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65> 거제도에서 유배 살고 있는 허약허에게 답시 쓴 이민구
봉래의 물 기운 흐렸다 맑았다 하여(蓬萊水氣互陰晴·봉래수기호음청)/ 나그네의 봄 생각 밤낮으로 일어나네.(客思春心日夜生·객사춘심일야생)/ 먼 섬 외딴 봉우리는 하늘가에 걸쳤고(遙嶼斷峯天外落·요서단봉천외락)/ 습한 구름 석양빛은 빗속에 밝구나.(濕雲殘照雨中明·습운잔조우중명)/ 놀란 혼은 남쪽 붕새 따라왔지만(驚魂已逐鵬南徙·경혼이축붕남사)/ 이별한 꿈은 북쪽 가는 기러기 따르겠지.(別夢應隨雁北征·별몽응수안북정)/ 그대 그리워도 아득해 가기 어려우니(瓊樹相望杳難卽·경수상망묘난즉)/ 바다 물결에 외로운 성 바라볼 길도 없네.(滄波無路見孤城·창파무로견고성)
위 시는 조선 후기 문사인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1589~1670)의 ‘거제도 적소에 있는 허약허의 시에 답하다’(酬許若虛巨濟謫所·주허약허거제적소)로, 그의 문집인 ‘동주집(東州集)’ 권 1 선위록(宣慰錄)에 실린 두 수 중 첫째 수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지봉 이수광(李晬光)의 아들인 이민구는 1612년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대사성·도승지·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허약허(許若虛)는 허실(許宲·1583~1625)로, 벼슬을 살다가 1618년 작은아버지 허균(許筠)의 역모사건에 연좌되어 유배를 살았다.
위 시 앞에 머리글이 붙어 있다. “내가 장협(張協)의 ‘칠명(七命)’에서 아름다운 수사를 빌리고, 천상의 음악에서 화음(和音)을 불러온다고 해도, 그대의 마음을 풀어줄 수가 없네. …”라며 벗을 염려하는 이민구의 마음이 적혀 있다.
위 시 수련의 ‘봉래(蓬萊)’는 바다 가운데 있다고 전하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허실의 적소인 거제도 앞바다를 상징한다. 미련의 첫 구 ‘경수(瓊樹)’는 중국 남조 양(南朝梁)의 강엄(江淹)의 글에 나오며,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운 임(벗)을 상징한다. 위 시를 통해 조선 후기 이민구와 허실이라는 두 인재의 우정을 엿볼 수 있다. 대개 ‘춘심(春心)’이란 어휘는 봄날의 희망을 노래한다. 그런데 위 시 수련의 ‘춘심’은 유배된 허실이나 위 시를 지은 이민구나 정치 소용돌이에 마음이 늘 혼란스럽다는 중의적 뜻을 함의한다.
현시점 우리나라의 정치적 ‘춘심’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요즘 날씨조차 바람이 많이 불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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