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옹호’

이문영 기자 2025. 4. 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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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의 당신은 소설] 05 _‘기린’이라 불리는 기림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온다더니.

내일도 오고 모레도 오고 매일 온다더니. 그래 놓고 안 오더니. 내일은 올까 모레는 올까 기다렸는데도 안 오더니. 그러더니 왜 느닷없이 그날(2022년 1월) 거기서 나타났는지 진만(가명·당시 59)은 알지 못했다.

“아저씨.”

기림(당시 31)이 진만을 부르며 활짝 웃었다. 내일도 가고 모레도 간다고 해놓고 한동안 가지 않던 기림은 사실 오랫동안 거기서 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 도 경찰청 앞에서, 한달이나 못 간 까닭을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리며 기림은 ‘작전’을 짰다.

“내일도 오고 모레도 올 거예요.”

그 염전(국내 최대 단일 염전)을 찾아간 첫날(2021년 11월)부터 기림은 약속했다. 진만의 동료 일국(가명·당시 54)이 반년 전 탈출한 염전이었다. 일국의 피해 증언은 2014년 떠들썩했던 장애인 염전노동자 착취·학대가 7년이 지나도 그대로란 사실을 폭로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위촉 조사원으로 실태를 파악하러 간 기림은 염주의 눈치를 살피는 노동자들을 그 말로 안심시켰다. 약속대로 매일 찾아오는 기림을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염주는 장애가 있는 노동자들만 골라 서울과 광주 등지로 빼돌렸다. 그들 중에 창범(가명·당시 48)이 있었다. 창범은 일국 탈출 일곱달 뒤(2021년 12월)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기림에게 전화해 구조를 요청했다.

“형이 허리가 아파 쓰러지는데도 병원에 데려갈 생각을 안 해요.”

구조 뒤 경찰에 피해 진술을 하던 창범이 진만의 소식을 꺼냈다. 기림이 염전에서 본 진만은 나이에 비해 건강과 치아 상태(고된 노동으로 상한 이를 염주가 무허가 치기공사를 불러 갈아버리고 500만원 가불 처리)가 너무 안 좋았다. “이 염전에서 내 이가 가장 튼튼하고 사탕도 깨물어 먹을 만큼 건치”라며 진만은 산산이 부서진 치아를 드러내고 웃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었다. 3년 뒤(2025년 2월2일) 진만의 ‘3시간짜리 빈소’(☞ 4회 ‘무엇이 사랑이고 청춘이던고’)에서 “부디 잘 가시라”며 울먹일 일국의 탈출은 창범의 구조로 이어졌다. 진만의 영정을 품에 안고 그의 마지막 길을 인도할 창범은 진만이 염전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그들이 서로에게 내밀어 준 지푸라기로부터 기림의 진만 구출 작전은 계획됐다.

“이제 안 올 거예요.”

작전의 첫 단계는 연락 두절이었다. 일국의 폭로가 언론에 보도되고 수사가 시작되면서 염주는 가해 사실을 은폐했다. 염전에 남아 있던 노동자들에게 “입 잠그고 묻는 말에 대답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염주는 장애 정도에 따라 ‘맞춤형 착취’를 했다. 장애가 가장 심한 창범에겐 아무 설명 없이 임금을 주지 않았고, 일국에겐 일단 통장으로 입금한 뒤 현금으로 찾게 해 돌려받았으며, 진만에겐 보험에 가입시킨 뒤 보험금을 가져갔다. 창범 구조 뒤 기림은 “조사가 끝났으니 더는 올 일 없다”고 염주에게 말했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아무 설명 없이 소식을 끊었다.

2단계. 염전에 가지 않는 대신 염주를 고발했다. 경찰과는 미리 상의했다. 기림은 진만의 진술을 염전이 있는 섬의 파출소 대신 도 경찰청에서 받도록 요청했다. 일국 탈출 당시 염주 일가는 파출소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는 노동자들에게 답변 내용을 미리 지시하고 조사 뒤 그대로 답했는지 확인했다. 섬으로 들어간 경찰은 진만만 데려 나오면 염주가 의심할 수 있어 다른 노동자들도 같이 차에 태웠다. 그사이 기림은 사건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처럼 행동했다. 염주 가족의 경계를 늦추려면 진만과의 연락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진만 아저씨.”

경찰은 노동자들을 오전과 오후로 나눠 조사했다. 진만의 조사 시간은 일부러 오전으로 잡았다. 오후 조사를 받는 동료들을 기다리며 진만이 경찰청 밖으로 나왔을 때 먼저 와 있던 기림이 그를 불렀다. 3단계.

“우리 케이블카 타러 가요.”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케이블카냐는 표정의 진만에게 기림이 명랑하게 말했다.

“모처럼 섬에서 나오셨잖아요. 케이블카에서 보면 바다가 훤히 보여요. 오늘 같은 날 안 타면 또 언제 타보겠어요.”

승강장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 진만의 휴대전화에 염주 쪽 전화번호가 떴다. 번호를 내려다보던 진만이 말했다.

“이거 어떻게 못 해요?”

차단해 줄까 묻는 기림에게 진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염주와 그 가족들의 번호를 차단한 뒤 그들은 케이블카에 올랐다.

4단계. 기림이 왕복표를 끊었다. 국내 최장 코스였고 소요 시간은 40분이었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동안 마주 앉은 사람들은 싫어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 회피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기림이 미리 짜둔 일정이었다.

