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국가에서 ‘모병제’ 가능할까? 대선 공약 현실성 따져봤더니
“우크라戰 반면 교사 삼아야…조직보다는 무기체계 개발 집중할 필요”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선거철마다 나오는 '모병제' 공약이 또 등장했다. 조기 대선이 6월3일로 확정되자,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이 할 것 없이 단기간 내에 시민들의 관심을 끄는 데 혈안인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모병제 공약 취지엔 공감하지만, 우리 여건상 단기간에 시작하긴 쉽지 않다며 긴 호흡으로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9일 국방부와 병무청에 따르면 장교·부사관 모병제를 통해 복무 중인 여군은 1만9200명으로 전체 상비군(47만 여명)의 4% 수준이다. 100명중 4명 꼴로만 여군인 셈이다. 모병제 확대를 통해 여군 병력을 증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남성 징병제 위주였던 2002년. 69만명에 달했던 국군(상비군)은 2018년 57만명, 2021년 51만명, 2023년 47만7440명으로 감소했다.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25조에는 정원을 '50만명 수준'으로 규정하지만, 인구 급감의 영향으로 2040년경에는 35만~36만 명 수준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근본적인 병역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선거철마다 국방 공약 제각각
'선택적 모병제'는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약 중 하나다. 병역 대상자들이 단기 징집병(복무 10개월)과 장기 모병(전투부사관, 군무원 등 복무 36개월) 중에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구상이다. 선택적 모병제는 징병제를 유지하되, 일정 조건을 갖추면 군 복무 대신 지원병으로 전환하거나 다른 형태의 복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혼합형 제도다.
'남녀 모병제'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후보도 있다. 보충역 출신의 홍준표 국민의힘 후보다. 남녀 전문병사를 대폭 증원함으로써 징병제의 부담을 줄이고 군 가산점제도 부활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병사를 여성에게도 개방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병사는 본인 의사에 따라 현재 18개월(육군 기준)보다 더 길게 복무하는 제도다. '병사 제대→부사관 임용→최대 4년 근무'의 현행 임기제 부사관이 전문병사의 일종이다.
'여성 희망 복무제'를 통해 여성이 병사로 지원하도록 하자는 공약도 있다.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생각으로, 여군이 모병제를 통해 장교·부사관으로만 복무가 가능한 것을 사병으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이다.
모병제를 반대한 후보도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후보는 "남북이 대치하는 현실에서 모병제는 우리의 선택지 밖이다. 북한 지상군은 우리 3배 규모"라며 "모병제를 섣불리 도입했을 경우에는 없는 집에서만 군대 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성 입대할 환경, 여전히 열악
여군을 늘리려면 여성이 입대할 환경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월 기준 육군 최전방 GOP(일반 전초) 소초 275곳 중 112곳(40.7%)에 여성 화장실이 없다. 여성 샤워실도 46%가 부재하다. 군내 성폭력 문제도 여전하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성폭력 사실이 적발된 군인·군무원도 2019년 349명에서 2023년 736명으로 늘었다.
부사관 인력 이탈 방지를 위한 처우 개선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육군 부사관 전역 희망자는 668명이다. 2021년 같은 분기 315명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신규 임용 인원도 대폭 줄었다. 2021년 1분기 2156명이던 부사관 임용자는 올해 1분기는 749명뿐이다.
첨단 기술을 탑재한 무기 운용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육탄전에 몰두하는 것은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보듯 사람 위주의 조직보다는 무기체계 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모병제 전환,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이같은 논의의 시작은 국방 예산을 늘리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군을 정예화하고, 군사 장비를 최신화할수록 국방비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국제 정세가 불안할수록 분단이라는 특수한 안보 상황을 고려해 국방 예산 증액은 필수"라고 했다.
인구 구조가 바뀌고 있기에 장기적인 관점에선 모병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준비 없이 즉각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조언한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병제로 단숨에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다. 긴 호흡으로 정책 집행을 준비해야 한다"며 "각 후보들이 내놓는 국방 정책들 역시 국가의 자산이기에 누가 정권을 잡던 좋은 공약이라면 차용해 집행해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징병제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신생아 수가 감소하는 형국에 상비 병력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안도 없이 징병제를 유지하자고만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또 모병제를 논의하기 전 우선되어야 할 것은 제복을 입은 공무원에 대해 국민들이 예우를 갖추는 태도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에 대한 인식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선거철에만 공약을 놓고 토의하기보다는, 비선거철에도 현안뿐만 아니라 정책을 놓고 국회에서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허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정쟁이 아닌 정책 토의를 하는지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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