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 지방자치 연방제로의 분권화 시도 아직은 시기상조”

# 한국 지방자치제도의 난맥상 심각하고 그 역사 또한 매우 짧음
1945년 해방 직후 여운형을 주축으로 하여 조직된 건국준비위원회는 한반도 전역에 140여개의 지부를 설립하였고, 이후 그것이 인민위원회로 개편되기도 했다. 인민위원회는 면·리·동 단위까지 조직되었는데, 이에 대한 연구결과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당시 134개 군 중 126개 군에 인민위원회가 설치됐고, 이 중 절반가량은 지역행정 사무를 담당했다.
이처럼 해방 당시 인민위원회는 지역의 유력자를 비롯하여 자발적이고 자주적인 자치조직으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미군의 진주 및 미군정 실시와 함께 남조선 전역에서 해체되거나 그 성격이 변질되기도 했다.
당시 남조선에서는 주민들의 의사와는 달리, 미군의 현상유지 정책에 의존하여 일제 식민지 지배에 협력하였던 경찰과 관리, 유력자들이 미군정에 의해 유임되거나 등용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1946년 11월 15일 미군정은 군정법령126호 '도급(道及)기타지방의 관공리, 회의원(會議員)의 선거'법을 제정·공포했다. 이 법령은 "도급 기타 지방의 중요 관공리와 각 회의원을 조선인 대다수의 자유로운 선거에 의하여 선출할 규정을 제정하야 민주주의적 지방자치의 원칙 하에 국가발전을 촉진한다"는 것이 그 입법 목적이었다.
또한 이 법에서는 직선제에 기초한 도지사, 부윤, 군수 등과 도·부·읍·면의 회의원에 관한 선거방법과 임기, 급여, 관공리의 임무 및 직능, 자격 등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미군정은 이 법을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계획이나 방법 등에 관하여는 논의를 이어가지 않았다.
이에 당시 좌익 정치세력인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등은 도지사와 도협의 기관을 축으로 하는 지방행정 제도 대신 인민위원회 제도 채택을 요구했다. 또한 민전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각급선거관리위원회 구성에 민전이 50% 이상 차지할 것과 투옥·검거된 자의 즉시 석방, 경찰의 간섭 및 탄압 배제, 토지 몰수 및 무상분배 등을 요구하였다.
민전의 이러한 요구는 당시 미군정과 우익세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마련된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미군정과 우익, 좌익 세력들 모두가 어떻든 민주주의의 보급 및 실현을 위해서는 지방자치제도의 필요성에 대하여 공감하였다. 그러나 해방 직후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좌우익간의 입장 차이와 정치적 갈등 속에서 지방자치제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1948년7월17일 제정된 대한민국 제헌헌법 제8장 '지방자치'에 관하여 규정하였고, 다음과 같이 동법 제96조와 제97조에 각각 지방자치에 관한 규정을 두었다.
"제헌헌법 제96조: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내에서 그 자치에 관한 행정사무와 국가가 위임한 행정사무를 처리하며 재산을 관리한다.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내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제헌헌법 제97조: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써 정한다. 지방자치단체에는 각각 의회를 둔다. 지방의회의 조직, 권한과 의원의 선거는 법률로써 정한다."
위의 제헌헌법 관련 규정에 근거하여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인 1949년 7월4일 지방자치법이 제정 공포됐다. 이 지방자치법에서는 서울시장과 도지사는 임명하되, 시·읍·면장은 지방의회에서 선출하도록 규정했다. 지방의회가 단체장 불신임 결의권을, 단체장이 의회 해산권을 가지게 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내각책임제적 특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49년 7월4일 지방자치법이 제정 공포된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은 행정체제 미비와 치안 불안정 등을 이유로 한동안 지방자치 제도를 실시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52년 4월 25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지방선거 실시를 전격 발표했다. 이런 발표에는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의 지지기반을 전국화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는 사후적 평가가 있다.