“그동안 못 가서 죄송해요.”

기림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유부터 설명했다. 서운했을 진만에게 사과한 뒤 염전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설득했다. 다시 약속했다.

“저 한번만 더 믿어주세요. 염전 아니어도 살 수 있어요. 아저씨만 포기 안 하면 저는 절대 포기 안 해요.”

가만히 바다를 내려다보던 진만이 입을 뗐다.

“짜장면이 먹고 싶어요.”

케이블카에서 내린 그가 상한 이로 우물우물 짜장면을 삼키다 말했다.

“염전, 안 갈게요.”

경찰은 당사자가 복귀를 원치 않는다고 염전에 통보했다.

“도망가다 걸리면 죽여분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무서워서 사실대로 말을 못했다며 진만이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그가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급여명세서 한장을 꺼냈다. 월급이 200만원인데, 통신요금만 158만원이었고, 전체 차감액은 213만원이었다. 월급이 아니라 빚을 준 이 명세서(염주가 조작)를 기림은 재판부에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아저씨만 포기 안 하면….”

구조보다 힘든 것은 생존이었다. 치밀한 작전의 끝은 구조였지만 한명의 착취·학대 피해자를 구하는 일이 구조에서 멈출 때 피해자는 구조되지 못했다. 그 자신이 스스로를 포기해도 누군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때 그는 비로소 생존자가 됐다. 아저씨와의 ‘두번째 약속’을 지키기 위한 기림의 작전은 계속됐다. 의사가 “살아있는 시체”라고 표현한 진만의 병원 치료비를 대고, 응급하게 지낼 공간(일국과 창범도 거쳐 간 방)을 사비로 마련하고, ‘신뢰관계인’으로 민·형사 재판에 동행하며 조력했다. 금전과 위생 관리를 연습시키고 시간 지켜 약 먹는 훈련을 했다. 술 대신 밥을 먹도록 반찬을 만들어 날랐다. 명절 때면 갈 곳 없는 아저씨를 시댁에 데려가 함께 밥을 먹었다. 주말마다 일국·창범까지 넷이서 맛있는 거 사 먹고 산책하고 연극이나 영화를 봤다. 산에 가고 바다도 갔다. 복지 바우처를 수소문해 함께 여행 갈 날짜도 맞췄다. 그것들로 아저씨가 행복해질 거라 감히 기대하진 않았다. 흔해 빠진 일상조차 누려본 적 없던 아저씨의 평생이 그 별것 아닌 시간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이어지길 바랐다.

속이 닳고 진이 빠졌다. 자치단체와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지원을 요청할 때마다 기림은 장애인 ‘자격’도 노인 ‘자격’도 없는 사람(진만은 경계선 장애인이자 만 65살 미만)을 왜 지원해야 하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았다. 그때마다 “병신 소리 듣기 싫다”는 아저씨를 구슬려 받은 임상심리검사에서 한두 문제만 더 틀렸어도 가능했을 ‘자격 취득’의 ‘실패’가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곱씹어야 했다. “휴지장처럼 버려져선 안 되는 사람”으로서 진만의 자격을 설명하느라 피해 사실을 꺼내면 어김없이 그 말이 따라붙었다.

“염전 노예였어요?”

아무리 기분 나빠도 화를 낼 줄 몰랐던 진만은 순하게 웃으며 말하곤 했다.

“노예는 아니고 살다 보니 좀 힘들었던 거지요.”

기림은 ‘기린’이었다. 발달장애인들이 기억하기 쉬우라고 지은 별명이었다. 높이 달린 먹이까지 닿도록 목을 뽑아 올린 기린은 높이 놓인 뇌까지 피를 공급하기 위해 인간의 두배 이상 혈압을 감수했다. ‘옹호’는 구조보다 힘든 일이었다. 구조했다고 손을 떼지 않고 ‘이후’까지 책임지는 일이었다. 약속처럼 포기하지 않고 압력을 버티는 일이었다. 단계에 끝이 없는 작전이었다. “옹호 활동 10년만 해내면 길이 보이겠지” 했는데 아저씨가 위독했다. 공적 체계의 틈을 사적 옹호로 메우며 돈과 지원을 구하러 다니느라 지친 기림은 망설이고 망설이다 수감 중인 가해자를 찾아갔다. 진만 등에게 사과문을 써주면 합의를 설득하겠다고 했지만 염주는 거절했다.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아저씨는 구조 3년 만(지난 1월29일 설날)에 세상을 떠났다. 화장장으로 진만을 따라가며 기림이 목을 꺾었다.

“아저씨, 다음 생엔, 저보다 약속 잘 지키는 사람 만나세요.”

혈압을 견디며 옹호해야 할 ‘나의 아저씨’가 기림에겐 세명 더 있었다.

※진만·일국·창범씨의 눈물이 섞인 소금을 미국은 장애인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이라며 지난 3일 수입 금지했다.

이문영 | 텍스트팀 기자. 책 ‘웅크린 말들’ ‘노랑의 미로’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루카스’ 등을 썼다. 세기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진 못해도 누구든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小說)의 주인공은 될 수 있다. ‘이야기의 자격’을 인정받은 적 없는 이야기들이 글이 되고, 읽히고, 연결될수록 언어와, 기록과, 서사의 틈들도 조금은 메워질 것이라 믿는다. 부끄러운 것이 많다.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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