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바퀴 없이 네 바퀴라 우기는 자동차
의무는 이행 않고 정치 전면에 선 관료
공정과 상식 정치 금도도 무너진 세상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뭔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할 때면 김광석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가득했던 꿈과 열정만큼이나 불안도 컸던 20대 때는 ‘서른 즈음에’를 참 많이도 들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점점 더 잊혀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취업의 벽이 높던 그날들은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김광석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다시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서른 문턱을 넘기고 십 수년 동안 잊고 있던 그의 노래를 향한 갈증이 다시 커진 걸 보니, 내 마음 어딘가가 단단히 막힌 모양이다.
기자 생활 동안 세상이 나아지고 있기는 한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짙게 들어서다. 부끄럼을 모르는 검찰 모습부터 언론과 기자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한다. 살아있는 권력에 한없이 관대하더니 아무일 없었다는 듯 뒤늦게 ‘칼’을 빼 ‘선택적 정의’ 실현에 나섰다. 최근 떠들썩하게 수사하는 건진법사 이권개입 의혹은 2022년 8월 윤석열 정권 출범 직후 이미 공론화된 사안이다. 인사청탁·세무조사 무마 등 권력형 비리 전형이지만 제대로 된 수사는 없었다. 비리 의혹은 김건희 라인을 쳐내려다 실패한 정치 공작쯤으로 치부됐었다. 4년 넘게 끌다 지난해 무혐의 처분한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도 6개월 만에 ‘재기수사’를 결정했다.
검찰 사정기능이 선택적으로 작동한 대가는 상식적인 시민이 치렀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할 것처럼 속여 100억 원대 부당이익을 취한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으로 소액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 삼부토건 주가는 윤 전 대통령 우크라이나 방문 때 급등했고, 삼부토건 임원이 순방에 동행했다. ‘대통령 격노’ 발언으로 촉발된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수사 외압 사건에선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항명죄로 기소돼 고초를 겪었다. 약 246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 74㎏을 인천세관 직원들의 도움으로 밀반입해 적발된 사건에선 ‘용산이 심각하게 본다’는 말을 전해 듣고도 수사를 밀어붙인 백해룡 경정이 형사과장에서 지구대장으로 좌천됐다.
관료 사회의 정치화는 가슴을 더 답답하게 한다. 정권의 부침에도 전문성과 도덕성으로 국가 운영의 중심을 잡아주던 모습이 없어졌다. 최후의 보루가 사라진 느낌이다. 6·3 대선을 관리하는 심판인 한덕수 권한대행은 급기야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해 탄핵심판을 지연시키더니,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은 임명하려 했다. 보수 지지층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으려 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인권을 무시하는 기관 운영으로 비난을 사더니 윤 전 대통령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안건까지 의결했다. 박선영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극우 진영 음모론에 동조해 과거사를 왜곡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정권 3년을 ‘각자도생의 시대’였다고들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좇는 사람만이 성공하는 시대라는 뜻에서다. 6·3 대선이 치러지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적폐청산’이나 ‘비정상의 정상화’ 같은 이름의 사정정국이 펼쳐질 것이다. 12·3 비상계엄 특검부터 김건희·명태균·채 상병 특검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정치 보복’이라며 반발할 테고 진영 갈등으로 키워 진실을 감추려 들 것이다. 가수 김광석은 1995년의 세상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이름 지어 불렀다. 공정도 상식도 정치적 금도도 무너진 세상 위로 대선 애드벌룬이 덩그러니 떠 있다. 바퀴도 없이 가면서 네 바퀴라고 우기는 지금 시대에 어떤 노랫말을 붙일지 김광석의 음성이 듣고 싶다.
이동현 논설위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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