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北으로 간 조부모 떠올리며… 그림으로 위로하는 탈북 출신 화가
북송자들 아픔, 찢어진 매화로 표현
일본에서 살다가 강제 북송(北送)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매일같이 “북한을 떠나라”고 했다. 이들은 1960년대 북한이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를 동원해 9만3000명이 넘는 재일 교포를 입북시킨 ‘북송 사업’에 따라 일본 오사카에서 북한으로 끌려갔다. 당시 조총련은 ‘북한은 지상낙원’이란 거짓으로 이들을 북한으로 꾀었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도 ‘적대 계층’으로 분류돼 평생 강제 노동을 당했다.
손자 혁이는 나이 18세에 탈북했다. 지역 선전(宣傳) 및 선동을 담당하는 문예 공무원직이 보장되는 북한 예술전문학교(예전)에 2000년 입학했다. 우수한 학생들은 평양에 있는 중앙예술대학이나 예술 기관으로도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외조부모를 보면서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만에 중퇴하고 이듬해 탈북했다. “북한에서 겪은 삶은 아무런 살아갈 이유가 없는 삶입니다. 지금까지 (탈북은)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20년이 지나 37세가 된 이혁씨는 화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지난 24일부터 한 달 동안 서울 중구 덕수궁길 두손갤러리에서 세 번째 개인전 ‘나는 어둠을 그리지만, 빛을 그린다’를 연다.
이씨는 북한에서 그림을 6년간 배웠지만, 탈북한 뒤 그림을 포기했다. 영어를 배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2013년 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눈만 뜨면 그림이 생각났다. 31세 늦깎이였던 지난 2019년 홍익대 미술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을 다시 시작했다. 북한에선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릴 자유도 없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 보니 추상화,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등 미술 세계가 이렇게 넓었구나 싶었다”며 “뭘 그려야 할지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야기부터 하기로 했다. 어둑한 밤 어스름과 함께 움츠린 채 앉아 있는 개, 얼굴도 뭉개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배경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이다. 탈북 주민으로서 한국 사회를 마주한 ‘깜깜한’ 본인의 모습이었다. 그는 “혼란을 느끼는 탈북민들이 한국을 보면서 느끼는 경계심을 표현했다”고 했다.
최근 들어 이씨는 주제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24일 전시회에서 만난 이씨에게 ‘이제 무슨 작품을 그리고 싶으냐’고 묻자 갤러리 한편에 걸린 작품 ‘설매(雪梅)‘를 가리켰다. 눈이 온 배경에 찢어진 매화가 흩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이씨는 “외조부모뿐 아니라 북한에서 만난 북송 재일 교포들은 일본과 그곳에서 보던 매화를 가장 그리워했다”며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이들을 ‘찢어진 매화’로 형상화했다”고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을 주제로 한 그림도 그려볼 예정이라고 했다. “그동안은 어두운 작품을 많이 그렸지요. 이제는 관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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