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존재한다 [오철우의 과학풍경]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우리 마음은 종종 빈 그릇처럼 텅 빈 상태에 빠진다. 긴장한 탓에 시험지 앞에서 머릿속이 하얘지고 격한 운동 뒤엔 쉬며 멍하게 허공을 바라본다. 어떤 생각이나 기억, 언어조차 담기지 않는 텅 빈 마음의 공백 상태다. 아무것도 없는 마음의 공백은 의미 없는 공백일 뿐일까? 마음 공백은 일상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마음 상태이며 의식과 더불어 진지한 연구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벨기에,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의 인지과학자와 철학자 네명은 최근 학술지 ‘인지과학 트렌드’에 발표한 ‘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논문에서 마음 공백을 다룬 그간의 연구를 종합, 검토하며 지금까지 밝혀진 마음 공백의 사실과 의미를 재평가했다. 학술지 출판기업인 ‘셀 프레스’의 보도자료를 보면, 저자들은 그동안 나온 관련 연구논문 80여편에서 몇가지 의미 있는 결론을 추려냈다.
먼저 마음 공백은 깨어 있는 각성 상태에서 나타나지만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과 기억을 떠올릴지조차 알지 못하는, 마음에 담긴 것이 없는 텅 빈 마음 상태로 설명된다. 스트레스, 불안, 긴장이 심하거나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받거나, 또는 잠이 부족하거나 몸이 몹시 지친 상태에서 텅 빈 마음이 찾아올 수 있다고 한다. 보통 사람도 일상생활에서 짧건 길건 알게 모르게 텅 비고 멍한 마음 공백에 빠지곤 한다니 생각보다 익숙한 마음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겪는 어린이한테 더 자주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뇌의 상태 변화에서도 뚜렷한 특징이 나타난다. 일부러 마음을 비우는 실험 상황에서 참여자의 뇌 영상과 뇌파를 조사했더니, 심박수와 동공 크기가 줄어들고 수면 단계의 느린 뇌파가 나타나는 것으로 관찰됐다. 뇌의 신경계는 설핏 잠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 상태에 놓인다는 것이다. 고요한 명상 중에 나타나는 마음 공백에서는 특정한 뇌 부위가 비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들은 그간의 연구를 종합해, 마음 공백은 뇌 신경계의 인지 과부하 같은 높은 각성 상태에서, 반대로 피로 같은 낮은 각성 상태에서 모두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추측했다. 어떤 이유로 주의력, 기억, 언어에 관한 신경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마음 공백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아직 마음 공백이 무엇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렵고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도 분명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저자들은 마음 공백 연구가 ‘깨어 있는 상태란 곧 끊임없는 생각의 흐름을 의미한다’는 통념에 도전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뉴스 보도에서 “마음 공백은 단지 인지 부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정신 상태로 다뤄져야 한다” “주의력, 의식, 정신 건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언명처럼 우리는 생각이 있는 의식을 인간 존재와 동일하게 여기지만, 마음 공백은 우리가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도 존재함을 말해준다. 마음 공백 연구가 의식이 곧 마음이라는 우리의 굳어진 관념을 부드럽게 펴는 데 기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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