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도시적 실험과 인간의 삶이 충돌한 현장, 뉴욕 '투 브리지스'

2025. 4.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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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형 남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지난 기고에서 로어 이스트 사이드를 조명한 데 이어, 이번에는 그 남쪽에 접한 투 브리지스(Two Bridges)로 시선을 옮긴다. 지명과 같이 브루클린과 맨해튼 브리지 사이, 이스트 리버를 따라 자리한 이 지역은 두 개의 상징적 인프라가 도시를 가로지르듯, 이민과 개발, 충돌과 공존의 시간을 따라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다. 오랫동안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연장선으로 인식되던 이곳은, 이민자들이 남긴 문화적 층위 위에 도시계획과 대규모 인프라가 개입되며, 깊은 도시적 상흔이 새겨진 곳으로 특징 지워진다.

투 브리지스의 이러한 특성은, 최근 개봉한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데이 원(A Quiet Place: Day One)'에 인상적으로 투영된다. 영화는 지역과 인접한 차이나타운의 모트 스트리트(Mott St.)를 배경으로 삼아, 청각에 민감한 외계 생명체의 침공 속에서 시한부 삶을 사는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중 전투기가 두 브리지를 폭파하는 장면에서 극적인 절정을 맞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허구적 재난이 단순한 상상에 그치지 않고, 투 브리지스가 실제로 겪어온 거대 인프라와 어반 리뉴얼의 침범, 그에 따른 주민의 이주, 지역사회의 해체, 도시 구조의 급변과 깊숙이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 붕괴하는 도시와 패닉에 빠진 시민들의 모습은, 현실의 도시정책이 남긴 상흔의 은유적 투영으로 읽힌다.

이 지역은 17세기부터 도시화가 시작된 로어 이스트 사이드와 함께 발전해 왔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는 테너먼트 아파트를 중심으로 유럽계 이민자들이 정착했고, 이후 라틴아메리카계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점차 다문화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투 브리지스는 로어 이스트 사이드와 분화되어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인접한 차이나타운과 긴밀한 연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는 푸저우 출신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기존의 광둥계 차이나타운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지역사회가 자리 잡았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공간구조의 격변 또한 두 지역을 갈라놓는 운명적 분기점이 되었다. 투 브리지스는 대규모 도시 인프라와 공공주택 개발이 집중된 공간으로, 제도적 개입과 인간의 삶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한 지역 중 하나다. 첫 번째 변곡점은 브루클린과 맨해튼 브리지의 건설이었다. 두 다리는 교통과 물류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도시의 확장을 도왔지만, 동시에 기존 블록을 가로지르며 지역사회를 해체하고 공간적 단절을 야기하였다. 이어진 두 번째 전환은 20세기 중반 어반 리뉴얼을 명분으로 한 대규모 철거형 재개발이다. 로버트 모지스의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s)의 일환으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타워 인 더 파크(Towers in the Park) 모델이 도입되었다. 과거의 저층 테너먼트 주택과 좁은 골목길은 철거되었고, 그 자리는 넓은 녹지 위에 고층 공공주택이 배치된 수퍼블록(superblock)으로 대체되었다. 제인 제이콥스는 이러한 개발이 기존 지역사회의 연속성과 거리의 생명력을 단절한다고 비판하였다. 흥미롭게도, 지역에 새겨진 도시적 상흔은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인 뉴욕에서 지역의 대표적인 공공주택 단지인 니커보커 빌리지를 포함한 선거구는,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맨해튼 내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함으로 주목받았다. 이는 노숙자 증가, 약물 관련 범죄 등 지속적인 도시 문제로 인해 고조된 주민들의 불안감이 정치적 보수화로 이어졌다고 분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 브리지스는 여전히 뉴욕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역 중 하나다. 차이나타운과 맞닿은 지리적 맥락, 공공주택이 밀집된 사회적 구조, 그리고 다양한 이민자 공동체가 공존하는 특성은 이곳을 살아 있는 도시 실험의 현장으로 만든다. 오래된 벽돌 건물과 현대식 주거 타워가 나란히 서 있고, 거리에서는 다양한 언어가 교차하며, 낡은 베이커리 옆에는 갓 문을 연 갤러리가 자리를 잡는다. 도시는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하는 유기체이며, 그 역동성이 가장 밀도 높게 드러나는 공간이 바로 이곳, 투 브리지스다. 과거의 상처를 품은 채, 새로운 변화와 공존하는 이 지역은 뉴욕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담고 있는 도시적 실험의 유산이라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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