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호황기에도 끝나지 않은 그들의 싸움

김태형 2025. 4. 3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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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의 날 하청노동자의 외침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3년 전 유최안 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1㎥ 남짓한 철제 구조물에 스스로를 가뒀다. 그는 ‘하청 노동자의 저임금 구조’를 지적하며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 ‘비폭력 저항’을 택했다. 조선업계가 초호황기를 맞은 지금도 하청 노동자들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사이 또 한 명이 철탑 위로 올라가 세상과 단절했다. 서울 장교동 한화 본사 앞 30m 높이 철탑 위에서 김형수 지회장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15일부터 시작된 그의 고공농성은 30일 현재 47일째 이어지고 있다.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앞 30m 철탑에 오른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농성 46일째인 지난 4월 29일 날짜를 표시했다./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

조선업 불황기 때 고용구조 붕괴
고용 확대·상여금 300% 지급 요구
양보안에도 한화오션 “교섭 불가”
‘도크 점거’ 형사재판 진행도 부담

두 노동자의 선택은 ‘비폭력’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구속하거나 철탑에 오르는 극한의 방식을 통해 세상에 절박함을 알리고 있다. 노동절을 맞아 김형수 지회장과 유최안 전 부지회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2022년 6월부터 7월까지 51일간 이어진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조선소 이중구조’를 세상에 드러내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조선소 안에서도 하청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위험을 떠안고 있었다.

지난 2022년 6월 22일 유최안 당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바닥에 가로세로 1미터 크기 철판을 붙여 만든 공간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연합뉴스/

김형수 지회장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애초에 하청의 임금구조가 이렇게 열악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한때 하청 노동자도 연 550%의 상여금을 받았지만, 2016년 조선업 불황이 시작되면서 상여금 150%는 삭감됐고, 400%도 사실상 삭감된 채 기본급으로 전환됐다는 게 김 지회장의 주장이다.

김 지회장은 “당시엔 조선업을 일단 살리고 나중에 정상화되면 삭감된 상여금을 돌려준다는 말에 하청 노동자들이 동의했다”며 “이젠 조선업이 호황이니까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화오션은 ‘삭감된 상여금 550%’는 사내 협력사(하청업체)들이 2018년 이후 기본급으로 전환해 급여에 포함함으로써 더욱 안정적인 임금 체계를 마련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 과정에서 고용 구조도 무너졌다. 조선업은 1차 하청업체 외에도 물량팀(재하청), 이주노동자 등 고용 구조가 복잡하다. 상여금이 없어지자 하청 정규직인 본공(상용직)들은 안정적이진 않지만 당장의 급여가 많은 물량팀을 택하면서 상용직 비중이 크게 줄었다. 대신 그 자리는 이주노동자가 채우고 있다. 지금의 연 50% 상여금은 2023년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이후 한 차례 올린 결과다. 당시만 해도 기대가 있었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은 “50%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2024년 들어 모르쇠했다”며 “하청업체를 통해서 교섭을 이어갔지만 결국 결렬돼 이 상황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하청지회는 2024년 3월부터 한화오션 사내 하청업체 19곳과 단체교섭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그해 8월 쟁의권을 확보해 부분파업을 이어오던 지회는 11월부터 상용직 고용 확대와 상여금 연간 300% 지급 등을 요구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김 지회장은 22일간의 단식도 감행했다. 입장 차를 좁혀 보기 위해 지회는 ‘상여금 300%’에서 ‘50%+α’로 양보 안을 제시했다. “조금씩이라도 단계적으로 올려달라”는 호소였다. 하지만 한화오션 측은 “상여금 인상과 고용 확대는 협력사의 고유한 경영활동”이라며 교섭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지난 3월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앞 30m 철탑에 오른 김형수 지회장./금속노조/

결국 김형수 지회장은 철탑으로 향했다. 김 지회장은 철탑 위에서 구조조정의 악몽을 떠올렸다. 그는 “2016년 하청업체 수십 곳이 문을 닫았고, 숙련된 기술자들은 조선업계를 떠났다”며 “지금 구조가 반복되면 조선업도, 지역경제도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47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2022년 파업을 주도한 하청노조 집행부 5명에게 470억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경남도와 국회 등이 수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남도 사회대통합위원회는 지난 3월 한화오션에 소송 취하를 거듭 촉구했다. 이는 2023년 6월과 2024년 11월에 이어 세 번째 공식 요청이었지만, 한화오션 측은 소송 취하 시 배임죄 우려가 있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2024년 12월 4일 국회 앞 천막농성장에서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경남신문DB/

이와 별개로 형사 재판도 진행 중이다. 당시 도크 점거 농성에 참여했던 하청노동자들은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2단독 김진오 판사는 2025년 2월 19일 이들에게 1심 선고를 내렸다. 유최안 전 부지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김형수 지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선고 직후 조선하청지회는 즉각 항소했다.

1심 재판부는 “집회 과정에서 다수의 조합원과 업무방해 등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 정도 등을 감안하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다만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의 개선 및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공익적 목적이 있었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옥쇄 투쟁을 벌였던 유최안 전 부지회장은 여전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유 전 부지회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원청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며 “2022년 파업 당시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현실감조차 없는 금액이다. 경제적으로는 어떤 꿈도 희망도 갖지 말라는 것”이라며 “언제 어떻게 이 상황이 마무리될지 감도 안 잡힌다”고 했다.

그는 김형수 지회장에게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건강 잘 챙기시고, 우리 이길 때까지 힘냅시다.”

김태형 기자 t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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