이후 지방선거의 실시 및 사사오입 개헌 등을 통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지지 세력을 공고화하고 장기집권을 모색했다. 이후 지방선거와 정·부통령 선거 등에서 야당이 강세를 보이자 이승만 정권은 1958년 12월 24일에 이르러 지방자치법을 개정하였다.
지방자치법 개정안에서 시·읍·면장에 대한 선출제를 폐지하고, 임명제로 바꾸는 것이 그 핵심 골자였다. 시·읍·면장에 여당에 친화적인 인물들을 임명하였고, 19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겼으나 이승만 정부는 3·15 부정선거 후에 4·19월 혁명을 거쳐 정권이 무너졌다.
이후 내각제하의 제2공화국 정권이 등장하였고, 1960년 11월 1일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었고, 1960년 12월에는 지방자치 선거가 실시됐다. 하지만, 이듬해 5.16쿠데타가 일어났고, 군사혁명위원회가 포고 제4호를 발령하여 전국의 지방의회를 해산시켜 버렸다.
국가재건최고회의령 제42호(국가재건비상조치법 제20조),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1961. 9.1)을 각각 공포하여 서울특별시장, 도지사를 비롯한 자치단체장에 관한 임명제를 다시 실시하였고, 기존의 읍·면 자치에서 군(郡)자치제로 일대 전환이 이루어졌다.
제3공화국 체제 하의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지방자치제 실시를 위한 지방의회 구성시기를 법률로 정한다"고만 규정해 두었고, 그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유신헌법 체제하에서는 유신헌법 부칙 제10조에서 "조국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방의회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명시규정을 두었다. 이후 한국의 지방자치는 1990년대 초 지방자치가 재개될 때까지 중앙집권적 지배구조 하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지방자치제도는 중앙정부의 명령과 위임사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지방행정'의 역할을 담당하였을 뿐이고, 주민의 자율적인 요구와 참여에 기반을 둔 '자치'를 사실상 외면당하고 있었다.
물론 이에 반발하여 지방자치제 정상적인 실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정치세력과 사회,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이미 196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지방자치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학계에서 강력하게 제기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배 엘리트들이 조국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위한 정부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지방자치제의 실시는 미루어졌다.
즉, 행정의 민주적 운영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경제적 낭비나 비효율화가 발생할 수 있고,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수준이 낮고 자치의식이 희박해서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 그 당시 주된 이유였다.
당시 이런 사회적 비용과 경제적 낭비, 자치의식 미비 등을 이유로 해서 지방자치제 실시에 대한 반대한 흐름이 1970~80년대까지도 계속되었다. 단적으로 제5공화국 헌법에서는 부칙을 통해 지방자치의 시행시기에 대하여 언급하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우선 감안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1987년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을 통해 출범한 제6공화국에서는 기필코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리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야3당이 합의하고 통과시킨 지방선거 실시 법안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이후 여야 합의에 따라 지방선거의 실시에 합의하였다가 3당 합당 이후에는 거듭 연기하는 등 정치적 갈등을 거친 후에야 지방자치 선거를 실시하기로 여야 간에 최종 합의가 이루어졌다. 결국 1991년3월 26일 기초단체인 시·군·구 의회 의원을 선출하고, 단체장 선출을 포함한 지방자치 선거가 1995년 6월 27일이 돼서야 이루어졌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야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고, 이후 제도적·형식적 개선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방자치제의 목적과 의의를 실현하기 위한 내용적·질적 개선의 과제도 여전히 상존해 왔음은 물론이다.
중앙정부와 국가권력의 과도한 지배 상황으로부터 정치적·경제적으로 벗어나서 자율과 참여에 의한 지방자치를 구현해야할 당위성이 크게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으로부터의 권한을 일부 이양하거나 배분한 것에 불과할 뿐이었고, 중앙종속적인 양상은 여전했다. 각 지역이 처한 조건이나 현실과는 무관하게 중앙정부와 국회가 정한 제도적·법적 기준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도 큰 문제로 대두되곤 했다.
