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산재조사표’ 안 내도 그만… 고용부, 11년째 관리 방치 [심층기획-고장난 산업재해 정책]
제출기준 바뀌면서 시스템 관리 ‘구멍’
사망 사고조차 1년 넘게 미제출 몰라
과태료 부과도 안 해… 유족 “업무 태만”
통계·조사표 기준 달라 현황 파악 곤란
고용부, 제출 여부 사전에 알지도 못해
정보공개 청구 안 했으면 영영 묻힐 뻔
미제출 업체 규모 파악 불가 ‘더 큰 문제’
연간 적발 건수 700∼800건 수준 그쳐
산재보험 적용 대상 ‘4일 이상 요양’인데
조사표 제출은 ‘3일 이상 휴업’으로 규정
11년 前 기준 이원화 이후 통계 불일치
전문가 “제출 주체 다양화 등 검토 필요”

강효진(28)씨는 4월8일 고용노동부 영주지청 관계자로부터 전화로 “시스템을 봤을 때 회사가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했으면 등록이 돼 있을 텐데 안 돼 있다”며 이 같은 통보를 받았다. 강씨는 전날 부친 사고 관련 산업재해조사표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강씨 부친은 지난해 4월18일 경북 지역 한 공사현장에서 작업 중 13m 높이에서 추락하는 사고로 숨졌다. 산업재해조사표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한 달 이내 사업주가 재해발생 개요와 원인, 재발방지 계획 등을 담아 제출해야 하는 서류다. 기한 내 제출하지 않는 경우 최대 1500만원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고용부는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됐는데도 강씨 부친이 소속됐던 업체 A사로부터 산업재해조사표를 받지도, 미제출에 대한 과태료를 물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강씨는 영주지청 관계자에게 “1년 가까이 됐는데 산업재해조사표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 담당자 선에서 잘못한 거 아니냐”고 따졌고, 이 관계자는 “사업주가 정신이 없어서 빠뜨렸을 수도 있다”는 등 변명을 늘어놨다. 강씨가 정보공개 청구를 하지 않았다면 고용부가 영영 A사의 산업재해조사표 미제출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수 있는 것이다.

강씨 부친 사망사고의 경우 당국이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한 수사뿐 아니라 중대재해 원인조사까지 실시했는데도 1년 가까이 산업재해조사표 미제출 상태를 방치해놨던 경우다.
더 큰 문제는 당국이 A사 같은 산업재해조사표 미제출 업체 규모조차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강씨처럼 유족 등 관계자가 나서지 않는 이상 산업재해조사표도, 미제출에 따른 과태료도 내지 않는 업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미제출 업체 규모를 추정하지 못하는 만큼 그 적발 또한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산재 은폐 또한 용이한 현실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산업재해조사표가 제출되더라도 사고 원인 등 주요 내용이 ‘맹탕’인 경우가 허다하다. 산업재해조사표는 산재 발생 시 사업장 차원에서 이뤄지는 1차 조사 결과물로서 산재 예방 정책 수립의 ‘주춧돌’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미제출 문제는 물론 조사 내실화를 위한 제도 손질이 시급해 보인다.

30일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실이 고용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제출된 산업재해조사표는 모두 11만982건으로 집계됐다. 2020년 7만5796건, 2021년 8만9034건, 2022년 9만6230건, 2023년 10만5905건 등으로 제출 건수가 매해 늘어나는 추세다.
다만 고용부가 매해 내놓는 ‘산업재해 현황분석’ 자료상 산재 건수와 비교하면 한 해 3만여건 격차를 꾸준히 보이고 있다. 2020년의 경우 3만1824건, 2021년 3만2818건, 2022년 3만2893건, 2023년 3만172건(2024년 산업재해 현황분석 미발표) 차이가 난다.
고용부는 산업재해 현황분석 자료를 근거로 산업재해조사표 미제출 업체 규모를 추정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현재로선 산업재해조사표 제출 대상 규모를 확인하기 위한 ‘3일 이상 휴업’ 데이터는 수집할 수 없다는 게 고용부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산업재해조사표 관리에 이런 ‘구멍’이 생긴 건 11년 전 산업재해조사표 제출 기준을 기존 ‘4일 이상 요양’에서 ‘3일 이상 휴업’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산재 통계를 담당하는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산재 통계는 기본적으로 산재보험 승인 자료로 만들기에 요양 기준으로 만드는데, 산업재해조사표는 2014년부터 휴업을 기준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이원화됐고 통계가 일치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2014년 당시 산업재해조사표 제출 기준을 분리한 건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란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업주 입장에서도 부담을 덜고 고용부 입장에서도 조금 더 정도가 심한 재해에 대해서만 관리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정책적 판단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재해조사표 제출 기준을 과거로 돌려놓을 수 없다면 강씨 부친 사례처럼 미제출이 방치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당국이 모니터링이라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산업재해조사표 제출 주체를 다양화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승우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영국, 미국, 일본, 독일 등이 사업주뿐 아니라 산재 보고 주체를 다양화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고용부도 산재 은폐 신고를 받긴 하지만 그 건수가 미미하다. 재해 당사자, 의료진 등에 보고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면 자연스레 사업주의 미보고 시도 또한 견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고용부가 1년 가까이 산업재해조사표 미제출 사실조차 인지 못한 채 방치한 건 단순 과실을 넘어 시스템상 허점에 따른 것”이라며 “모니터링 강화는 물론 산재 예방 정책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산업재해조사표 제도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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