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조 넘는 돈 관리하는 日…가족보다 후견인 선호

김용훈 2025. 4. 3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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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에 초고령사회 진입한 日
치매머니 2146조원, GDP의 40%
치매머니 문제, 한국보다 일찍겪어
변호사·법무사에 자금관리 맡기는
성년후견 이용자 25만명으로 증가
생활용 계좌는 후견인 입출금 허용
일본 도쿄에 있는 요양원 인근에서 70대인 에이이치 오쿠보 씨가 치매를 앓고 있는 60대 아내 유미코씨에게 꽃을 가리키며 얘기하고 있다. 일본의 치매 환자가 약 600만명에 달하는 가운데 이들의 자산을 확인하지 못해 묶여버린 ‘치매머니’가 2017년 기준 143조엔(약1427조원)에 달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로이터]

“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기억 못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아이들에게 계약서를 보냈어요. 부동산과 은행 예금도 싹 다 표로 정리했습니다.”

경남 김해시에 살고 있는 김인(73)씨는 최근 자신과 남편에 대한 간병인 보험에 가입한 후 아들과 딸에게 보험 가입계약서를 공유했다. 주변에 치매 환자가 늘면서 자식들이 간병비에 시달리는데 돈이 있는지 모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20년 전인 2004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에 진입한 일본은 치매환자의 자산을 확인하지 못해 묶여버린 ‘치매머니’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우리나라도 치매환자 100만명 시대가 되면서 비슷한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일본의 ‘치매머니’ 정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치매 환자는 약 600만명에 달한다. 65세 이상 3750만명 가운데 약 16%가 치매를 앓고 있다. 전후 단카이 세대(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75세를 넘는 2025년에는 700만명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의 자산은 일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다이이치 생명경제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2017년 기준 143조엔(약 1427조원)가량이던 치매머니는 2030년 215조엔(약 2146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40% 수준이고, 가계 금융자산 전체로는 10%가 넘는다.

치매머니로 75세 이상 고령층의 자산이 동결되면 이로 인한 경기 침체를 우려해야 할 수준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판단 능력을 상실한 개인 대신 특정인에게 법률적 행위와 권한 부여하는 ‘성년후견제도’와 치매 전 가족에게 미래 자산관리를 위탁하는 ‘가족신탁’ 등을 도입해 치매머니의 동결을 막고 있다. 다만 가족 신탁은 환자 본인이나 가족이 치매로 악화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이용률이 낮다.

이에 비해 가족을 비롯해 월 2만~6만엔(약 20만~60만원)을 주고 변호사, 법무사 등 전문직 종사자를 후견인으로 지정해 자금을 관리하고 입출금을 맡기는 성년후견제도는 그 이용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해당 제도 이용자들은 2018년 21만8142명에서 2023년 24만9484명까지 늘었다.

김명중 닛세이 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에선 치매환자가 증가하면서 예금 및 적금 등을 관리할 수 있거나 신상보호, 개호(간병)보험 계약 등을 위해 성년후견인을 신청하는 고령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도 해당 제도에 대한 지원금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후생노동성은 해당 제도에 전년 8억1000만엔(약 81억2500만원)보다 40% 이상 늘린 11억4000만엔(약 114억3693억원)을 지원했다.

아울러 제도를 계속 개선하는 모습이다. 예컨대 고령자의 은행계좌를 자산용과 생활자금용으로 나눠 자산용 계좌의 해지와 입출금은 금융기관과 가정법원 등이 엄격하게 관리하도록 하지만, 생활자금용 계좌는 후견인이 입출금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인터넷금융도 허용하고 있다.

제도가 정착하면서 최근엔 친인척보다는 지방자치단체나 사법서사 등 전문인이 성년후견인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김명중 수석연구원은 “성년후견인의 약 80%가 전문가로 선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는 치매 환자 수도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복지부의 치매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치매 환자 가족의 45.8%가 돌봄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1월 ‘초고령화 대응방향’을 통해 우리나라의 치매머니 규모를 추정하고 이들의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게 위한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저고위 예산은 지난해 대비 87% 감소한 13억7000만원으로, 예비비를 활용해 인건비만 반영한 수준인 탓에 연구용역을 진행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관련법도 아직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회사가 아닌 법무·회계·세부법인 등 전문기관이 신탁 업무의 일부를 위탁받아 치매·요양와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 ‘자본시장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됐고,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지난달 복지부 주도의 재산관리 지원사업을 명문화하는 ‘치매관리법 일부개정안’을 제안했지만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보다 부유한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50~60세)가 만 70세에 접어드는 시점인 10년 후 국내 치매머니의 규모 역시 일본 못지않게 많이 증가할 것”이라며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치매머니가 세대 간 상속을 어렵게 해 환자의 가족을 경제적 위기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문제로도 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명중 연구원은 “우리는 일본보다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어쩌면 일본보다 친인척 간에 금전적인 대립이 심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전문적인 성년후견인에게 금융자산 등의 계약 및 해지 등을 담당하게 하는 제도를 정립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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