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바람 피해 들어선 귀한 공간…'기록 문화'를 지킨 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대산 사고 0.7㎞.'
2층에 걸린 검은 현판에 적혀 있는 글자는 '사각'(史閣). 물과 불, 바람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길한 장소에 세워 귀한 책을 보관했던 오대산 사고(史庫)의 흔적이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전면 개관을 기념해 다음 달 1일 개막하는 특별전 '오대산 사고 가는 길'에서는 오대산 사고의 발자취를 찬찬히 볼 수 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책 꺼내 바람에 말리는 포쇄 82회 이뤄져…추사 김정희도 다녀가
(평창=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오대산 사고 0.7㎞.'
30일 낮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일대. 차에서 내려 길을 따라 걷자 이내 팻말이 보였다. 차로 가면 5분, 천천히 걸으면 약 10∼15분 거리였다.
언뜻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지만, 한 걸음씩 내딛자 곳곳에서 '어구' 하는 소리가 나왔다.
길을 안내하던 홍순욱 월정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은 "생각보다 경사가 있어서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 옛날 사관(史官)들도 오갔던 길"이라고 말했다.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른 곳에는 옛 모습을 한 건물이 있었다.
2층에 걸린 검은 현판에 적혀 있는 글자는 '사각'(史閣). 물과 불, 바람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길한 장소에 세워 귀한 책을 보관했던 오대산 사고(史庫)의 흔적이다.
한국전쟁으로 모두 불에 타 1992년에 복원한 사각과 선원보각 두 건물은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전면 개관을 기념해 다음 달 1일 개막하는 특별전 '오대산 사고 가는 길'에서는 오대산 사고의 발자취를 찬찬히 볼 수 있다.
붉은 먹으로 새긴 교정 부호가 남아 있는 오대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의 모습이 남아 있는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 등 유물 40여 점을 소개한다.
영조(재위 1724∼1776)가 직접 쓴 '어제훈서'(御製訓書) 표지 안쪽에는 "1756년 7월 2일 오대산 사고에 '어제훈서' 1건을 왕께서 친히 내리셨다"는 기록이 있어 눈길을 끈다.
사고에서 주기적으로 책을 꺼내 바람에 말린 포쇄(曝曬) 과정도 설명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조선시대에 오대산 사고에서는 실록 포쇄가 총 82회 실시됐고, 이를 위해 한양에서 사관이 직접 파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관들은 포쇄가 끝난 뒤 관동 지역의 명승을 여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 강릉 오죽헌을 다녀간 사람들의 방명록인 '심헌록'(尋軒錄)에는 추사 김정희(1786∼1856) 이름도 남아 있어 1823년 포쇄를 마친 뒤 오죽헌을 다녀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전시에서는 포쇄 작업을 마친 사관들이 오대산 금강연을 찾아 주변 바위에 이름을 새긴 조선시대판 '인증샷'(인증사진)도 탁본 유물로 소개한다.
박물관은 매년 오대산 사고본 실록·의궤와 관련한 특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정임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장은 "오대산 사고본은 일본에 반출됐던 아픔을 겪고 오랜 노력 끝에 돌아온 유물"이라며 "주기적으로 실록과 의궤를 교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물관과 가까운 월정사는 최근 국보 문화유산의 보수를 마쳤다.
대표적 유물인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은 2019년부터 석탑 일부를 해체·보수하고 찰주(擦柱·불탑 꼭대기에 세운 장식의 중심을 뚫고 세운 기둥) 복원품을 만들어 설치했다.
홍 학예실장은 "7∼9층과 상륜부를 해체해 조사했다. 찰주와 금속 장엄물은 보존 처리한 뒤 박물관에서 보관·전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월정사 석탑은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공양을 올리는 듯한 모습으로 잘 알려진 석조보살좌상(정식 명칭은 국보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과 마주하고 있으며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현재 탑 앞에는 석조보살좌상 복원품이 전시돼 있으며 실물은 월정사성보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yes@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초등학교 교실서 남녀교사 부적절한 행위" 민원…교육청 감사 | 연합뉴스
- '계엄군이 선관위 중국간첩 99명 체포' 허위보도 기자 구속 기로 | 연합뉴스
- 더본코리아, '점주 상생위원회' 만든다…백종원 사재출연 | 연합뉴스
- '유소년 선수 학대' 손웅정 감독 등 3명 3∼6개월 출전정지 징계 | 연합뉴스
- [샷!] '맛있는' 캠페인…"6·3 대선에 한표를~" | 연합뉴스
- 중국동포 형제 살해한 차철남, 왜 도주 않고 추가범행 저질렀나 | 연합뉴스
- 전투기 촬영에 흉기 사건까지…꼬리 무는 중국인 범죄 문제없나 | 연합뉴스
- [르포] "쓰면 초능력 얻어"…구글, 삼성과 스마트안경 개발 '깜짝' 발표 | 연합뉴스
- "악귀 퇴치해야"…숯불 피워 조카 살해한 무속인 | 연합뉴스
- 울산 아파트 8층서 네살배기 떨어져 숨져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