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떼먹고도 ‘대지급금’ 악용해 처벌 면하는 사장님들

박태우 기자 2025. 5. 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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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불 개선안 연구’서 드러난 실태
지급대상·절차 간소화 뒤 ‘반의사불벌’ 종결 급증
임금체불 피해 구제를 위한 ‘대지급금’ 제도가 체불 사업주의 형사 처벌을 면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사진은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체불 규탄 기자회견.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임금체불 피해의 신속한 구제를 위해 체불임금을 국가가 대신 지급하는 ‘대지급금’ 제도가 체불 사업주의 형사처벌을 면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불 노동자는 대지급금을 받는 과정에서 사업주 처벌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은데, 체불 사업주는 지급해야 할 임금을 나랏돈으로 대신 주게 하면서 처벌도 면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체불임금이 급증하는 가운데, 대지급금이 체불 사업주의 ‘사업운영자금’ 정도로 인식돼 관련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고용노동부 연구용역으로 진행한 ‘임금체불 감소를 위한 제도 개선 및 간이대지급금 지급·회수절차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21년 대지급금 지급 절차 간소화와 간이대지급금 지급 대상 확대가 ‘반의사불벌’로 처리되는 임금체불을 늘렸다고 분석했다.

대지급금은 임금체불을 당한 노동자에게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최대 1천만원까지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원래 사업주 도산·폐업에 따라 발생한 임금체불 구제를 위해 퇴직 노동자에게 지급됐으나, 2021년부터는 재직 노동자까지 확대하는 동시에 법원 판결이나 지급명령 없이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발급하는 ‘체불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만으로도 간이대지급금 신청이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이에 따라 간이대지급금을 받은 노동자 수는 2019년 7만5678명에서 지난해 11만9739명으로 급증했다. 전체 체불 노동자 가운데 비중 역시 2019년 21.9%에서 지난해 42.3%로 크게 늘었다. 간이대지급금 지급 액수도 2019년 2911억원에서 지난해 6694억원으로 두배 이상 늘었고, 체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2.7%에 이른다. 대지급금 지급이 늘어나는 사이 임금체불 노동부 신고 사건이 사업주 형사처벌로 이어지지 않고 ‘반의사불벌’로 종결되는 비율 역시, 2019년 30.5%에서 2023년 45.3%로 급증했다. 보고서는 “2021년 간이대지급금 지원절차 간소화 이후 반의사불벌죄 적용 비율이 유의미하게 상승했다”며 “간이대지급금 제도가 쉽게 이용 가능해져 피해자들이 신속하게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고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돈이 급한 노동자 입장에선 대지급금을 받고 사건을 종결하려는 마음이 클 수 있고, 사업주는 체불임금을 대지급금으로 지급하는 게 이득인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처벌불원서’를 받으면 처벌도 면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주는 체불하고도 당장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게 된다. 비수도권의 한 근로감독관은 한겨레에 “대지급금 제도를 사업주도 잘 알고 있어 임금 줄 돈이 없는 사업주가 먼저 노동자에게 노동청에 진정을 하라고 말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김세정 노무사(노무법인 돌꽃)는 “대지급금 사건을 하다 보면 ‘내가 주든 나라에서 주든, 돈 받으면 다 끝나는 것 아니냐’라는 식의 책임 회피 사업주가 많다”며 “체불임금을 국가가 당연히 지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감독관도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어 대지급금을 통한 해결을 선호하는 분위기도 있다. 한 근로감독관은 연구진에 “대지급금으로 처리하는 게 (사업주-노동자-근로감독관) 3자 모두에게 편하다”며 “예전에는 사업주에 대한 수사를 하고 기소(의견 송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체불) 금액만 확인되면 대지급금을 지급하는 것이 관행화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사업주가 반의사불벌죄를 악용해 형사처벌을 피하려는 시도가 증가할 가능성도 있으며, 반의사불벌죄의 실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임금체불죄를 반의사불벌죄로 한 이유는 사업주가 체불임금을 청산하면 처벌을 면해주겠다는 취지인데, 대지급금으로 청산하면 반의사불벌죄의 존재 의미가 없어진다. 임금체불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도 심어줄 수 있다.

그렇다고 체불 피해 노동자에게 신속한 구제수단인 대지급금 제도를 축소 또는 폐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연구에 참여한 김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는 “제도는 선의로 만들었는데 편법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사업주들이 많아 발생한 문제”라며 “사업주가 대지급금 회수에 불응하는 경우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성우 직장갑질119온라인노조 위원장도 “대지급금 제도로 인해 체불임금 청산과 처벌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어졌다면 반의사불벌죄는 없애야 한다”며 “대지급금과 관계없이 사업주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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