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문형배 판사가 말한 '민주 성지' 마산은 뒷걸음질만 쳤다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2025. 4. 2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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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기자의 시선]

[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 4월18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과거 행적이 한동안 재조명됐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는 말, 공직 생활이 끝나면 영리를 위한 변호사 활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 등은 올곧은 그의 신념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의 판결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창원지방법원 문형배 판사 판결에 주목했던 김훤주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그를 '민주주의자'라고 칭했다. 민주주의의 작동을 저해하는 범죄에는 대쪽같은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선거 부정에 대해서는 관용이 없었다고 한다. 민의를 왜곡해서 민주주의가 오작동하게 만드는 중대한 범죄가 바로 선거 부정이기 때문이리라.

그의 신념이 오롯이 드러난 판결이 2005년 8월4일 자 경남도민일보 1면에 실렸다. 당시 창원지법 형사3부 재판장이던 문형배는 '마산 갑' 지역구 한나라당 김정부 의원을 당선시키고자 돈을 뿌린 혐의로 기소된 김 의원의 아내 정아무개 씨에게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했다.

▲ 2005년 8월4일 경남도민일보 1면

문형배 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에 맞선 마산 3·15 의거에서 숨진 김주열 님 같은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누구나 신변의 위험 없이 비판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런데 '민주 성지'인 마산에서 금권선거가 벌어진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문형배는 마산 지역구에 주목했다. '민주 성지' 마산의 정체성을 훼손한 자에게 관용을 배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마산은 여전히 '민주 성지'라 떳떳하게 부를 수 있을까.

최근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부끄러운 단면이 밖으로 드러났다. 경남신문 김용락 기자는 지난 21일 <어른들이 미안해>라는 칼럼에서 3·15의거 관련 단체를 따끔하게 비판했다. 사건은 3·15의거 재현 행사에서 발단했다. 창원시 예산을 지원받아 3·15의거학생동지회가 주최한 이 행사의 본래 취지는 분명했다. 시민과 함께 3·15의거 정신을 되새기자는 것. 그러나 행사 도중 “윤 어게인”, “찢재명 구속” 같은 구호가 수십 분간 쏟아지면서 그 숭고한 정신은 퇴색됐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자리에 무고한 고등학생들이 끼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3·15의거를 기리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했을 학생들은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김 기자는 “학생들에게 어른들이 미안하다고 위로했다”고 전했다. 행사가 끝나고 김 기자가 이우태 3·15의거학생동지회 회장에게 학생들을 앞에 내세우고 뒤에서 노인들이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게 내버려 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지만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한다.

3·15의거 관련 단체 주요 인사들의 극우적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3·15의거 재현행사를 주최한 이우태 회장은 1960년 3·15의거 당시 거리에서 마산상고 학생으로서 독재정권에 맞섰다. 그는 경남도민일보 취재진에게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애썼다”며 “국가원수로서 계엄령을 충분히 내릴 수 있었는데, 그걸로 내란이다 파면이다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김영일 3·15의거기념사업회 이사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국민을 갈라치기 한 부당한 정치적 판단”이라고 했다. 계엄령 선포도 “문제될 것 없다”고 말했다. 오무선 3·15의거희생자유족회장은 “경제를 위해 대통령을 풀어줘야 했다”고 주장했다. 변승기 3·15의거부상자회장은 헌법재판소를 “빨갱이 집단”에 빗댔다. 김영달 3·15의거희생자유족회 사무국장 역시 “대통령의 이익 추구는 있었지만, 파면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경남도민일보) “윤석열 파면에 울분”이라니… 3·15단체 임원 자격 있나]

▲ 마산·성지여고 학생들의 시위광경. 사진=3·15의거기념사업회

이들은 모두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 거리로 나섰던 3·15의거 참여자이거나, 그 유족들이다. 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의 궤변을 퍼뜨리고 있다. 문형배 판사가 20년 전 마산을 '민주 성지'라 부르며 금권선거를 꾸짖던 그 시절에서, 마산은 뒷걸음질만 쳤다. '3·15'를 내세워 감투를 쓴 자들이 '민주 성지'라는 이름을 허울로 만들어버렸다. 부끄러움을 알고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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