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가 ‘대규모 정전’ 원인? 스페인 총리 “거짓 또는 무지”

윤연정 기자 2025. 4. 3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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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태양광·풍력이 전력망 취약하게 해” 주장
지난 29일(현지시각)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난 스페인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한 남자가 배터리로 작동하는 라디오와 손전등을 판매하고 있다. 바르셀로나/AP연합뉴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대규모 정전 사태와 관련, 유난히 높은 두 나라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됐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력망의 문제와 발전원의 문제를 혼동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현지시각), 외신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전력이 대부분 복구됐으나 전날 발생한 대규모 정전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정전 원인을 두고 여러 추측성 분석들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다른 나라들에 견줘 비중이 높은 스페인·포르투갈의 재생에너지가 전체 전력망에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란 관측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날 “이번 대규모 정전 사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어느 정도는 유럽의 전력 인프라의 복원력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보도했다. 그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원 건설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는데, 그것이 전력망을 취약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에너지 전문가를 인용해 “터빈을 돌려서 에너지를 얻는 석탄·가스 화력이나 원자력 등 기존 발전원은 문제가 생기더라도 터빈이 회전하는 관성이 작동하기 때문에 풍력·태양광 같은 ‘간헐적’ 발전원에서 흔히 발생하는 변동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저장된 회전 에너지는 충분한 예비 용량이 가동될 때까지 전력망 주파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기상 상황에 따라 변동하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망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이것이 정전 사태를 일으켰을 것이란 논리다.

실제로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화석연료로부터 ‘전환’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 안에서도 높은 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를 보면, 2023년 스페인은 전체 전력 생산의 절반가량을 풍력(22.5%), 태양광(15.1%), 수력(10.9%) 등 재생에너지에 의존했다. 원자력은 19.9%를 차지했다. 포르투갈은 스페인의 전력 공급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스페인의 2023년 전력 생산 비중 그래프. 재생에너지가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국제에너지기구 누리집 갈무리

그러나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날 “정전 사태를 원자력발전 부족과 연관 짓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무지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며 ‘재생에너지가 정전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일부 매체들도 재생에너지에 책임을 돌리는 분석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영국 가디언은 “스페인 전력망은 재생에너지 생산량이 매우 높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공급량(의 변동)이 원인일 가능성은 낮다”는 에너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풍력·태양광 발전량 증가로 인해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렸다는 추측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전력망에 어떤 종류의 에너지가 공급되든 정전은 발생할 수 있다”며, 화석연료 발전이 대부분이던 2003년 런던에서 변압기 고장 등으로 일어난 정전, 2019년 런던 북쪽에서 낙뢰로 발생한 정전 등을 반례로 들기도 했다. 키스 벨 영국 스트라스클라이드대 교수(전자전기공학)는 “에너지를 어디에서 공급받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을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한마디로 전력망의 문제와 발전원의 문제를 혼동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발전원을 쓰느냐보다 전력망을 어떻게 잘 구축하느냐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한겨레에 이번 정전 원인을 전력망이 아닌 발전원(재생에너지 비중)에서 찾는 건 “전화가 안 터지는데, 이게 통신망(전력망)의 문제인 거냐 휴대전화 자체(발전소)의 문제인 거냐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안을 원전과 재생에너지 사이의 논쟁으로 비약시켜서 풀이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 흔히 발전기만 전환하면 재생에너지 전환(RE100)이 이뤄질 것처럼 얘기해왔는데, (이번 사태는) 전력망을 제대로 구축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고 짚었다. 전영환 홍익대 교수(전자전기공학부) 역시 이번 사태가 “발전소를 아무리 많이 짓고 전력망을 아무리 촘촘하게 깔아도,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한겨레에 지적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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