됐다. 한쪽이 선역을 맡으면 다른 쪽은 악역이 된다. 너희가 패배해야 우리가 받는 고통을 멈출 수 있다.

아이돌을 향한 팬덤의 애정과 충성심은 분노와 절박함으로 뒤바뀌어 여론을 구성하는 에너지로 충전됐다. 양측의 팬덤은 이슈 파이팅이 일어나는 대형 커뮤니티에서 서로를 특정한 멸칭으로 부르며 대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뉴진스 팬덤은 ‘팀 버니즈’를 만들고 독자적으로 언론·법적 대응까지 하며 공식적 주체로 참전했다. 이 모든 상황의 결과로 언론에서 폭로가 터질 때마다 여론의 반전을 주도하는 흐름이 일어나 우세와 열세가 뒤집히는 전개가 반복됐다.
케이팝 신에는 기획사 차원의 권력투쟁에 아이돌이 호출되며 팬덤이 아군으로 포섭되거나 팬덤과 아이돌의 감정적 연결을 마케팅 자원으로 사용하는 전례가 존재한다. 재작년 하이브와 카카오의 SM 인수전에선 이성수 CAO가 이수만 창업주의 개인적 마케팅을 위해 에스파 노래가 이용됐다고 폭로하며 팬덤이 들끓는 일이 있었다. 한편 아이돌을 지켜주고 싶다는 연민과 보호 심리가 더 많은 앨범과 굿즈의 구매를 통해 소비로 전환되는 사례도 일상적이다.
이번 분쟁은 길고도 치열했던 만큼 그런 사례들이 더 과열되고 위험하게 재현됐다. 민희진 전 대표의 기자회견 직후부터 아일릿과 르세라핌이 여론에 의해 낭떠러지까지 몰렸고, 가처분 인용으로 여론이 반전된 지금은 뉴진스를 향해 총구가 몰렸다. 하이브는 산하 레이블 쏘스뮤직 명의로 낸 성명에서 민희진에게 자사의 아이돌 거명을 멈추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하이브 명의로 낸 입장문에서는 특정 멤버의 이름을 스스로 거명하며 전열에 앞세우는 모순을 보였다. 뉴진스 역시 민희진 전 대표가 어느 순간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자리에 나와 모든 화살을 혼자서 맞고 있다. 미디어에서 계속 인터뷰를 하고 ‘혁명가’ 같은 강렬한 단어를 뱉으면서, 왜곡된 책임을 이고 비난의 반작용을 증폭하는 위험을 졌다.
아이돌의 주체성은 케이팝을 꾸미는 이상적 이념이지만, 기획사 시스템의 종속성은 그것을 부정하는 토대로 작용한다. 그 어긋남 속에서 아이돌은 주체로서 행위가 보장받아야 할 때도 있지만,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머무는 것이 윤리적일 때도 있다. 두 자리는 선택적으로 승인되거나 기준 없이 혼동되며 경계가 가려진다. 팬들은 아이돌을 인간으로 존중하라고 외친다. 산업은 팬들의 ‘인간다운’ 감정까지 유무형의 자산으로 바꿔친다. 아이돌이 상품으로 객체화되는 것은 케이팝 산업이 비판받는 전형적인 인습이다. 하이브와 민희진 전 대표의 분쟁은 그와 정반대로 아이돌이 주체로 호명되며 갈등의 정치적 기호로 쓰인 문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이돌의 이름은 전쟁터가 되었고, 상흔은 ‘인간’의 마음 위에 새겨진다. 1년 전, 민희진 전 대표의 기자회견에 열광하던 사람들은 이 또 다른 진실에 얼마나 시선을 두고 있을까.
윤광은 (문화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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