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바람 피해 들어선 귀한 공간…'기록 문화'를 지킨 힘

김예나 2025. 4. 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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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사고 0.7㎞.'

2층에 걸린 검은 현판에 적혀 있는 글자는 '사각'(史閣). 물과 불, 바람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길한 장소에 세워 귀한 책을 보관했던 오대산 사고(史庫)의 흔적이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전면 개관을 기념해 다음 달 1일 개막하는 특별전 '오대산 사고 가는 길'에서는 오대산 사고의 발자취를 찬찬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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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오대산 사고 터 가보니…1992년 복원한 사각·선원보각 눈길
책 꺼내 바람에 말리는 포쇄 82회 이뤄져…추사 김정희도 다녀가
사적 '평창 오대산 사고' (평창=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강원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사적 '평창 오대산 사고(史庫)' 모습. 사고는 조선왕조실록 등 국가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는 서고로, 한국전쟁으로 모두 불에 탔으나 1992년에 다시 지었다 2025.4.30 yes@yna.co.kr

(평창=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오대산 사고 0.7㎞.'

30일 낮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일대. 차에서 내려 길을 따라 걷자 이내 팻말이 보였다. 차로 가면 5분, 천천히 걸으면 약 10∼15분 거리였다.

언뜻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지만, 한 걸음씩 내딛자 곳곳에서 '어구' 하는 소리가 나왔다.

길을 안내하던 홍순욱 월정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은 "생각보다 경사가 있어서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 옛날 사관(史官)들도 오갔던 길"이라고 말했다.

실록을 보관하던 '사각' (평창=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강원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사적 '평창 오대산 사고(史庫)' 모습. 사고는 조선왕조실록 등 국가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는 서고로, 한국전쟁으로 모두 불에 탔으나 1992년에 다시 지었다 2025.4.30 yes@yna.co.kr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른 곳에는 옛 모습을 한 건물이 있었다.

2층에 걸린 검은 현판에 적혀 있는 글자는 '사각'(史閣). 물과 불, 바람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길한 장소에 세워 귀한 책을 보관했던 오대산 사고(史庫)의 흔적이다.

한국전쟁으로 모두 불에 타 1992년에 복원한 사각과 선원보각 두 건물은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전면 개관을 기념해 다음 달 1일 개막하는 특별전 '오대산 사고 가는 길'에서는 오대산 사고의 발자취를 찬찬히 볼 수 있다.

오대산 사고 선원보각에서 바라본 사각 (평창=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강원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사적 '평창 오대산 사고(史庫)' 선원보각 건물에서 바라본 사각((史閣). 사고는 조선왕조실록 등 국가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는 서고로, 한국전쟁으로 모두 불에 탔으나 1992년에 다시 지었다. 2025.4.30 yes@yna.co.kr

붉은 먹으로 새긴 교정 부호가 남아 있는 오대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의 모습이 남아 있는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 등 유물 40여 점을 소개한다.

영조(재위 1724∼1776)가 직접 쓴 '어제훈서'(御製訓書) 표지 안쪽에는 "1756년 7월 2일 오대산 사고에 '어제훈서' 1건을 왕께서 친히 내리셨다"는 기록이 있어 눈길을 끈다.

사고에서 주기적으로 책을 꺼내 바람에 말린 포쇄(曝曬) 과정도 설명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조선시대에 오대산 사고에서는 실록 포쇄가 총 82회 실시됐고, 이를 위해 한양에서 사관이 직접 파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오대산 사고의 흔적 (평창=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강원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사적 '평창 오대산 사고(史庫)' 근처에 남은 표석. 과거 사고와 관련한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표석이 남아있다. 2025.4.30 yes@yna.co.kr

사관들은 포쇄가 끝난 뒤 관동 지역의 명승을 여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 강릉 오죽헌을 다녀간 사람들의 방명록인 '심헌록'(尋軒錄)에는 추사 김정희(1786∼1856) 이름도 남아 있어 1823년 포쇄를 마친 뒤 오죽헌을 다녀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전시에서는 포쇄 작업을 마친 사관들이 오대산 금강연을 찾아 주변 바위에 이름을 새긴 조선시대판 '인증샷'(인증사진)도 탁본 유물로 소개한다.

박물관은 매년 오대산 사고본 실록·의궤와 관련한 특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보수 마친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평창=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강원 평창 월정사의 국보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모습. 지난해 상륜부 해체·보수를 마치고 관람객에 공개되고 있다. 2025.4.30 yes@yna.co.kr

김정임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장은 "오대산 사고본은 일본에 반출됐던 아픔을 겪고 오랜 노력 끝에 돌아온 유물"이라며 "주기적으로 실록과 의궤를 교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물관과 가까운 월정사는 최근 국보 문화유산의 보수를 마쳤다.

대표적 유물인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은 2019년부터 석탑 일부를 해체·보수하고 찰주(擦柱·불탑 꼭대기에 세운 장식의 중심을 뚫고 세운 기둥) 복원품을 만들어 설치했다.

보수 마친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평창=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강원 평창 월정사의 국보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모습. 지난해 상륜부 해체·보수를 마치고 관람객에 공개되고 있다. 2025.4.30 yes@yna.co.kr

홍 학예실장은 "7∼9층과 상륜부를 해체해 조사했다. 찰주와 금속 장엄물은 보존 처리한 뒤 박물관에서 보관·전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월정사 석탑은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공양을 올리는 듯한 모습으로 잘 알려진 석조보살좌상(정식 명칭은 국보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과 마주하고 있으며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현재 탑 앞에는 석조보살좌상 복원품이 전시돼 있으며 실물은 월정사성보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국보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평창=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강원 평창 월정사성보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국보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모습. 2025.4.30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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