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식재료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미각교육’ 받은 佛아동, 낯선 음식도 반겨[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김치찌개가 너무 매워.” 일본에서 몇 년을 살다 온 친구가 김치찌개를 먹으며 일본 관광객처럼 말했다. 학창 시절 매운 떡볶이를 즐기던 친구였기에 더 놀라웠다. 친구는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일본 음식에 익숙해진 탓에, 이제는 한국 음식의 매운맛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환경에 따라 입맛이 달라지는 걸까?
과학적으로 맛은 음식 속 분자가 혀의 미뢰에 닿아 시작된다. 미뢰는 약 5000∼1만 개가 존재하며, 각각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 다섯 가지 기본 맛을 감지한다.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맛’은 미각뿐 아니라 후각과 촉각, 심지어 시각과 청각까지도 복합적으로 작용해 뇌에서 하나의 ‘풍미’로 통합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감기에 걸려 코가 막히면 음식 맛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뇌가 경험에 따라 미각과 후각의 민감도를 스스로 조절한다는 사실이다. 매운 음식에 익숙한 사람은 같은 자극에도 덜 맵게 느끼고, 단맛에 익숙한 사람은 더 달콤한 맛을 선호한다. 미각은 뇌의 학습과 적응 과정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해외에서 오랜 기간 살아본 사람들이 현지 음식에 익숙해지고, 모국의 맛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한국에 오래 머문 외국인들이 본국에 돌아가서도 김치나 떡볶이를 그리워하는 사례 역시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미각의 변화 가능성을 일찍이 주목한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프랑스는 1970년대부터 ‘미각교육(Les Classes du Goût)’을 도입했고, 2010년대부터는 학교 정규수업으로 확장했다. 프랑스 미각교육은 유아기부터 11세까지 아동을 대상으로,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모두 활용해 다양한 맛을 체험하고 감각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수업에서는 아이들이 당근, 치즈, 허브 등 다양한 식재료를 직접 만지고, 냄새를 맡고, 씹어보며, 각 감각이 어떻게 맛을 구성하는지 경험한다. 그 느낌을 말과 글로 표현하고 친구들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맛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
프랑스 미각교육의 상징적 행사인 ‘미각주간(La Semaine du Goût)’에는 요리사, 생산자, 영양사, 교사들이 학교를 찾아 요리 실습과 시식회를 연다. 아이들은 다양한 전통음식, 향신료, 빵, 치즈 등을 맛보며, 식문화의 다양성과 지속 가능한 식생활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프랑스 미각교육의 핵심은 스스로 맛을 탐구하고, 자신의 감각을 이해하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데 있다. 실제로 미각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줄고, 채소 섭취가 늘며, 음식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높아진다.
입맛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환경·경험·교육에 따라 유연하게 변한다. 미각은 과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진화’하는 감각이다. 일본에 살다 온 친구가 매운맛을 낯설어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새로운 환경에선 입맛이 바뀔 수 있다. 프랑스처럼 미각을 배우고, 다양한 맛을 존중하는 태도는 음식뿐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시야도 넓혀준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낯선 음식에 젓가락을 한번 얹어보자. “이게 뭐지?” 하는 그 한입이, 당신의 일상에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물할지도 모른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 스푼 더 - 미각도 측정이 될까?
시각과 청각은 빛과 소리라는 물리적 자극을 다루기 때문에 강도와 파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반복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표준화된 방법이 일찍부터 개발됐다. 반면, 미각과 후각은 수많은 화학분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화학적 감각’이어서, 맛과 냄새를 객관적으로 계량하거나 표준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각과 청각은 20세기 초부터 표준화된 검사법이 존재했지만, 미각과 후각은 1990년대 이후에야 유전자와 수용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이 감각의 원리를 밝힌 공로로 2004년 리처드 액셀과 린다 벅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자코(e-nose)와 전자혀(e-tongue) 같은 혁신적인 도구가 등장하면서, 미각과 후각 연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한덕수 ‘삼자대결’시 이재명과 8.4%p 최소 격차-여론조사공정
- 홍준표 “대선후보 된 뒤 패배 땐 정계은퇴…홍준표 나라 세울 것”
- [속보]SKT “23만 유심 교체 완료…유심보호 가입·교체 약 1000만건 넘어”
- 카메라 켜진 줄 모르고, 사내 커플 회의실서…스크린 생중계(영상)
- 송도서 발견된 ‘괴생물체’ 정체는… (영상)
- 이승기, 장인 범죄에 사과 “처가와 인연 끊겠다”
- ‘소녀상 모욕’ 소말리 “한국 여성에게 성병 퍼뜨리겠다”
- 스페인·포르투갈 대정전, 원인은 기후 변화?
- “카리나 위해 나라 지킨다”…MZ병사들 “우리 軍통령은 에스파”
- 박지원 “이재명, 특별한 실수 없으면 대통령 당선”