현재까지 지역주민의 요구와 참여에 기초한 지방자치를 모색하기보다는 중앙정치의 실력자들과 관계된 지역인사들 혹은 중앙정치의 대리인이 단체장과 기초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지방자치 본연의 의의를 퇴색시켜왔다는 비판이 늘 상존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비판적 문제들은 해방 이후 한국 지방자치제 실시 경험 과정에서 거듭 반복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지방자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이러한 문제 상황이 크게 개선되거나 제도화되지 않은 현실, 즉 한국적 지방자치 제도의 우여곡절과 제도의 난맥을 일거에 무시하는 것은 옳은 조치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에서 신 교수는 1차적으로 이번 기회에 "제주자치도의 지방자치 제도를 서구의 연방제적 자치제도로 변환하여 도입하고" 이후 순차적으로 대한민국 헌법 개정 절차를 거쳐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를 서구의 연방국가적인 지방자치시스템으로 개조할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신 교수의 제언은 그간 대한민국 지방자치제도 실시 과정에서 드러난 본질적 문제들이 전혀 시정하지 않은 채라도, 우격다짐 격으로 제도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주지방자치를 미래의 연방제 대한민국으로 이어가기 위한 초석이자 모델로 삼기 위한 당장의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에 대하여 필자로는 이 칼럼을 통해 어쩌면 실패를 스스로 조장할 우려가 크다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악하고 완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역사성이 매우 일천한 한국 지방자치제도의 문제점들이 드러나 있고, 그 존재 이유가 크게 부각되지 않은 채 고작 30여년 정도 시행되어온 '제주지방자치 현상'을 '한국의 연방제적 지방자치모델'로 삼겠다는 신 교수의 제언은 일면 일리가 있으나 그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쉽지 않다.
특히 연방제 국가로의 첫 진입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서구의 합리주의에 입각하여 오랜 역사 속에서 안착되어온 서구의 연방제적 자방자치의 안전성과 우수성 등을 제주의 현행 지방자치제도하에서도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 개인적 소견으로는 단일국가 대한민국의 지방자치제 중 가장 바람직한 한국적 지방자치 모델이라고 단정하기가 여간 쉽지 않은 '제주자치도의 그것'을 한국의 지방자치제를 서구식 연방제도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첫 모델로 삼으려 하는 소위 '신 교수식의 연방주의관'에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신 교수가 구상하는 제주자치도 지방자치제를 연방주의 모델로 삼아 헌법 개정을 통하여 연방제적 분권 강화주장은 현재의 국란 상황에 비추어 시기상조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여러 전제조건들을 일거에 충족시켜 나가는 것이 전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런 논의 자체를 공론화시키는 것 자체에 대하여 우려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 한국 지방자치의 연방제로의 분권화 시도 아직은 시기상조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 국민기본권을 위한 개헌에는 합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지방분권 강화, 그 속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재정분권 강화도 함께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당시 여론은 정부차원에서 개헌을 통한 전반적인 지방분권 강화 논의가 이루어질 전망이 우세하다고 봤다. 이 때도 제주정치권 차원에서 지방분권 강화 논란이 제기되었다. 물론 이 시점은 제주특별자치도 체제가 출범한 지 20여년 정도에 이른 시점이었다.
그러나 당시 제주특별자치도 설립 취지에 크게 부응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함을 기화로 제주자치도 역내에서는 누가 무어라고 하든 '제주자치도 체제의 연방제 수준의 헌법적 지위 보장'을 전제로 한 소위 '제주자치도 헌법적 지위 보장'을 위한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2017년 전후 당시 제주지역 언론 등을 통해 크게 드러나 있듯이 '제주자치도 헌법적 지위 보장'에 대한 공론화 배경을 굳이 따지자면, 아마도 도민 상당수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우격다짐으로 지탱해 온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 비전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소위'무늬만 제주특별자치도'라는 허상이 서서히 제주전역에 드리워지면서 나타난 중앙정부를 향한 실망감의 분출 내지는 중앙정부에 대한 대안 제시가 '제주자치도 헌법적 지위 보장' 요구가 아니었을까 한다.
