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생태계가 주는 위로의 시간... 황금연휴 '치유농업' 어때요
자연·인간 함께 회복… '우울 60% 감소'
"비로소 숨 쉬어"… 삶 바꾸는 전환점도
아동, 직장인 등… '예방형' 치유로 확대
화산석이 얽혀 생긴 구멍에 수태를 꾹꾹 눌러 틀을 잡고 이끼를 조심스레 얹는다. 물아일체가 이런 것일까. 단순 작업이 주는 몰입감이 어느새 근심을 멀리 쫓는 느낌이다. 옆에선 '아기 도둑게'가 자신의 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작은 수조에 수려한 자태의 나한송을 더하니 제법 자연의 일부 같다.
한국에서 '치유농업1'은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농업이 어떻게 사람을 낫게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고 29일 전북 익산의 치유농장 '우리들의 정원'을 찾았다. 농장에서 직접 기른 허브로 만든 차로 먼저 마음을 이완하고, 천연 아로마 오일을 활용한 족욕으로 몸을 풀면 자연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난다. 이어 축소된 생태계 '비바리움(vivarium)'을 만들다 보면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게 되고 인간 역시 분리될 수 없단 사실을 깨닫는다.
이경의(47) 우리들의 정원 이사는 "한 발달장애 참여자는 처음엔 사람들 눈도 마주치지 못했지만 5년간 허브를 키우고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달라졌다"며 "프로그램을 하던 중 취업에 성공해 첫 월급 날 아이스크림을 사는가 하면, 마지막엔 선생님을 안으며 '감사하다'고 표현했다"고 회상했다. 장애아동과 보호자 대상 프로그램에선 돌봄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비로소 숨 쉬는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자연과 영향 주고받으며 회복하는 과정"
치유농업은 단순한 원예 활동을 넘어 감각 자극, 집중, 교감, 회복의 과정을 경험케 한다. 정부는 2020년 제정된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로 법적 기반을 갖췄고, 2022년 1차 종합계획을 수립한 뒤 지난해까지 46종의 프로그램을 실증했다. 기존엔 주로 발달장애인이나 중독자, 우울증 환자 등 특수 목적형 치유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최근에는 아동·청소년, 교육·의료기관 종사자, 직장인 등 다양한 대상을 상대로 한 예방형 치유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이날 방문한 우리들의 정원은 5년 전부터 가족, 직장인 등 다양한 단위의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난해에만 약 8,500명이 농장을 방문했다. 복지원예사·원예심리치료사인 이 이사는 뇌파검사기를 구입해 직접 치유농업 전후 효과를 논문으로도 정리하고 있다. 이런 노력 덕에 지난해 농촌진흥청 주최 '생활원예·치유농업 중앙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이사는 "치유농업은 단순히 농작물을 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신성장산업으로 키운다...하반기 인증제 도입
농진청은 민간과 함께 치유농업을 국민 누구나 이용하는 신성장산업으로 키울 계획이다. 최소영 농촌자원과장은 "올해 늘봄학교 157개교 315학급에 적용했는데 2027년까지 1,000학급으로 확대하고, 현재 34만 명 수준의 참여자를 80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반기엔 치유농업 품질향상을 위한 '우수 치유농업시설 인증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현재는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지만 민간 확대 시에도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로 육성한단 구상이다. 가천대 의대와 함께 의과학적 검증도 병행 중이다. 이미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 대상 7주간 활동 결과 인슐린 분비 기능은 47% 증가, 스트레스 호르몬은 28%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고령층 대상 주말농장에서도 27주 치유농업 후 우울감이 60%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익산=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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