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월호 침몰 ‘외력설’은 사그라들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 11주기가 지나갔다. 때맞춰 다큐멘터리 영화 ‘제로썸’이 스크린에 걸렸다. 미국 잠수함의 충돌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설정이다. 김성수는 ‘뉴스타파’ 기자다. 11년 동안 세월호 탐사 취재와 보도를 내려놓은 적이 없다. 방대한 기록과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한 책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2024) 집필에도 핵심적으로 참여했다. 김 기자는 ‘제로썸’을 어떻게 봤을까.
―‘그날, 바다’(2018)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둘 다 ‘외력설’(선체 외부적 작용에 의한 침몰설)을 펴고 있다. 그러나 고의로 닻을 바다에 빠뜨려 침몰시켰다고 주장하는 ‘그날, 바다’는 세월호 선체를 확인하지 않은 단계에서 사고 원인을 유추했다. 태생적인 한계가 없지 않았다. 반면 ‘제로썸’은 인양된 선체를 두 개의 특별조사기구가 정밀하게 조사한 뒤에 나왔는데, 조사 내용을 깡그리 무시한 채 자신만의 서사를 펼쳤다.”
―외력설이 사그라들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국가 공식 조사기구가 결론을 내지 않은 탓이 크다. 2018년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가 침몰 원인을 사실상 ‘내인설’(배의 취약한 복원성과 조타 장치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등 기관 고장에 의한 침몰)로 규명해놓고도, 표지 갈이에 가까운 ‘열린 안’(잠수함 충돌설)을 나란히 세워 두 개의 보고서를 냈다. 2018년 출범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3년6개월 동안 외력설에만 매달리다 입증에 실패한 뒤 활동을 끝냈다.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편향이 빚은 또 하나의 참사다.”
―그래서일까.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는 말이 외력설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다.
“10년간 조사했어도 진실을 못 밝힌 이유를 설명하려면 범접 불가능한 ‘성역’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 ‘그날, 바다’에서는 ‘박근혜 정부’였다면, ‘제로썸’에서는 ‘미국’으로 글로벌해졌다. 미국은 자신의 과오를 덮으려 했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미국과 야합해 진실을 감춰준 대가로 대통령이 됐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아무것도 몰랐거나 알고도 굴복했다는 것이다. 전자가 진영적 서사라면 후자는 이념적 서사다.”
―부정선거론이 그렇듯이, 음모론의 특성이 고스란해 보인다.
“음모론은 공동체가 거대한 고통에 빠졌는데 책임지는 이가 (거의) 없다고 여겨질 때 대두한다. 304명이 희생됐는데 형사처벌된 사람은 현장 지휘관 1명뿐이었으니, 이런 조건을 완벽히 갖춘 셈이다. 거대한 악을 상정하는 음모론의 서사 구조는 매우 간명하다. 대중적 확장성과 번식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쉽다. 여기에 희생자 유가족들을 호명하니 비판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상대적으로 내인설은 귀에 쉽게 꽂히지 않는다.
“조타장치 고장은 참사의 방아쇠였을 뿐 복원성이 정상이었다면 배가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는 걸 쉽게 풀어서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부 유가족은 내인설에 포함된 조타장치 고장을 ‘교통사고’와 동의어처럼 받아들이는 듯하다.”
―내인설 자체에도 한계는 있지 않은가.
“재난 참사 조사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참사 당시와 그 이전 시점까지 돌아가지 않는 한 발생 원인과 경위를 100% 복원하고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기록과 자료, 증언들을 최대한 수집해 상호 관계성과 맥락을 맞춰가다보면 참사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러다가 더는 수집해서 맞출 ‘사실의 조각’이 없는 시점에 반드시 도달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합의’의 과정이다.”
―재난 참사의 원인을 다수결 같은 방식으로 규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뜻이 아니다. 20조각짜리 ‘코끼리 퍼즐’을 예로 들어보자. 처음에는 누구도 코끼리가 될지 알 수 없다가 차츰 윤곽이 드러난다. 그런데 17조각까지 맞추고 보니 나머지 3조각을 잃어버린 걸 알게 된다. 누군가는 3조각을 마저 맞추면 공룡이나 사자 형상이 될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자의 생각을 놓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토론하면 마침내 코끼리라는 결론에 동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사진 참조)
―10년 동안 언론이 잘못한 것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겨레21에 대해서도 평가해봤을 것 같은데.
“한때 한겨레21이 유일한 라이벌 매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끈질기게 세월호의 진실을 탐사하는 모습을 봤다. 이후 많이 무뎌진 듯했는데, 2024년 참사 10주기 기획 보도를 보며 매우 반가웠고, 고맙기까지 했다. 다른 고마움도 있었다. 몇 해 전 내가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함께 세월호와 관련해 ‘부족한 보도’를 지적하고 인터넷에서 ‘확립된 사실관계’를 명시하도록 권고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한겨레만 유일하게 권고를 이행했다. 해당 보고서가 전향적이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꽤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한겨레의 조처가 더 전향적이고 이례적이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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