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Bye)아메리카' 부른 극단의 100일, 남은 1361일 어디로…
[편집자주] 준비를 많이 했다며 1기 때를 넘는 정책 추진 속도를 예고했던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질주하던 관세 정책이 냉정한 시장의 반발에 부닥치면서 트럼프 정치의 부작용이 부각되고 있다. 30일로 출범 100일을 넘기는 트럼프 2기의 현위치를 짚어본다.

트럼프 행정부가 불과 100일 만에 이토록 신속하게 판을 흔들 수 있었던 이유는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난 직후인 2021년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연구소'를 일찌감치 설립해 '포스트 바이든' 시대를 계획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스티브 배넌 전 수석전략가, 무역선임고문 피터 나바로 등 트럼프의 '지적 대부' 3인방이 주축을 이뤘다. 워싱턴 전역의 보수 성향 변호사, 전직 정부 관료, 싱크탱크 관계자들이 행정명령 초안을 물밑에서 작성했다.

문제는 다른 나라는 물론 미국 유권자 상당수도 '혁명'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실물 경제가 관세로 오염되는 데 대한 경계심이 크다. 통제되지 않은 재정적자와 정교하지 못한 경제 정책이 달러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트럼프의 오락가락 관세에 시장의 혼돈은 가중됐고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환상이 깨져버렸다.
이를 뚜렷하게 보여준 것은 돈의 움직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나스닥지수는 11.53%, S&P500지수는 7.8%(이하 28일 기준) 하락했다. CNBC에 따르면 금융리서치 회사 CFRA가 1944~2020년 대선 다음 해의 증시 기록을 분석해 보니 대통령 취임 첫 100일 동안 S&P500지수는 평균 2.1% 상승했다.
특히 이달 초 공개된 상호관세의 파장은 증시 외 다른 금융시장으로도 퍼졌다. 상호관세 발표 이후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4%대 중반까지 고공행진했고, 6개 주요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18% 하락했다. 안전 자산으로 꼽히던 달러와 국채가 나란히 궤도를 이탈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까지 공격하자 불확실성이 부각되며 달러 자산 기피 현상으로까지 번졌다.


그의 속도 조절은 민심 이탈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0일간 불법이민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으나 전국 지지율은 다른 어떤 대통령보다 빠르게 떨어졌다. 이코노미스트의 여론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해 대선 때 싹쓸이 승리를 거둔 경합주 모두에서 현재 50% 미만이다. 제조업 부활은 누구라도 환영하지만, 정작 신규 공장에서 일하겠다는 응답자는 4분의 1에 그쳤다. 퓨리서치의 최근(7~13일) 설문조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 능력에 부정적으로 답한 의견이 58%에 달했다. 관세 인상에 대한 반대 의견은 60%로 더 높다.
상·하원을 모두 쥔 공화당의 입지도 불안정하다. 공화당은 하원에서 근소한 차이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민주당 의원 2명이 사망한 덕에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베팅시장에선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할 확률을 80% 이상으로 점친다. 상원도 공화당이 필리버스터(소수당의 의사진행 방해)를 피할 수 있는 60표에서 7표가 모자라다. 상당 시간이 걸리겠지만, 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낸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어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의 대외 공약 상당수는 이미 무산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신속히 종식하겠다는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향해 대대적 공세를 퍼붓다 28일에야 나치 독일에 대한 승전 기념일을 맞아 5월 8~10일까지 전면 휴전을 선언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인질협상도 추가 진척이 없다. 오히려 그린란드, 파나마 등 제3국과 동맹국가인 캐나다의 주권을 깡그리 무시하며 '선량한' 패권국가로서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미국의 제도와 동맹, 도덕적인 지위에 지속적인 해를 끼쳤다. 100일 전의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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