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통합징수법’ 통과,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

한겨레 2025. 4. 3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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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1987년 광주 가톨릭센터 건물에 내걸린 ‘케이비에스(KBS) 시청료 거부’ 펼침막. 한겨레 자료사진

이희용 | 언론인

“티브이(TV) 수신료와 전기료를 통합 징수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죠. 윤석열 정권이 공영방송 기능을 약화하려고 한 조치잖아요.”(시민단체 관계자)

“수신료가 케이비에스(KBS·한국방송) 시청 대가가 아니라 수상기 보유 부담금이라지만 아직도 내란 세력을 두둔하는 듯한 케이비에스 보도 행태를 보면 수신료 낼 마음이 싹 가십니다.”(언론단체 관계자)

수신료 통합 징수를 위한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언론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일부는 한국방송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시청자와의 공감대 형성이나 시민사회와의 숙의 과정이 부족한 상태에서 법안이 통과돼 얼떨떨한 느낌”이라는 재야 언론인의 평가도 있었고, 한 보수 신문 기자는 “국민의힘 의원들까지 찬성해 통과시키니 민주당의 횡포로만 몰아붙이기도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속사정 때문인지 언론 전문지 등을 제외한 대부분 매체는 당일 스트레이트 기사로 소식을 전하는 데 그쳤고 기획기사나 사설, 칼럼 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2023년 7월 정부가 방송법 시행령을 고쳐 분리징수를 밀어붙일 때 “공영방송 탄압”을 주장하는 반대론과 “시청자 선택권 보호”를 내세우는 찬성론이 격렬하게 맞붙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의요구한 방송법 개정안이 국민의힘 의원 20여명의 가세로 재표결 문턱을 넘은 것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13일 만이었다. 정치 지형의 급속한 변화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방송은 사보에서 “보도시사본부 내 정치외교본부가 수신료 법안 통과의 핵심 허브 역할을 해냈으며, 지역(총)국과 지역정책실은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했다”고 밝혔다. 한국방송 기자의 설명과 호소를 로비나 압력으로 느끼지 않을 국회의원이 얼마 없다는 점을 떠올리면 부적절하게 비친다.

윤석열 정권은 공영언론의 재원 기반을 무너뜨리거나 지배구조를 바꿈으로써 조직 내분을 부추기고 정권 충성을 유도해왔다. 한국방송, 연합뉴스, 와이티엔(YTN)과 함께 티비에스(TBS)도 희생양이 됐다. 일부 공영 언론 구성원들은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지지를 요청하거나 시민단체·언론단체들과 손잡고 저항하기보다는 정권에 대한 충성이나 정권과의 유착으로 경영 위기를 해결하려 했다. 수용자와는 더욱 멀어졌고 시민·언론단체 연대의 끈은 희미해졌다.

이제 윤 정권이 파괴해온 공영 언론 시스템을 차례로 복원해야 한다. 그러나 특정 정파가 주도해서는 안 되고 이해당사자인 언론인과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둘 수도 없다. 한국방송 직원들은 “케이비에스 직원 5000명을 위해 대한민국 5000만명이 희생해야 하는 법안”이라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평가나 “이미 정치권력에 예속된 케이비에스를 더욱 정치화시킬 것”이라는 황근 선문대 교수의 예측을 말도 안 된다고 여길 것이다. 입으로만 반박하지 말고 실천으로 입증하기 바란다.

올해는 ‘한국방송 시청료 거부운동’ 40주년이다. 1985년 5월1일 시작된 관제방송, 어용방송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권 행사가 시청자 주권 의식을 일깨우고 방송 종사자들의 각성을 촉구해 이른바 87년 체제를 만들어냈다. 그해 제정된 방송법에서 시청료는 수신료로 바뀌었지만 공영방송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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