이런 흐름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하는 개인적인 기우를 가져본다.
첫째로 당초 저비용·고효율을 지향한다는 제주자치도의 설치 명분은 사라지고, 그런 체제 자체가 오히려 고비용·저효율의 체제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됨으로써, 제주자치도의 존재 이유를 유명무실케 하였다.
혹자는 이런 상황에 빗대어 제주자치도 체제의 무용론까지 들먹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역대 도지사들은 명분 논리에 집착하면서 제주자치도의 기능정상화를 도모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여러 권한이양을 받아 겉치레의 제주자치도의 자율권 강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식의 과시를 일삼는데 매우 급급하면서 안주해 왔다고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주자치도 내에 대체사무를 발굴 시행함으로써 중앙정부로부터 보조금 또는 교부금을 받는 것이 매우 실효적인 사무들까지도 권한이양의 범위에 포함시켜 외관상 대 중앙절충 능력이 출중하다는 점을 과시하는 데만 급급했다. 즉, 경우에 따라서는 막연하게 불필요한 중앙권한까지 대폭 이양 받아서 행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둘째로 2006년 제주자치도 설치에 즈음해 중앙정부조차 제주자치도의 설치·운영 목적에 걸맞게 재정특례를 두어 제주자치도의 재정자립도를 강화시키지도 않았다. 특히 세제개편을 서둘거나 보조금 또는 교부금 제도의 개선을 통해 특별한 재정지원 제도를 두지 않음으로써 제주자치도 설치 취지를 무색케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현재 시점에서 제주특별자치도의 헌법적 지위보장을 위한 헌법개정 운운 주장이 설득력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는가?
필자 개인적 관점에서 보건데, 헌법적 지위보장을 위한 당위성이 종전과 달리 크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제주자치도 설립 초기 시점과 비교컨대, 현재의 제주자치도 체제하에서의 국제화 시도나 경제발전 도모, 관광의 세계화 도모 등 어느 하나도 기대가능성이 큰 이슈로 부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단정하기 쉽지 않지만, 제주발전 기제가 점점 쇠락을 거듭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제주지역에서 개최된 '헌법적 지위확보 방안 정책세미나'에서는 연방제 수준의 '제주특별자치도' 완성을 위해서는 중앙정부를 상대로 한 설득 논리와 명확한 목표가 설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다.
반면 국회개헌특별위원회에서는 '중앙집권의 역사, 지리적 협소함, 문화적 동질성 등에 비춰서 지방분권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 등의 의견이 제시된 적도 있다. 물론 개인적 관점에서 판단컨대, 둘 다 상당히 일리 있는 의견들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현행 법체계 하에서일지라도 각 지방자치단체는 주관적 법적 지위를 보장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무를 자신의 책임하에 행할 수 있는 권한으로서의 지방분권이 보장되고 있다는 점 또한 간과될 수 없다.
물론 서구적 관점에서 지방분권의 범위에는 원칙적으로 제한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중앙정부의 통제 차원에서 개별입법을 통해서 그 내용이 과도하게 제한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래서 본래 의미의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무색케 만들 여지가 항상 상존한다고 할 수도 있다.
특히 위와 같은 과도한 제한 때문에 한국 지방자치는 서구 지방자치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한국 본래의 지방자치, 즉 '준(準) 중앙집권적 지방자치'라는 비판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제주도에서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헌법 개정논의가 이루어질 경우 그 논의의 핵심은 '특정 지방자치단체를 위한 지방분권을 강화를 위한 헌법 개정 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지방자치단체의 지방분권 강화를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신 교수 앞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제주자치도만을 위한 실질적인 지방분권 강화 논의나 주장은 그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다른 지방자치단체 등과의 형평성 논란 등을 심히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제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한국의 지방자치 역사는 서구의 지방자치의 그것보다 매우 일천하고, 그 내용 또한 서구의 지방자치의 그것보다 조악하고 완전치 못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